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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윤범모 관장의 1년, 초라한 성과

지난해 이맘때, 미술계는 꽤나 소란스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서 역량 평가 낙제점을 받아 탈락한 후보가 재시험 기회를 얻어 최종 선발되면서 ‘코드 인사’ 논란이 거셌다.

 

당시 관장 후보는 민중미술계열의 근대미술사학자인 윤범모씨였고, 인사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고위직을 역임한 도종환씨였다. 내 편 네 편 진영에 따라 달리하는 양심을 지닌 일부 기회주의자들을 제외하곤 미술계 구성원 대부분은 불공정한 관장 공모 심사 과정에 분노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액면 그대로 믿었기에 배신감도 작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 남궁선

 

그로부터 1년, 윤범모 관장체제 아래에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그야말로 무색무취였다. 애초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실망마저 사치일 수 있으나, 그래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과 맞물린 해인 데다 코드 논란으로 인한 부담 때문에라도 보통 성적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긴 했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우선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비롯한 제니 홀저, 안톤 비도클, 아스거 욘, 문명 등 4개관에서 40여개의 전시가 1년 내내 열렸지만 사회적 담론 생성엔 미약했다. 이렇다 할 이슈를 이끌지도, 의미 있는 공론의 장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저 전시장 문을 연거푸 열고 닫는 게 전부였다. 윤 관장 스스로 제시한 비전 및 중점 과제에서조차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미술사 복원’이다. 그는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과의 교류를 모색해 근현대 미술사를 복원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현재 그의 호언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철저한 연구와 사전 조율 없이 정권의 이상향에 기댄 비현실적인 계획이었음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야심차게 밝힌 ‘국제화 교두보 확보’는 안갯속을 헤매고 있으며, 글로벌 미술관에 필요한 브랜드 차별화 전략 또한 부재하다. 분관장 부분을 포함한 조직 안정성 측면도 미완으로 남았다. 특히 윤 관장이 그동안 수차례 언급한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은 몇 년 하다말 신분으로 과연 해낼 수 있는 과제인지 의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재생적,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못한 전시의 질(質)과 그에 따른 성과 및 능력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윤 관장을 따라다닌 건 ‘이념 편향’ 논란이었다. 실제로 일부 미술인들과 보수 언론은 몇몇 전시를 예로 들며 촛불시민정권의 코드에 맞춰졌다는 주장을 내놨다.

 

물론 이런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건 아니다. 편향 지적을 받은 ‘광장’전의 민중미술만 해도 삶 속의 예술과 예술 속의 삶을 우리의 상황과 연결한 한국 최초의 자생적 사회변혁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비중이 남다른 건 당연하다. 따라서 일각의 ‘국립운동권미술관’ 운운은 과한 해석이다. 정치적 목적이 뻔하다.

 

오히려 이 전시와 관련한 진짜 문제는 진품과 복제품을 구별하지 못한 채 근대미술품을 내걸었다가 부랴부랴 교체하는 등 기획 역량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데 있다. 근대미술사가가 관장으로 있음에도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치욕이다.

윤 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혹자는 성과를 논하기엔 다소 이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럼에도 합격자까지 밀어내며 불공정하게 자리에 앉히거나 앉았으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 했다. 1년에 10년의 고민을 담았어야 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