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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일점호화주의적 건축

일본 사상가이자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가 1967년 처음 자신의 글에 사용한 일점호화주의(一點豪華主義)란 이것저것 평균화시켜 생각하지 말고 하나에 몰입하자는 가치론이다. 예를 들어 이불 한 장으로 아무 곳에서나 자도 상관없으니 일단은 꿈꾸던 스포츠카부터 사고, 사흘 동안을 빵과 우유 한 병으로 버틴 뒤 나흘째는 미슐랭급 레스토랑에 가는 식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양복이나 주거비용, 식비 등에 일정하게 배분하지 말고 자기 존재 중 쏟아부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한 점을 골라 그곳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특별한 자신만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은 그에게 있어 지극히 사상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나는 일점호화주의가 사상적인 행위라는 데 공감한다. 균형 잡힌 타성 속에서 여러 가지 가치들의 평균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태도를 버리고 어느 한 곳에 집중할 것인가는 개인의 철학적 소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이기도 하며 실행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이념은 비단 소비 가치관뿐 아니라 집을 짓는 행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케이투 타워 ⓒ 신경섭

 

우리는 예로부터 집을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짓는다’라고 했다. 집 말고 우리가 ‘짓는’ 것에는 밥, 농사, 시 등이 있다. 이들을 짓는다고 표현하는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뚝딱뚝딱 이것저것 맞추어, 보통은 되풀이해서 ‘만드는’ 것과 달리 이것들을 ‘짓는’ 것은 이러한 창조 행위가 우리 개개인의 삶을 이루는 바탕이 되도록 새롭게 일으키는 중요한 몸짓이기 때문이다.

 

설계는 항상 새로운 장소와 그곳에서 새롭게 생활하게 될 사람들과 그들의 새로운 꿈을 잇는 작업이다. 그러나 한편 매번 낯선 제약들을 만난다. 큰 바람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이것저것 보고 들은 좋은 것들은 다 품으려는 소유자의 욕망에 비해 항상 부족한 예산과 대지 규모, 구태의연한 가치관 그리고 까다로운 법규 등에 의해 이도저도 아닌 찍어 낸 듯한 모습이 되고 마는 게 다반사이다.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일점호화주의적 행위를 통해 과감히 하나에 몰입하는 자세가 강력한 지렛대로 작용한다. 건축에 담고자 하는 미래의 염원을 늘 보아왔던 익숙한 경험을 한 단계 뛰어넘는 공간적 가치로 구현하는 것, 그 속에서 장소와 사람이, 인간과 자연이, 건축과 도시가 서로 소통하는 풍경을 꿈꾼다. 일상의 무대로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축은 도시 안에서 극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그 안에 품어야 한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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