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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헐거우나 볼만한 국립현대미술관 ‘광장’전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 ⓒ 최병수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가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에서 동시에 개최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동시대까지 격동의 근·현대사 100년을 미술의 언어로 풀어낸 300여 작가의 작품 45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근·현대사를 골격으로 예술가와 작품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그려왔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재생적, 창조적으로 상상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 아래 광장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을 우린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한국 근·현대사를 서술하는 중심어로 ‘광장’을 내세운 건 “한국사의 역동성을 가장 뚜렷하게 각인시켰던 지점”(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패한 밀실의 남한 사회와 타락한 광장의 북한 사회에 모두 실망하여 제3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투신한 이명준을 주인공으로 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등장하는 밀실과 광장을 통해 대립의 해소를 통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1부인 덕수궁관 전시에는 예술로 민족혼을 강조한 1900~1950년대 작품들과 망국(亡國)의 시대를 살다 간 민족투사들의 지조와 절개가 놓였다. 채용신이 그린 구한말 우국지사들의 초상과 열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사대부들 및 의병들의 작품, 서양미술의 유입 속에서 조선의 전통 미학을 지키기 위한 고민이 묻어나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2부 과천관은 한국전쟁~현재까지의 미술을 통사적으로 다룬다. 근대화, 민주화, 세계화를 화두로 전쟁의 상흔과 민주화 투쟁을 거쳐 새로운 도약을 일군 70년의 역사가 담겼다. 군사정권에 의한 경제개발과 독재라는 극단의 그림자에 짓눌린 격정적 투쟁과 논쟁의 시대였던 1980년대 작품들을 비롯해 이념체제의 붕괴, 자본주의의 도래, 외환위기 속 위기에 처한 민초들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1990년대 작품들까지 다양하다.


이 중 1980년대 당시 광장을 옮긴 최병수의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와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공동공존의 삶과 민주화를 향한 목숨 건 저항을 보여주고, 미시사적 관점에서 세계를 재해석한 작업들에선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정한 징후를 읽게 한다. 특히 베트남전쟁과 5·18민주화운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은 역사적 상처를 어루만지는 수준을 넘어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드리운 비극적 현실을 곱씹게 한다.


3부 서울관은 현재의 광장은 어떤 것이고, 미래의 광장이란 무엇인지 자문하게 만든다. 쉼 없이 자행되는 부조리와 불평등에서부터 난민, 생태, 재난 등의 단어가 부유하는 가운데 개인과 공동체, 실존과 타자, 주체와 객체 같은 명사들이 밀실과 광장,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경계 없이 오간다.


결과적으로 ‘광장’전은 역사와 미술의 상관성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그만큼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서울관의 경우 짜임새가 헐겁고, 과천관은 의미 대비 너무 많은 작품을 몰아넣었다. 중복되는 작가도 여럿 된다.


그러나 가장 거슬리는 건 전시를 통해 사회라는 거대한 광장에서 부조리에 대항하며 정의가 살아 있는 공평한 세상을 지향했던 예술인들을 호명하고 있지만, 정작 불공정한 관장 임명 논란과 같은 국립현대미술관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선 침묵해왔다는 점이다. 서푼짜리 밥그릇을 대신할 용기도, 광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