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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산세에 들어서면, 지침을 따라야 한다. 줄을 서고, 버스에 오르고,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산에서 수행되는 완벽한 매일의 군무에 동참한다.” 한국과 덴마크를 오가며 활동하는 한국계 덴마크 작가 제인 진 카이센은 지난해 여름 백두산 관광길에 올랐다. 북한과 중국이 반씩 나눠 갖고, 이름도 각자 백두산·창바이산이라 달리 부르는 ‘민족의 영산’에 가기 위해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코스, 지린성 동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로 향했다. 연길에서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가 병기되어 있는 간판을 보았다.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세계주의는 다양한 보폭을 허용한다.”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산 이야기, 2017, 멀티미디어 설치, 2채널 비디오 프로젝션, 아카이브, 사운드 설치 ⓒ 제인 진 카이센

 

 

그는 경계를 흐르며 국경을 가르는 강물을 보았다. “국가는 국경에서 자신의 힘을 가장 격렬하게 전시한다.” 남북관계에 순풍이 불면 중국과 남한 개발자들이 몰려들어 이 지역의 땅을 샀단다. 바람이 멈추면, 신도시는 황량하게 방치되었다. 작가의 발길은, 한때 불함산·단단대령·개마대산·도태산·태백산·백산이었으며, 이제 장백산·백두산이라 불리는 성스러운 산으로 향했다. 한국인에게는 환웅이 사람이 되고자 하는 호랑이와 곰을 만난 산, 만주인에게는 분화구에서 몸을 씻던 선녀가 붉은 열매를 먹고 낳은 그들의 조상 부쿠리 용손이 탄생한 산, 북한 사람들에게는 김일성이 일본에 대항해 투쟁했던 산이다. “문화에 따른 표현들은 그 산의 상상적 풍성함에 상응한다. 하나의 주제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변주되고 공명한다.”

 

작가는 고요한 천지의 성스러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고요를 깨뜨리며 자리다툼에 집중하는 이들의 몸짓을 보았다. 그러다 그마저도 덮는 천지의 숭고함이 불현듯 관광의 욕망을 무너뜨리는 순간을 보았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 산 앞에 국경을 긋고, 이름을 붙이는 시간을 보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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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러브 디퍼런스, 2003

 

2003년 2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대규모 항의 시위가 열리던 주말, 뉴욕에서 만난 비평가 몰리 네스비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작가 리크릭 티라바니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전쟁, 빈곤, 자연파괴, 금융위기 같은 불안감에 흔들리는 일상 속에서, 지구의 멸망을 예견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토피아’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 키워드는 ‘여기 아닌 어딘가’를 상상하며 ‘지금 여기’를 들여다보는 계기는 될 수 있었다.

 

기획단은 만남이 교차하는 물리적이고 개념적 장소 ‘유토피아 스테이션’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들은 작가들에게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담은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이 작업들을 모아 그해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 ‘유토피아 스테이션’을 설치했다. 참여작가들 가운데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는 전시장 안에 거울로 된 대형 테이블을 설치한 ‘러브 디퍼런스’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유토피아’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유토피아 스테이션에는 유토피아를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이 스쳐간다. 사람들은 이 역에 잠시 멈추어, 듣고 보고 휴식을 취하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눈다. 미래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를 세계를 상상하는 이 플랫폼 안에서, 다양한 의견이 모이고 흩어졌다. 공연, 콘서트, 강의, 독서 모임, 영화상영회, 파티, 이벤트가 열리는 ‘역’은 유토피아로 가는 노정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장소가 되었다.

 

이후 전시, 포럼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유토피아 스테이션에는 300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참여해 유토피아에 대한 그들의 ‘정의’를 찾아갔다. 웹사이트 projects.e-flux.com/utopia/에서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테마로 한 지상 포스터전이 열리고 있으며 모든 포스터는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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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장 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 7월11일, 12일, 13일, 2013, 캔버스에 아크릴릭, 121.9×91.5㎝ ⓒ 데이비드 호크니

 

평생 그림을 탐구하고 실험을 놓지 않았던 데이비드 호크니였지만, 그의 조수이자 동료인 도미니크 엘리엇이 사망한 뒤 몇 달간은 좀처럼 붓을 들 수 없었다.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 방문한 미국에 매료된 호크니는 LA로 이주했고 30여년의 시간을 보냈다. 2004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하늘, 숲, 나무, 꽃을 그리면서,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기후 안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계절감을 만끽한다. 그는 풍경 안에서 순환하는 계절에 따른 생명의 운동, 한계를 알 수 없는 다양성을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자연 속에서 순리를 만나는 일이었다. 너무 낡은 매체이기 때문에 동시대의 감성을 담을 수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고, 세월의 경험을 담을 수 있어서 나이든 사람의 예술이라고도 묘사되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는 새로움과 담을 쌓지 않았다. 오히려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꾸준히 발굴하며 늙어가는 중이었다.

 

호크니가 잠들어 있던 시간, 그의 집 한쪽에서 23세의 청춘 엘리엇은 약물과 술에 취해 독극물을 마시고 사망했다. 조수의 죽음을 계기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 호크니는 작업을 멈추고, 영국을 떠났다. LA에서도 고통을 동반한 침묵의 시간은 이어졌지만,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그와 같이 엘리엇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조수 장 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의 초상이 그 출발점이었다. 두 손에 머리를 파묻은 채,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호크니의 통증을 본다. 남겨진 자들은 고통 안에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 그는 이 작업을 시작으로 82명의 친구, 동료의 초상과 1점의 정물화를 완성했다. 한 작품, 한 인물을 위해 3일의 시간을 보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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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범이 민통선 마을 대피소에서 마주한 장면은 상상과 달랐던 모양이다. 어떤 마을 대피소 안에는 감자만 가득하다던데, 그가 방문한 곳은 다양한 운동기구를 갖추고 있었다. 비상시에는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돕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테지만, 평상시라면 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돕는 역할도 기꺼이 수용하는 다목적 공간인 셈이다.

 

북한으로부터 언제 날아들지 모를 포탄의 사정거리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 위협을 가정하고 대피를 준비할 때 피어나는 ‘공포’의 무게는, 헬스장으로 변신 가능한 대피소의 무게감과 비슷해졌을지도 모른다. 불안감은 지독한 일상이 되어 불안해도 불안하지 않은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박준범, 대피소 리허설, 2015, 3채널 비디오, 27분17초 ⓒ박준범

 

작가는 북한과의 경계지역에 있는 마을에 북으로부터 위협이 닥치는 긴박한 재난 상황을 가정했다. 재난 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대피소로 피하거나 대피소를 만드는 일일 터. 작가는 ‘대피소 리허설’을 기획했고, 일곱 사람이 이 과정에 참여했다. 건축가가 대피소 구조 설계에 합류했다.

 

산기슭 반지하에 위치하며, 정원 20명 규모로 가정한 이 대피소는, 실제 경기도 어딘가에 위치한 실내공간에 설치되었다. 급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처한 대피소에 과밀수용은 필연적이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50명이 30일간 외부와 격리되어 거주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대개의 경우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없는 대피소의 구조를 고민하며 건축가와 복층 설계를 협의했고, 정원초과 상황에서도 서로가 가급적 쾌적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편의시설도 고려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주변에서 주워온 폐자재, 사물들이 새로운 쓰임과 역할을 부여받아 대피소의 외피와 내부를 구성했다. 완성과 동시에 해체되기 시작한 대피소는, 재난이 일상이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한시적이고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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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10여년 전, 기술 덕분에 아주 빠른 속도로 정보, 지리, 경제, 문화, 정치의 벽이 무너지고 있으므로, 세계는 평평할 뿐 아니라 더욱 평평해질 거라고 한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은 여전히 유효할까.          

 

그는 평평한 세계에서 경쟁자들은 공평한 기회를 획득하고, 가치는 수평적으로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경제 분야의 경쟁은 평등해질수록 치열해질 테니까, 개인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어떤 학자들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세상의 면면을 언급하면서 세계는 둥글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하다고 했다.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상대성, 1953, 판화, 282×294㎜

 

130여년 전, 에드윈 애벗은 2차원의 납작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플랫’한 세상 속에 사는 이들은 직선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신분이 높을수록 오각형, 육각형 등 더 많은 각을 갖고 있었고, 신분에 따른 꼼꼼한 차별이 플랫랜드 전역에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 위치는 상승해도 여전히 작동하는 경직된 계급사회의 프레임 안에서 갑갑증을 느끼던 이들은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희망을 꿈꾸었다. 하지만 자신이 갇혀 있는 ‘차원’에서 벗어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60여년 전, 에셔는 3개의 공간 차원과 1개의 시간 차원을 가진 시공간 구조를 상상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납작한 화면에 그려 보았다. 여러 개의 중력장이 공존하는 평면 안에서, 누군가에게는 수직이 누군가에게는 수평이 되는 장면을 프레임 밖의 이들은 조망한다. 평면 속에서 각자의 중력에 기대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를 알아차릴 수 없을지 모른다.       

 

에셔의 ‘상대성’에서,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세상, 다름이 공존해야 하는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이들의 목소리는, 납작한 스크린들과 함께하느라 우리의 세상이 사실은 요철투성이임을 깜박 잊곤 하는 나에게 뾰족한 가르침을 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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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지지자들 근처를 행진하는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 참가단. 1987·12·12 ⓒ박용수

 

1987년 12월12일, 앰배서더 호텔과 태극당이 보이는 동국대학교 정문 앞 도로. 사람들의 행렬이 줄지어 있다.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사람들은 같은 무리로 보이지만, 크게 두 부류로 갈라진다. 한쪽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종필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 그리고 다른 쪽은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 참가자들로 김종필 후보의 유세 활동을 방해했다.

 

당시 13대 대통령 선거전 초반에 12·12 사태가 주요 쟁점으로 등장했다. 12·12 반란주범 규탄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12·12는 노태우를 비롯한 일부 정치군인들이 정권욕에 사로잡혀 일으킨 반국가적, 반민주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그런데 12·12의 전철은 5·16이며, 김종필은 5·16의 주역이기 때문에 규탄의 대상은 노태우와 김종필이 서로 겹쳐진다. 한 장의 사진 안에 김종필을 지지하는 이들과 그를 절대 지지할 수 없는 이들이 공존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한 인물을 향한 상반된 반응은, 지난 23일 김종필 별세 후 논란 중인 서훈 문제의 입장 차이를 상징하는 것 같다. 흔히 김종필에게도 분명한 공과가 있고,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부당하게 훔친 권력에 기반했다면, 공이든 과이든 장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장물이 좋다고 해도 훈장까지 줄 수는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으로 무엇을 했는가보다 권력을 어떻게 획득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5·16과 12·12 같은 군사 쿠데타는 반복될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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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생명을 위협하는 날. 건물이 허물어지는 날. 다리가 무너지는 날. 배가 가라앉는 날. 그런 날들이 올 것을 누가 알았을까. 전조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균열은 사소하게 출발하고, 균열은 마치 처음인 양 반복되었다. 부조리를 인내하는 날들의 끝에 있는 것은 절망이었다.

 

송주원,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2017, 댄스필름

 

2016년 겨울을 광화문에서 보내며 송주원은 인간의 안일한 태도가 이 사회에 큰 사건과 상처를, 위험과 공포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는 가운데,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시인 김수영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작가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나의 삶에서 ‘반성이라는 것’을 언제 했던가. 제대로 한 적은 있던가.

 

절망의 날들을 보내던 그해 겨울, 작가는 이 질문을 안고 작업을 시작했다. 김수영의 시 ‘절망’의 시구를 모티브로 한 여성의 하루를 풀어놓은 댄스 필름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은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조망하여 일상의 반성과 절망에 대한 질문을 몸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이었다.

 

한없이 ‘일상적’인 하루 일과 속에, 귀신과 함께하는 판타지적인 순간들이 섞여 들어가는 가운데, 작가는 주인공이 퇴근 후 식탁에 앉아 마시는 와인병에 ‘킬러’를 써넣고, 곳곳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TV에서는 이제 탄핵된 대통령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에 미소 지으며 인터뷰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주인공은 손으로 삶은 계란을 부수며 ‘분노’를 표출했고, 주인공과 ‘동거’ 중인 귀신들은 정신없이 달력을 찢어 넘기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때만 해도, 세상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작가는 절망의 끝에서 ‘구원’의 순간을 만난 이들 앞에, 끝까지 반성하지 않을 이들 앞에,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현실의 절망과 희망의 역설을 내놓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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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이유는 감정이 아니라 참여의 의지라고 했다. 분노를 단념하지 않아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분노해야 행복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일상의실천,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2016, 파이프 설치, 1500×1500×3600㎜ ⓒ일상의실천

 

그는 아낌없이 분노했다. 운전기사, 경비원, 가사도우미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쏟아내며 분노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병명을 내세우니 그들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그는 포스터 속 여성의 눈빛에 분노했다. ‘더럽고’ ‘개시건방지고’ ‘찢어버리고 싶은’ 눈빛을 파내니 그들이 분노했다. 그는 계산하는 편의점 직원에게 분노했고, 느리게 가는 장애인에게 분노했고, 뛰어노는 어린이에게 분노했다. 단식하는 정치인에게 분노했고, 토론하는 도지사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그는 최저임금 인상에 분노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시인은 분개했다. 설렁탕집 주인에게, 야경꾼에게, 이발장이에게 분개하고 반항했다. 이내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문장으로 시를 지었다. 

 

디자이너 그룹 일상의실천은 김수영의 이 시구로 조각을 만들어 한옥 마당 한가운데에 세웠다. 시구는 식수와 오물이 동시에 관통하는 배수관으로 만들었다. 파이프를 절단하고 다시 이어 붙여 만든 시구의 미로 속으로 분노의 명분과 배설의 쾌감이 뒤엉켜 흐를 터였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조그마한 일’에 분노한다고 했다.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분노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 배수관에 부조리한 사회를 향하지 못하는 ‘외적 분노’와 ‘내적 자조’를 동시에 실어 나르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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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뉴욕에 체류하고 있었던 대만 출신 작가 테칭 시에는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살고 있던 맨해튼 아파트에 출퇴근 기록기를 설치한 뒤 매시 정각에 출근카드를 찍고, 기계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잿빛 유니폼 차림이었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기록하던 이 기계는 예술가의 예술 활동을 냉정하게 관리 감시한 끝에 예술 작품이 되었다.

 

테칭 시에(Tehching Hsieh), 일 년의 퍼포먼스 1980~1981, 편지, 사진, 시계, 16㎜ 필름, 유니폼 ⓒ 테칭 시에

 

이 퍼포먼스는 1980년 4월11일을 시작으로 1년간 이어졌다. 365개의 펀치 카드, 365개의 필름 스트립이 쌓였다. 삭발한 채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그의 머리는 장발이 되었다. 1년간 그는 50분 이상 아파트를 떠날 수 없었다. 50분 이상 잠들 수 없었다. 1년은 8760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133장의 순간은 기계의 오류로, 인간적인 오류로 놓쳤다. 그가 기록한 1년의 초상은 6분의 타임 랩스로 정리되었다.

 

테칭 시에는 거대한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대던 시시포스를 언급했다. 형벌처럼 반복되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 출근카드를 펀칭해야 하는 다음 시간을 기다렸다. 1초의 어긋남도 없이 정해진 임무를 마친 후 곧바로 다음 시간을 준비했다. 그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단조로운 노동을 반복하며 그는 철저하게 시간을 소비했다.

 

열심히 살든, 게으름을 피우든, 창의적으로 사고하든, 진부한 패턴을 반복하든 시간은 흘러갔다. 그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시간이 멈출 일은 없었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없었다. “나는 예술계가 나에게 기대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출구, 이것이 나의 자유다.” 그는 이렇게 말했지만 시간을 낭비한 끝에 그는 ‘예술 작품’을 완성하고 말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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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피슐리·다비드 바이스(Peter Fischli and David Weiss), Der Lauf der Dinge(The way things go), 1987, 16㎜ 컬러, 필름 ⓒ이카루스 필름

 

인간계는 복잡하다. 쉬운 길을 어렵게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찌나 얽혀 있는지, 하나의 에피소드가 엉뚱한 곳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미국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1883~1970)는 아주 간단한 일도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다룬 만화로 인기를 끌었다. 생김새도, 작동원리도 한없이 복잡하고 심오해 보이지만, 결국 하는 일은 냅킨을 흔들거나, 우산을 펼치거나, 등을 긁는 정도다. 효율성 제로의 ‘골드버그 장치’를 고안해, 복잡하게 머리 굴리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풍자한 그는 원자폭탄의 위협을 다룬 카툰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가 고안한 비효율적 기계는 “최소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비판하면서 등장했지만, 그의 의도는 살짝 빗나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간들은 단순한 목적을 위해 복잡하게 움직이는 장치들을 만들었고, 골드버그 장치 구현 대회까지 열어 자신의 ‘창의력’을 과시했다.

 

골드버그 장치는 예술가에게도 작업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듀오 작가 피슐리와 바이스는 골드버그 장치처럼 작동하는 작품 ‘상황이 흐르는 방식’을 발표했다. 실을 따라 타들어가던 불꽃이 타이어를 잡고 있던 선에 닿자 그 선이 툭 끊어지며 타이어는 앞으로 굴러간다. 타이어는 드럼통을 치고, 드럼통은 초를 건드리고, 촛불이 바닥에 쏟아진 기름에 닿고, 기름의 불길이 짚단을 태운다. 무대에 오른 사물들은 마치 스스로 동력을 가진 양 구르고 뒤틀리고 넘어지고, 불타오른다. 작가는 작은 불꽃에서 출발한 일련의 연쇄 작용을 통해 시스템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상황을 풍자했다. 작가의 의도는 그랬지만, 의도가 빗나갈지도 모른다는 건 예측가능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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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슬프면 몸짓이 슬퍼지는 걸까, 슬픈 동작이 슬픈 마음을 가져오는 걸까. 카메라 앞에 앉은 바스 얀 아더르는 슬퍼하기 시작했다. 슬픔의 종착역은 눈물인 모양이다. 그는 울기 위해 집중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 그는 눈을 감고, 입술을 오물거리고, 볼을 찌푸렸다. 손으로 머리칼을 휘젓고, 눈꺼풀을 문질렀다. 슬픈 제스처로 슬픈 감정을 끌어올리는 사이사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살짝 턱을 들어 올리고 슬그머니 눈을 뜨는 순간 그의 표정에서는 불현듯 슬픔이 사라졌다. 그는 계속 슬퍼했지만, 곧바로 충분히 슬퍼지지는 않았다. 슬픔의 동작이 커지면서, 드디어 그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성인 남성의 눈물을 볼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I’m too sad to tell you), 1971, 16㎜ 필름, 3분34초 ⓒ Mary Sue Ader-Andersen

 

소리 없는 흑백 영상 속에서 그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오열 사이사이 한숨을 돌렸다. 그때마다, 그를 둘러싼 슬픔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열의 표정을 짓는 순간 다시 그는 슬퍼졌다. 슬픔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슬픔이 멈추는 순간의 공백이 차가웠다. 작가의 감정에 동화되던 관람자의 감정에 자꾸 균열이 갔다. 그는 3분34초간 슬퍼했다. ‘전달할 수 없는 감정적인 상태’를 극도의 슬픔으로 표현했다는 작품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의 기능을 상기시켰다. 타인의 슬픔에 닿는 일은 힘들다.

 

‘슬픔’을 작업했던 그는 그로부터 4년 후, 바다 위에서 사라졌다. 초소형 보트를 타고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도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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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그리몬프레즈, 다이얼 히-스-토-리, 1997~2000, 비디오, 68분 ⓒ요한 그리몬프레즈


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며 비행기는 서서히 하강 중이다. 영상에 맞춰 흐르는 잔잔한 클래식 선율에 취해, 늘 그렇듯 평화로운 비행과 여행의 마무리를 예감한다. 멀리 보이는 활주로에는 안전한 착륙을 도와줄 조명등이 길을 밝힌다. 착륙 중인 듯 비행기 조종석이 조금씩 흔들리고, 뒤편에서 문득 불꽃이 번져 나오더니 조종석이 폭발한다. 비행기는 폭발했다.

 

미디어가 어떻게 비행기 납치 사건을 묘사해왔는지에 대한 역사를 추적한 ‘다이얼 히-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벨기에 출신 작가이자 영화감독 요한 그리몬프레즈는 뉴스, 영화, 홈비디오 클립 등에서 발췌한 장면들만을 모아 경쾌한 편집으로 하이재킹 연대기를 완성했다. 작가는 돈 드릴로의 소설 가운데 기술을 맹신하는 현대인들의 현실을 비판한 <화이트 노이즈>와 소비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을 상실한 군중의 폭력성을 다룬 <마오2>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소설가와 테러리스트의 가상 대화로 영상의 내레이션을 구성했다.

 

테러리스트가 하늘을 지배하던 하이재킹의 ‘황금기’인 1970~1980년대, 납치범들의 폭력성을 담은 TV프로그램은 프라임 타임에 배치되었다. 매스컴이 쏟아내는 이미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납치범들의 정치적 메시지는 오히려 언론에 ‘납치’되기에 이른다. 작가는 1960년대 테러 현장의 납치범은 로맨틱한 혁명가처럼, 1990년대 납치범은 텔레비전 세트에 폭탄을 설치하는 익명의 존재처럼 편집하여, 방송 카메라가 시청자에게 ‘죽음’과 ‘폭력’의 영상으로 전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허구’마저도 ‘사건’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미디어발 이미지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때, 미디어를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지 모른다. 작가는 1995년 빌 클린턴과 보리스 옐친이 워싱턴 회담을 마친 후 박장대소하는 장면으로 테러의 연대기를 마무리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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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란 무엇인가. 질문은 간단하지만 대답은 간단하지 않은 이 주제를 안고, 2017년 프랑크푸르트의 쉬른미술관은 ‘평화’전을 열어 우리 생활 속에서 평화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베카타 오즈딕먼, 폴 뮐러, 블루닷, 2017 ⓒ쉬른미술관

 

“평화의 역사는 인류 자체만큼 오래 되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으로 간주되는 데 반해, 평화는 뭔가 허약해 보입니다. 언론에 전쟁과 폭력은 수익성을 보장하는 사건이며, 정치인들에게도 중요한 관심 대상입니다. (…) 전시회 ‘평화’는 평화로운 삶과 평화를 향한 다른 접근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라고 언급한 큐레이터 마티아스 울리히는 평화를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해 생태계에 관련된 모든 것들 사이의 상호 작용과 의사소통의 과정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물, 식물, 동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환경에 중점을 두고 평화를 바라보고자 했다.

 

미술관은 전시와 연계하여 새로운 평화 로고 공모전을 진행했다. 600여명이 참여한 이 공모전 출품작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드러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비롯한 5명의 배심원들은 그 가운데 ‘파란 점’을 우승 작품으로 선정했다. 터키의 베카타 오즈딕먼과 독일의 폴 뮐러가 동일한 디자인을 제출했다.

 

베카타 오즈딕먼은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는 국경과 장벽의 단절을 극복하고, 자연과 더불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맑고 푸른 세상의 상징이 바로 평화의 상징일 수 있다고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했다. 폴 뮐러는 보이저 1호 탐사선이 우주에서 지구 사진을 찍었을 때 그저 파란 점이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지구의 평화 상징으로 푸른 점을 디자인한 이유를 설명했다. 푸른 별 지구에 사는 모두가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그렇게 파란 점이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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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콜롬비아 대통령 후안 마누엘 산토스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와 평화협정에 서명하여, 52년간 2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콜롬비아 내전 종식의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국민투표 결과, 협상안은 부결되었다. 그래도, 산토스 대통령은 콜롬비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376명의 후보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택되었다.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 Sumando-Ausencias(Counting the Absences), 2016, 설치 ⓒ도리스 살세도, Secretaria de Cultura de Bogota

 

평화협상이 부결되자, 콜롬비아 국민들은 국가의 평화 협상 추진을 지지하기 위해 거리에 모여들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명성이 높은 국제적 예술가 도리스 살세도는 350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내전의 희생자 2300명의 이름을 재 가루로 흐리게 써넣은 천 조각을 꿰매 볼리바르 광장을 뒤덮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천의 길이는 7000m에 달했다. ‘Sumando Ausencias’(부재 더하기)라는 제목의 이 퍼포먼스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작가는 “이 작업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집단 생산을 넘어서는 집단행동의 가능성을 탐구한다”고 말하면서, 낯선 이들이 서로 나란히 앉아 죽음과 실종을 생각하면서 바느질로 옷감을 이어 붙여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덧붙였다. 이 작업은 국내외 언론과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작가가 선택한 ‘명단’은 전체 희생자 가운데 7%에 불과하고, 작업 소스로 사용한 명단 역시 과연 신뢰할 만한지 확신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런 작품을 하는 것이 진정 희생자를 위한 것인지, 작가 자신의 ‘작품’을 위한 것인지도 의심했다. 함께 모여앉아 바느질을 했던 자원봉사자들은 끊임없이 바느질의 완성도와 테크닉을 요구한 작가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예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만 지속적인 질문을 던질 뿐이다”라고 했던 살세도는 이 작업으로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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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 1982, ⓒYi-Chun Wu/MoMA


해가 뜨고 지는 일, 눈을 뜨고 감는 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일, 전원을 켜고 끄는 일, 일어나고 잠드는 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 꽃이 피고 지는 일, 계절이 오고 가는 일, 만나고 헤어지는 일, 달이 차고 기우는 일, 태어나고 죽는 일, 새것이 낡아가는 일. 나는 소소한 일, 거대한 일이 촘촘하게 반복되는 세상에 파묻혀 살고 있다.

 

전통을 거부하는 일이 전통인 예술계에서,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가 음악의 전통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지독하게 단순한 반복이었다. 반복되는 악절을 일치시켰다가 어긋나게 만들고 다시 일치시키는 전개가 되풀이되는 그의 음악은 진부하거나, 지루하거나, 기존 체계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법한 정도의 혁신이었다.

 

벨기에를 떠나 뉴욕 유학길에 올랐던 무용수 드 케이르스마커의 짐가방에는 스티브 라이히의 음반이 있었다. 1982년, 22세의 드 케이르스마커는 그의 음악과 교감하여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을 발표했다. 엄격하게 반복적인 동작으로 구성한 이 실험적인 작품으로 그는 ‘무용에 혁신을 촉발한’ 안무가가 되었다. 무용수가 반복하는 회전 동작이 쌓여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은 움직임을 따라 무대 위 하얀 모래 위에서 꽃처럼 피어올랐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업에 대해 ‘그저 음악에만 기대지 않고, 음악 위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했다’고 덧붙이며, 그의 행보에 독보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초연 이후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연하기까지, 300회인지 400회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해 온 이 춤은 이제 ‘전설’이 되었고, 여전히 그 춤을 추고 있는 ‘미니멀리즘 무용의 교과서’ 드 케이르스마커는 이제 58세가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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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정한 유형의 힘을 알아차리는 데 유난히 밝은 눈을 가진 작가라고 평가받았던 한스 하케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 제안을 받고, 독일관에 축적되어 있는 히틀러의 욕망에 주목했다.

 

한스 하케, 게르마니아, 1993, 설치,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 파빌리온 ⓒ한스 하케

 

1909년 베니스의 자르디니 정원에 세 번째 국가관으로 자리 잡은 독일관은 히틀러가 추구하는 나치의 미학 원리, 독일 예술의 새로운 정신을 담기 위해 1938년 재건되었다. 로마제국을 넘어서는 거대한 독일제국의 건설을 꿈꾼 히틀러는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으로 도시계획을 추진했고, 베니스의 독일관도 그 맥락 안에서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히틀러의 비전을 그대로 투영한 독일관은 패전 이후, 나치즘 시대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들의 과제는 독일관이 품어내는 나치의 역사를 지우고, 건물의 메시지를 무력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1991년 통일 이후 독일 사회에 네오나치즘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바라보며, 그는 1934년 히틀러가 베니스비엔날레를 방문했던 당시의 사진을 국가관 입구에 걸었다. 입구를 통과해 실내로 들어선 관객은 공허하게 빈 공간과 산산이 부서진 바닥면을 만난다. 그는 내부 바닥 판을 조각내어 방문객들이 비틀거리며 걷도록 만들었다. 나치의 깃발 아래, 부서지는 콘크리트 조각을 밟으며 ‘게르마니아’를 통과하는 관객들은 ‘합법적’ 파괴와 학살이 자행된 전쟁의 참상을 연상했다. 독일의 건강한 미래는 그릇된 역사를 철저히 분쇄한 후에나 올 수 있음을,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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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처럼 전시장 곳곳에 툭툭 쌓여 있는 시멘트 벽돌담 너머로 화면 곳곳이 떨어져 나간 대형 모니터가 서 있고, 부서져 나온 모니터 조각들은 전시장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깨진 화면 위로 모델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드리 헤밍웨이의 모습이 보인다. 노란 블라우스를 입은 그는 채광이 좋은 사무실에 앉아 옥수수를 먹는 중이다.

관절재활치료기구(CPM)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테이블 위 옥수수에 닿는 것은 영 쉽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옥수수를 입에 넣는 데 성공한다.

 

예스퍼 유스트, servitudes, 2015, 영상, 설치, 아이뮤지엄 설치장면.

 

옥수수를 씹는 촉촉한 소리와 피아노의 영롱한 선율이 하모니를 이루는 가운데, 어색하면서도 우아한 몸짓으로 옥수수를 먹으면서 간간이 관객을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헤밍웨이의 모습은 아름다운 옥수수 광고모델 같다.

 

덴마크 출신 작가 예스퍼 유스트는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기계의 힘을 빌려 옥수수를 먹는 찰리 채플린을 보았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손발이 묶인 그는 점심시간을 아끼기 위해 공장주가 도입한 자동 급식 기계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를 먹었다. 빠르게 회전하는 급식 기계는 채플린의 이빨을 갈아버리고, 컨베이어 벨트의 미친 속도는 그의 정신을 갈아버렸다.

 

<모던타임즈>의 시간으로부터 세월이 꽤 흘렀으니, 무언가 달라졌을까. 채플린의 시대와 드리 헤밍웨이의 시대를 옥수수(GMO)와 기계로 연결한 예스퍼 유스트는 옥수수 뒤에서 이익을 거둬들이는 이의 그림자를 작품 속에 포착했다.

 

전보다 섬세한 속도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는 그림자의 몸짓은 더없이 우아했고 매력적이었다. 그림자가 마련한 판타지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기꺼이 올라탄 이들은 옥수수를 즐겼고.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욕망을 연료 삼아 컨베이어 벨트는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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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쉬린 코드르, 확장된 바다, 2017, 비디오 설치, 12시간, ⓒ네쉬린 코드르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지구는 여전히 시속 1600㎞의 속도로 자전하고, 시속 10만㎞의 속도로 공전 중이니,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분주하고 번잡한 이유는 모두 정신없이 돌고 달리는 지구 때문이다. 하루를 돌리고, 계절을 달리는 지구의 속도 위에 흐르지 않는 건 없다.

 

네쉬린 코드르는 베이루트의 야외 풀장에서 흘러가는 하루의 절반을 영상 속에 붙잡았다. 어둠을 뚫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어떤 움직임과 물살을 가르는 소리로 영상은 시작한다. 지구 자전의 속도에 맞춰 붉은 기운이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면 순식간에 날이 밝는다. 수평의 평평한 프레임 안에 포착한 야외 풀장 너머 지중해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푸른 하늘이 시원하다.

 

작가는 야외 풀장에서 줄기차게 헤엄치고 있다. 일정한 속도로 코스를 오가는 그는, 규칙적으로 프레임 안을 헤엄쳐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어느새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태양이 표준 자오선을 지나는 정오에 한 시간 남짓 풀장을 벗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수영했다. 수영하는 작가의 움직임 너머 지중해에서는 간혹 보트가 떠 있다가 지나가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첨벙거리다 지나가고, 파도가 일렁이다 지나간다. 풀장도, 바다도, 하늘도 푸르게 고요한데, 그 지독하게 잔잔한 12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푸른색이 알아차릴 수 없는 속도로 눈앞에서 지나간다. 여전히 지구는 정신없이 돌고 있지만, 세상의 소음을 뒤로한 채 잔잔한 그 푸르름 앞에, 지난하게 반복되는 작가의 몸짓 앞에 느긋해지는 마음의 속도가 불편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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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제니 홀저가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 작업을 내건 이후, 사람들은 권력 남용의 현장에 이 경구를 소환했다. 급기야 지난해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인용된 문장으로 언급되며, 권력 앞에 침묵하는 이들을 각성시켰다.

 

제니 홀저, 트루이즘-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Truism-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 1982, 컴퓨터 애니메이션,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6.1×12.2m ⓒ제니 홀저, 퍼블릭 아트 펀드, 사진: 존 마케일

 

지난해 10월, 미술전문잡지 아트포럼에서 일했던 아만다 슈미트는 잡지의 공동 발행인 나이트 랜즈맨의 성희롱을 폭로했다. 신디 셔먼, 로리 앤더슨, 제니 홀저 등의 예술가뿐 아니라 아트딜러 사디 콜, 바버라 글래드스톤, 큐레이터 로라 호프먼, 리사 필립스 등 7000명 이상의 미술계 여성들이 아만다 슈미트의 용기를 지지하며 미술계 내 권력을 이용한 성희롱을 고발, 비판하는 움직임에 동참했다.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We Are Not Surprised·WAN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제니 홀저의 경구에서 출발하는 홈페이지 ‘www.not-surprised.org’에 “우리는 자원 제공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비웃음당하고, 짓눌리고, 희롱당하고, 경멸받고, 협박받았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게시하고, 권력 남용의 현장에 늘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했다. 잡지는 사과하고, 나이트 랜즈맨은 사임했다. 아만다 슈미트는 침묵을 깨뜨린 용기로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채 흐르지 않았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트포럼과 나이트 랜즈맨은 ‘책임’으로부터 살짝 비켜서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권력자가 ‘승승장구’하는 일은, 늘 그렇듯이 놀라울 것도 없지만.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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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극장에서 상영 중인 마거릿 혼다의 작품 ‘6144×1024’는 그저 ‘색’이었다. 영화 전체를 한 컷에 담고 싶어서 영화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놓았던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가 필름에 포착한 스크린이 하얀 색이었다면, 영상의 의미에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마거릿 혼다의 작품은 색의 스펙트럼이었다. 하나의 색이 다른 색으로, 또 다른 색으로 일정한 속도에 맞춰 변해갔다. 어둠에 몸을 묻고,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영상에 몰입할 기대감으로 극장을 찾는 이들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는 화면이었다. 서사의 개연성이랄 것도, 미장센이랄 것도 없는 이 영상에서는 1초에 24프레임씩 약 300만장의 컬러 스펙트럼이 36시간22분2초간 흘러갔다.

 

마거릿 혼다, Spectrum Reverse Spectrum, 2014 ⓒ마거릿 혼다

 

경험을 지배하는 물질의 세계와 그 과정을 깊이 살펴보는 작업에 집중하는 마거릿 혼다는 기술이 지시하는 지침을 고스란히 수용하기보다 그 기술의 예측 가능한 기능을 배반하거나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상상을 풀어내는 실험을 즐긴다. 최근 디지털 영화 프로젝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 작가는 디지털 영화 프로젝터로 구현 가능한 모든 색을 펼쳐보이고 싶었다. 적색 청색 녹색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조합 6144종의 색을, 1024단계에 달하는 거의 모든 명도로 볼 수 있는 영상을 완성했다.

 

시작과 끝이 있기야 하지만, 시작도 끝도 큰 의미가 없는 이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끊임없이 극장을 들락거렸다. 누군가는 1분 만에 극장 밖으로 나갔고, 누군가는 1시간 이상 모노크롬 회화처럼 펼쳐지는 스크린을 주시했다. 극장에 머무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색채의 스펙트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거꾸로 흐르지도 않는 시간의 스펙트럼이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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