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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8.04.09 반복
  2. 2018.04.02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3. 2018.03.26 어떤 속박
  4. 2018.03.19 흘러간다
  5. 2018.03.12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6. 2018.03.05 6144 ×1024
  7. 2018.02.26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8. 2018.02.05 슬립시네마호텔
  9. 2018.01.22 화가와 모델
  10. 2018.01.15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11. 2018.01.08 오늘
  12. 2017.12.18 10원의 가치
  13. 2017.12.04 소멸을 생각하는 일
  14. 2017.11.27 잘 잤니
  15. 2017.11.20 잘 지내
  16. 2017.11.13 전시인가, 과시인가
  17. 2017.11.06 터널
  18. 2017.10.30 삼대의 모국어
  19. 2017.10.16 나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20. 2017.09.25 세상 밖이라면 어디든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 1982, ⓒYi-Chun Wu/MoMA


해가 뜨고 지는 일, 눈을 뜨고 감는 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일, 전원을 켜고 끄는 일, 일어나고 잠드는 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 꽃이 피고 지는 일, 계절이 오고 가는 일, 만나고 헤어지는 일, 달이 차고 기우는 일, 태어나고 죽는 일, 새것이 낡아가는 일. 나는 소소한 일, 거대한 일이 촘촘하게 반복되는 세상에 파묻혀 살고 있다.

 

전통을 거부하는 일이 전통인 예술계에서,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가 음악의 전통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지독하게 단순한 반복이었다. 반복되는 악절을 일치시켰다가 어긋나게 만들고 다시 일치시키는 전개가 되풀이되는 그의 음악은 진부하거나, 지루하거나, 기존 체계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법한 정도의 혁신이었다.

 

벨기에를 떠나 뉴욕 유학길에 올랐던 무용수 드 케이르스마커의 짐가방에는 스티브 라이히의 음반이 있었다. 1982년, 22세의 드 케이르스마커는 그의 음악과 교감하여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을 발표했다. 엄격하게 반복적인 동작으로 구성한 이 실험적인 작품으로 그는 ‘무용에 혁신을 촉발한’ 안무가가 되었다. 무용수가 반복하는 회전 동작이 쌓여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은 움직임을 따라 무대 위 하얀 모래 위에서 꽃처럼 피어올랐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업에 대해 ‘그저 음악에만 기대지 않고, 음악 위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했다’고 덧붙이며, 그의 행보에 독보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초연 이후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연하기까지, 300회인지 400회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해 온 이 춤은 이제 ‘전설’이 되었고, 여전히 그 춤을 추고 있는 ‘미니멀리즘 무용의 교과서’ 드 케이르스마커는 이제 58세가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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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예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정한 유형의 힘을 알아차리는 데 유난히 밝은 눈을 가진 작가라고 평가받았던 한스 하케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 제안을 받고, 독일관에 축적되어 있는 히틀러의 욕망에 주목했다.

 

한스 하케, 게르마니아, 1993, 설치,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 파빌리온 ⓒ한스 하케

 

1909년 베니스의 자르디니 정원에 세 번째 국가관으로 자리 잡은 독일관은 히틀러가 추구하는 나치의 미학 원리, 독일 예술의 새로운 정신을 담기 위해 1938년 재건되었다. 로마제국을 넘어서는 거대한 독일제국의 건설을 꿈꾼 히틀러는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으로 도시계획을 추진했고, 베니스의 독일관도 그 맥락 안에서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히틀러의 비전을 그대로 투영한 독일관은 패전 이후, 나치즘 시대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들의 과제는 독일관이 품어내는 나치의 역사를 지우고, 건물의 메시지를 무력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1991년 통일 이후 독일 사회에 네오나치즘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바라보며, 그는 1934년 히틀러가 베니스비엔날레를 방문했던 당시의 사진을 국가관 입구에 걸었다. 입구를 통과해 실내로 들어선 관객은 공허하게 빈 공간과 산산이 부서진 바닥면을 만난다. 그는 내부 바닥 판을 조각내어 방문객들이 비틀거리며 걷도록 만들었다. 나치의 깃발 아래, 부서지는 콘크리트 조각을 밟으며 ‘게르마니아’를 통과하는 관객들은 ‘합법적’ 파괴와 학살이 자행된 전쟁의 참상을 연상했다. 독일의 건강한 미래는 그릇된 역사를 철저히 분쇄한 후에나 올 수 있음을,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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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처럼 전시장 곳곳에 툭툭 쌓여 있는 시멘트 벽돌담 너머로 화면 곳곳이 떨어져 나간 대형 모니터가 서 있고, 부서져 나온 모니터 조각들은 전시장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깨진 화면 위로 모델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드리 헤밍웨이의 모습이 보인다. 노란 블라우스를 입은 그는 채광이 좋은 사무실에 앉아 옥수수를 먹는 중이다.

관절재활치료기구(CPM)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테이블 위 옥수수에 닿는 것은 영 쉽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옥수수를 입에 넣는 데 성공한다.

 

예스퍼 유스트, servitudes, 2015, 영상, 설치, 아이뮤지엄 설치장면.

 

옥수수를 씹는 촉촉한 소리와 피아노의 영롱한 선율이 하모니를 이루는 가운데, 어색하면서도 우아한 몸짓으로 옥수수를 먹으면서 간간이 관객을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헤밍웨이의 모습은 아름다운 옥수수 광고모델 같다.

 

덴마크 출신 작가 예스퍼 유스트는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기계의 힘을 빌려 옥수수를 먹는 찰리 채플린을 보았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손발이 묶인 그는 점심시간을 아끼기 위해 공장주가 도입한 자동 급식 기계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를 먹었다. 빠르게 회전하는 급식 기계는 채플린의 이빨을 갈아버리고, 컨베이어 벨트의 미친 속도는 그의 정신을 갈아버렸다.

 

<모던타임즈>의 시간으로부터 세월이 꽤 흘렀으니, 무언가 달라졌을까. 채플린의 시대와 드리 헤밍웨이의 시대를 옥수수(GMO)와 기계로 연결한 예스퍼 유스트는 옥수수 뒤에서 이익을 거둬들이는 이의 그림자를 작품 속에 포착했다.

 

전보다 섬세한 속도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는 그림자의 몸짓은 더없이 우아했고 매력적이었다. 그림자가 마련한 판타지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기꺼이 올라탄 이들은 옥수수를 즐겼고.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욕망을 연료 삼아 컨베이어 벨트는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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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쉬린 코드르, 확장된 바다, 2017, 비디오 설치, 12시간, ⓒ네쉬린 코드르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지구는 여전히 시속 1600㎞의 속도로 자전하고, 시속 10만㎞의 속도로 공전 중이니,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분주하고 번잡한 이유는 모두 정신없이 돌고 달리는 지구 때문이다. 하루를 돌리고, 계절을 달리는 지구의 속도 위에 흐르지 않는 건 없다.

 

네쉬린 코드르는 베이루트의 야외 풀장에서 흘러가는 하루의 절반을 영상 속에 붙잡았다. 어둠을 뚫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어떤 움직임과 물살을 가르는 소리로 영상은 시작한다. 지구 자전의 속도에 맞춰 붉은 기운이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면 순식간에 날이 밝는다. 수평의 평평한 프레임 안에 포착한 야외 풀장 너머 지중해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푸른 하늘이 시원하다.

 

작가는 야외 풀장에서 줄기차게 헤엄치고 있다. 일정한 속도로 코스를 오가는 그는, 규칙적으로 프레임 안을 헤엄쳐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어느새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태양이 표준 자오선을 지나는 정오에 한 시간 남짓 풀장을 벗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수영했다. 수영하는 작가의 움직임 너머 지중해에서는 간혹 보트가 떠 있다가 지나가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첨벙거리다 지나가고, 파도가 일렁이다 지나간다. 풀장도, 바다도, 하늘도 푸르게 고요한데, 그 지독하게 잔잔한 12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푸른색이 알아차릴 수 없는 속도로 눈앞에서 지나간다. 여전히 지구는 정신없이 돌고 있지만, 세상의 소음을 뒤로한 채 잔잔한 그 푸르름 앞에, 지난하게 반복되는 작가의 몸짓 앞에 느긋해지는 마음의 속도가 불편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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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제니 홀저가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 작업을 내건 이후, 사람들은 권력 남용의 현장에 이 경구를 소환했다. 급기야 지난해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인용된 문장으로 언급되며, 권력 앞에 침묵하는 이들을 각성시켰다.

 

제니 홀저, 트루이즘-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Truism-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 1982, 컴퓨터 애니메이션,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6.1×12.2m ⓒ제니 홀저, 퍼블릭 아트 펀드, 사진: 존 마케일

 

지난해 10월, 미술전문잡지 아트포럼에서 일했던 아만다 슈미트는 잡지의 공동 발행인 나이트 랜즈맨의 성희롱을 폭로했다. 신디 셔먼, 로리 앤더슨, 제니 홀저 등의 예술가뿐 아니라 아트딜러 사디 콜, 바버라 글래드스톤, 큐레이터 로라 호프먼, 리사 필립스 등 7000명 이상의 미술계 여성들이 아만다 슈미트의 용기를 지지하며 미술계 내 권력을 이용한 성희롱을 고발, 비판하는 움직임에 동참했다.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We Are Not Surprised·WAN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제니 홀저의 경구에서 출발하는 홈페이지 ‘www.not-surprised.org’에 “우리는 자원 제공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비웃음당하고, 짓눌리고, 희롱당하고, 경멸받고, 협박받았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게시하고, 권력 남용의 현장에 늘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했다. 잡지는 사과하고, 나이트 랜즈맨은 사임했다. 아만다 슈미트는 침묵을 깨뜨린 용기로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채 흐르지 않았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트포럼과 나이트 랜즈맨은 ‘책임’으로부터 살짝 비켜서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권력자가 ‘승승장구’하는 일은, 늘 그렇듯이 놀라울 것도 없지만.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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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상영 중인 마거릿 혼다의 작품 ‘6144×1024’는 그저 ‘색’이었다. 영화 전체를 한 컷에 담고 싶어서 영화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놓았던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가 필름에 포착한 스크린이 하얀 색이었다면, 영상의 의미에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마거릿 혼다의 작품은 색의 스펙트럼이었다. 하나의 색이 다른 색으로, 또 다른 색으로 일정한 속도에 맞춰 변해갔다. 어둠에 몸을 묻고,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영상에 몰입할 기대감으로 극장을 찾는 이들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는 화면이었다. 서사의 개연성이랄 것도, 미장센이랄 것도 없는 이 영상에서는 1초에 24프레임씩 약 300만장의 컬러 스펙트럼이 36시간22분2초간 흘러갔다.

 

마거릿 혼다, Spectrum Reverse Spectrum, 2014 ⓒ마거릿 혼다

 

경험을 지배하는 물질의 세계와 그 과정을 깊이 살펴보는 작업에 집중하는 마거릿 혼다는 기술이 지시하는 지침을 고스란히 수용하기보다 그 기술의 예측 가능한 기능을 배반하거나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상상을 풀어내는 실험을 즐긴다. 최근 디지털 영화 프로젝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 작가는 디지털 영화 프로젝터로 구현 가능한 모든 색을 펼쳐보이고 싶었다. 적색 청색 녹색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조합 6144종의 색을, 1024단계에 달하는 거의 모든 명도로 볼 수 있는 영상을 완성했다.

 

시작과 끝이 있기야 하지만, 시작도 끝도 큰 의미가 없는 이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끊임없이 극장을 들락거렸다. 누군가는 1분 만에 극장 밖으로 나갔고, 누군가는 1시간 이상 모노크롬 회화처럼 펼쳐지는 스크린을 주시했다. 극장에 머무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색채의 스펙트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거꾸로 흐르지도 않는 시간의 스펙트럼이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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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오덴세, 스웨덴의 말뫼, 오스트리아의 린츠와 그라츠 거리에 “외국인 여러분,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끼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라는 메시지의 주황색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그룹 슈퍼플렉스가 ‘글로벌 콤플렉스’라는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었다. 2001년 가을, 77년간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해 온 중도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선거에 패배했다. 세금 인상, 유로화 도입 등의 정책이 유권자의 반감을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9·11 테러 이후 반이슬람 정서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 집권당의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향한 덴마크 사람들의 불안감도 이들의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 정권을 잡은 보수연립정권은 강경한 이민 정책을 추진했고 자국민 중심주의를 추구했다. 우경화의 출발이었다.

 

슈퍼플렉스, 외국인 여러분,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끼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2002, 벽에 채색, 포스터(사진 Anders Sune Berg)

 

슈퍼플렉스는 ‘덴마크 사람’ ‘외국 사람’을 경계 짓고 국가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보수정권의 정책은 위험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선가는 외국인이건만, 자국민과 외국인의 경계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질문해야 했다. 그들은 거리에 하나의 문장을 던졌다. 이제 사람들은 ‘외국인’ ‘우리’ ‘덴마크인’이 누구인지 다시 토론해야 했다.

 

2016년 덴마크 거리의 광고판에는 백인 가족사진 위로 ‘우리들의 덴마크-우리가 보살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적은 포스터가 붙었다. 반이민 정책을 내세워 제2정당으로 급부상한 국민당(DF)의 광고였다. 이 광고는 덴마크 사회에서 인종차별 등의 논란을 가져왔다. 같은 해 덴마크국립미술관(SMK)은 슈퍼플렉스의 포스터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전시했다. 작가들은 벽면에 메시지를 적어 넣었고,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포스터를 비치했다. 10년이 더 지났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어쩌면 더 나빠진 세상을 향해 사람들은 2002년의 구호를 퍼뜨리며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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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찻퐁 위라세타쿤, SLEEPCINEMAHOTEL(슬립시네마호텔), 2018, 영상, 혼합재료, 로테르담 WTC 설치 장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6일 동안 특별한 호텔을 운영하기로 했다. 4시가 넘으면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겨울,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기간이었다. 로테르담 세계무역센터 한쪽에 ‘슬립시네마호텔’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투숙객을 맞이했다. 

 

전면의 큰 유리창 너머로는 전쟁의 폭격에 초토화된 도시를 과거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개성 있고 실험적인 새로운 건축에 내주어 현대건축의 메카가 된 로테르담의 마천루가 펼쳐졌다. 어둠이 조심스럽게 벽을 대신할 뿐, 전체가 하나로 개방된 객실이라 잠자리가 다 노출되는 환경이었지만, 객실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다가 잠 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한 작가는 도시의 스펙터클을 담은 큰 창문 위로 ‘가장 오래된 TV’라는 보름달을 닮은 스크린을 설치하고, 24시간 내내 영상을 상영했다. 이 영상은 숙면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할 터였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상상력과 교감할 수 있지만, 수면 중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스며들어 어떤 작용을 할 법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아이필름뮤지엄’과 ‘사운드 앤드 비전 인스티튜트’의 협조를 받았다. 한 세기 남짓 인간의 삶과 풍경을 기록한 영상 아카이브 가운데 잠자는 동물, 잠자는 사람, 하늘, 강, 바다, 숲, 항해, 비행 등의 장면을 선택해 편집한 이 영상은 호텔 개장일부터 폐장일까지 단 한순간도 반복되지 않았다. 6일의 러닝타임을 가진 한 편의 작품이었던 셈이다.

 

흘러가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처럼, 반복 없이 변화하는 영상은 투숙객이 마주하는 매 순간을 고유한 경험으로 만들어 주었다. 잊지 못할 하룻밤에 일조한 그 영상이 이미 누군가의 경험을 담은 흘러간 ‘역사’의 콜라주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새로움이란, 고유함이란 다 그렇게 오는 법 아닌가.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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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큐레이터, 동료 작가, 이웃, 가족 등 주변 지인의 초상을 평생 화폭에 담아온 앨리스 닐은 모델과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혼을 포착하는 화가’라는 수식어는 그냥 얻은 게 아니었다. 모델들은 그 과정이 불편했지만, 화가는 그 시간을 통해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잡아냈다. 모델을 향한 화가의 통찰력과, 화가를 대면한 모델의 친밀하기도, 불편하기도 한 시선이 캔버스 위에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형태를 만들었다.

 

앨리스 닐, 지니, 1984, 캔버스에 유채

 

작가의 며느리였던 지니는 종종 앨리스의 모델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발랄했던 젊은 날의 하루, 아이를 안고 있는 행복한 순간이 작품으로 남았다. 80대의 노화가 앞에 지니는 다시 앉았다. 제비꽃 색 원피스를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지니의 모습에서 앨리스가 발견한 것은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깊은 상실감이었다. 눈 쌓인 바깥세상의 냉기가 실내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것 같은 하얀 풍경 안에 앉아 있는 지니는, 복잡한 상념에 젖은 눈빛으로 앨리스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니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슬픔에 무너지곤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는 이 바닥 없는 슬픔에도 무뎌질 터였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화가는, 지니가 겪어내는 애도의 시간을 화폭에 담으면서,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이 보내야 할 감정의 터널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다 지나가겠지만, 캔버스를 사이에 두고 앉았던 모델과 화가 사이의 대화는 화면 위에 남아, 문득문득 그 순간의 감정을 상기시켜 줄 터였다. 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정직하게 캔버스를 만났던 앨리스 닐은 이 작품을 마무리한 1984년, 세상을 떠났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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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 미르자,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파동함수의 붕괴), 2017, 혼합재료 @자블루도비츠 컬렉션, 사진: 팀 보우디츠


그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룬 미르자 특유의 사운드 비트와 이미지가 혼성되어 있는 공간을 지나가야 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전기를 잡아내 전기가 흐르는 과정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드러내 보이곤 했다. 특정 속도로 깜박이는 불빛, 스크린의 영상, 잡음 같기도 한 소리로 드러나는 전류는, 흩어져 있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 다양한 모드로 복잡하게, 하지만 그 나름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룬 미르자가 조율한 빛과 소리의 파장 안으로 진입한 몸은 곧 그가 연출한 전류의 관계망과 동기화된다. 그 몸은 하룬 미르자의 세상에 안착하는, 아니면 포섭당하는 기분을 맛보곤 한다.

 

현란한 공간 너머에는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이라 명명한 밀실이 있었다. 작가는 이 공간을 통해 ‘의식이 물질을 통제할 수 있는가’와 ‘물질이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조사하고 싶었다. 물질과 의식, 진리와 신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탐구하고 싶었다. 그리니치 대학교와 임피리얼 칼리지의 연구자들이 그의 조사에 협력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데 탁월하고, 꿈을 꿀 때, 그리고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분비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 디메틸트립타민(DMT)을 작품 제목으로 끌어왔다. 외부의 감각을 박탈당한 공간에 들어가면 인간의 의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는 예술의 이름으로 실험했다. 사람들은 빛도 소리도 완전히 차단된 무반향실에 들어가 10분 정도 머물렀다. 몸에 지니고 있던 휴대전화, 가방 같은 소소한 물건들은 모두 밖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외부의 정보를 온전히 차단한 이 공간의 침묵은 자연스럽게 내 감각을 내 안으로 집중시켰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내가 만난 것은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잡음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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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좋은 새해가 왔다. 매일 새로운 하루, 매분, 매초가 다시 오지 않을 새로운 시간이지만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그 모든 새로움은 빛을 잃는다.

 

해가 바뀌는 정도는 돼야, 나의 습관을 돌아보고 재정비할 마음이 선다. 명색이 새해인데 목표도 좀 세워야 한다.

 

온 카와라, 오늘, 1966-2014, 혼합재료

 

목표를 향한 집념이 얼마 안 가 흔들리고, 흐려지다가 다음 새해를 다시 기다리는 상태가 곧 온다 해도, 새해니까, 일단 의지를 세워본다.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서면서 맞이한 새해니까, 올해를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1966년 1월4일, 온 카와라는 ‘오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굳이 기억할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 또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특별했을 그 하루를 그리는데 그는 ‘날짜’를 선택했다. 다섯 차례 밑칠을 한 모노톤 캔버스 위에 하얀색 물감을 일곱 번까지 칠해서 산세리프 서체의 날짜를 그려 넣었다. 캔버스 뒷면에는 그날의 신문을 스크랩해서 붙이기도 했다. 당일 자정까지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그 작업은 폐기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말을 한없이 아꼈던 그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기록해 나갔을지는 알 수 없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의 한 부분을 잘라내 호명한 ‘날짜’라는 이름의 시간은 매일 반복적으로 쌓여갔고, 그의 ‘오늘’도 담담하게 쌓여갔다.

 

비슷한 듯 다른 ‘오늘’ 그림은 2014년 7월10일 끝났다. 2만9771일을 산 그는 그해 7월 말 세상을 떠났고, 50년 가까이 진행한 그의 ‘오늘’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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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차액의 깊이, 2017, 단채널 영상, 설치


2015년 미얀마 시장 골목에서 이원호는 한 상인의 좌판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빛바랜 동전이 무심히 쌓여 있었다. 동전 더미를 뒤적이다 익숙한 한국 동전을 발견한 그는 어디서 여기로 굴러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동전들을 끄집어내 쌓으며 가격을 물었다. 500원은 400원이기도 했고, 100원이기도 했으며 10원은 300원이기도 했다. 상인은 여러 개를 묶어 사면 깎아주겠다고도 했다. 2017년 작가는 인도 거리에서 한국 동전을 발견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환율과 무관하게 거래되는 동전 가격을 흥정했다. 상인과의 흥정 여부에 따라, 거래는 성사되기도, 안되기도 했으며 그는 이익을 보기도, 손해를 보기도 했다. ‘통화’의 역할을 부여받고 탄생한 ‘동전’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상황에서 손해와 이익을 판단하는 것이 애매하긴 했다.

 

희귀 동전 수집가들 사이에서 동전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다. 1969년 발행한 10원, 1970년에 발행한 적동색 10원은 30만원에도 거래가 된다. 가장 희귀한 것으로 알려진 1998년산 500원 동전은 경매에서 100만원에 낙찰된 일도 있다.

 

몇 해 전, 7억원에 해당하는 10원짜리 동전을 녹여 동괴를 만든 뒤 20억원을 벌어들인 이들에 대한 뉴스는 10원의 재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제조원가가 돈의 가치를 상회하는 10원은 10원이기보다 ‘구리’로 돌아갔을 때 그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이들은 결국 처벌받았다. 영리를 목적으로 주화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돈이 가지고 있는 합의된 교환가치가 통하지 않는 흥정을 경험한 작가는 돈의 의미가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동전을 구매한 경험을 작업에 담으며 사회 속에서 ‘가치’는 어떻게 형성되고 발견되는지 돌아보았다. 그 결과, 예술가의 손에 들어와 ‘예술작품’으로 용도변경된 동전들은 새로운 의미를 낳고, ‘가치’를 형성하며 또 다른 거래의 장으로 들어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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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모임(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2017, 보안여관 전시 장면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가. 건축가 조성룡은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며 ‘집’이라고 했다. 집 없이도 어디선가 살기야 하겠지만, 집이 없다면 불안한 기억은 그저 사라진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거나 지우고 싶은 걸까.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여관이던 시절의 흔적을 폐허처럼 유지하고 있는 예술 공간 ‘보안여관’에서 열린 ‘소록도’ 전시는 ‘기억하는 일’에 대해 질문한다.

 

지난 5년간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 구성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하면서 진행한 작업은 ‘은폐된 섬’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과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다. 이제는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을 폐허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보안여관에 펼치니, 세상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이 잠시 그 소멸의 시간을 멈춘 채, 우리에게 기억하고 기록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한센인들을 철저하게 격리시켰던 ‘우리의 세상’은 마치 이런 곳, 이런 병은 ‘우리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삭제했다.

우리는 그 존재를 아마도 잊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그 땅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시를 주최한 ‘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은 생각한다. 한센인 환우의 수가 줄어들면서 마을은 폐허가 되고, 숲이 되고, 언젠가는 소멸하겠지만, 그들 삶이 기록된 저장소이자 우리 모두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집’들을 그냥 이렇게 사라지도록 둘 것인가. 그들을 여전히 지워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길 것인가. 소록도 마을의 진정한 보존과 상처의 소멸이 이루어지도록 이 작업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도와달라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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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 잘 잤니(ohayo), 2007, 애니메이션, 1:00 @곤 사토시


이야기는 짧다. 방 안에는 카드며 꽃이며 선물, 빈 술잔 같은 생일파티의 흔적이 있고, 침대에 모로 누워 있던 여성은 알람이 울리자 인상을 찌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음료를 꺼내 마신 후, 칫솔을 들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텔레비전을 켜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맞추고 경쾌하게 인사한다. “잘 잤니.” 그렇게 1분짜리 영상은 끝난다. 단순하다. 주인공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인사하는 순간까지 여럿으로 분리된 채 시간차를 두고 움직였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곤 사토시의 작업에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좀처럼 구별할 수 없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도 어렵다. 환상은 극대화되고 꿈과 현실의 경계도 무의미해진다. 그의 환상 안에서 관객은 내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그의 유일한 단편 애니메이션 <잘 잤니> 속에 담긴 일상의 환영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좀처럼 잠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의 아침을 연상시키기 때문인지 반복 재생을 유도한다.

 

화면 안에는 침대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고, 양치질을 하지만, 이제 겨우 침대를 벗어나 냉장고 문을 여는 내가 있다. 투명해서 배경이 고스란히 비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온전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처럼 휘청거린다. 이 흐릿한 주인공들은 시간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좁은 집 안을 오가는 그들의 동선이 겹치면서 어떤 동작이 앞선 것인지 알 수 없고, 누가 주인공이고 무엇이 그림자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꿈’의 시간에서 멀어져 온전히 잠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들은 하나가 된다. 영혼의 한 조각도 다른 데 흘리지 않고 전날의 피로에서, 잠에서,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잘 잤냐고 인사를 건넬 수 있으니, ‘기상’은 일상의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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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칼, 잘 지내(Take care of yourself), 2007, 혼합재료, 가변설치


“사랑은 재앙입니다.” 서로 다른 속도로 타오르거나, 미묘한 감정의 엇박자 속에 식어 버리거나, 혹은 습관인 양 유지하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 소피 칼의 진심을 알 길은 없다. 출장길에서 남자친구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의 e메일을 받았을 때, 소피 칼은 행간에 녹아 있는 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며, 이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문장으로 끝맺는 ‘이별 편지’가, 완전한 이별의 선언인지, 계속 만나고는 싶다는 뜻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여주면서 해석을 부탁했다.

 

그 이후 작가는 좀 더 많은 여성,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의 해석을 받아보기로 한다. 그의 메일을 받아본 107명의 전문직 여성들은 그들의 언어로 편지의 의미를 해석했고, 작가는 그 내용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작업으로 완성했다. 법조인은 편지의 법적 영향력을 분석했고, 편집자는 문법과 철자의 오류를 교정했다. 범죄심리학자는 그 남성을 ‘뒤틀린 조종자’라고 평했고 무용수는 그 내용에 반응하는 춤을 선보였다.

 

소피 칼은, 이별이라는, 결코 면역이 생기지 않는 통증의 시간에서 이렇게 빠져나왔다. “이 작업을 시작한 후 한 달 정도가 흐른 뒤로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심지어 그가 다시 만나자며 돌아올까 봐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면, 편지 끝문장을 따서 ‘잘 지내’라고 명명한 이 작품의 의미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거리를 두고 고통을 바라보는 시간을 거쳐 그의 사랑은 이렇게 끝났고, 전 남자친구의 바람대로, 소피 칼은 잘 지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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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플라뇌르 인 루브르 뮤지엄, 2016~2017, 스테인리스강 위에 돋을새김, 실크스크린, 150×120㎝ ⓒ 김홍식

 

“처음 루브르박물관에 들어서던 순간을 기억한다. 에스컬레이터를 가득 메우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파도. 스펙터클은 루브르가 아니라 그 군중이 이미 만들어내고 있었다. (…) 미술관의 관람객은 볼거리에 집착한다. 소비한다. 거대 미술관은 약탈한 수집품으로 가득 찼고, 그 소장품을 다시 약탈하는 군중이 가득하다.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약탈하는지, 너무나 사랑해서 탐하는 건지. 스냅샷을 날린다. 나는 뷰파인더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군상을 주목한다.”

 

김홍식의 관심사는 현대 도시가 겪고 있는 변화와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탐구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도시 산책자가 되어 이곳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지켜보고, 그 현상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관찰하면서 의미를 추적한다.

 

그 산책의 발길이 ‘미술관’에 닿았다. 미술관 안에서 그는 ‘미술품’과 ‘관람객’ 사이 펼쳐지는 또 하나의 풍경을 목격한다. ‘인류 문화의 보고’라는 미술관에 몸을 들인 사람들은 유명한 미술품이 놓여 있는 방을 향해 순례객처럼 행렬을 만들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이후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이 포착한 장면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네트워크 안에 있는 지인들과 공유할 것이다.

 

작가는 루브르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고 믿는 ‘모나리자’ 앞에서 보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전달하고, 망각하는 행위들이 마치 거대한 퍼포먼스처럼 펼쳐지는 장면을 담았다. 작품과 관객과 작가의 시선이 꼬리를 물고 오고가는 ‘미술 감상’의 순간, 금빛 액자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예술’은 묻는다. “미술관에 온 내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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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찾아봤던 드라마 <터널>에서 터널은 ‘운명과 시간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던 형사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터널을 통해 미래로 가고, 그곳에서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면서 범인을 추적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내용. 진실에 닿기 위해 필요한 건 시간여행인 걸까. 시간은 종종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익숙한 주변 풍경에 낯선 기운을 불어넣는 데 탁월한 피터 도이그가 화면에 담은 터널은 무지개색이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알 수 없는 기묘한 화면의 톤 덕분에 사람들은 피터 도이그의 그림을 통해 몽환적인 상황을 만나곤 한다.

 

피터 도이그, Country-rock(wing-mirror), 1998~1999

 

토론토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이 터널에 무지개가 뜬 건 1972년의 일이다. 노르웨이 출신 베르그 욘슨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구를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어두운 터널 입구에 무지개색을 입혔다. 모름지기 무지개란, 잠깐 떴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한시적인 판타지이건만, 소년은 시간이 흘러 페인트가 벗겨지면 다시 칠하고 또 칠하기를 반복하며 이 판타지를 붙잡았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고요한 풍경을 치고 들어온 현란한 페인트색에 거부감을 표하던 마을 사람도 언제부터인가 소년을 도와 무지개를 그렸단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기다가 사라진 뒤에야 황망하게 만드는 많은 것들. 소년은 훌쩍 떠난 친구와의 우정을 터널 앞 무지개로 기억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베르그 욘슨은 자신을 ‘꿈 지킴이’라고 칭하면서 이 무지개가 서로 인사도 잘 안 하고, 잘 웃지도 않는 토론토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으니, 누군가에게 무지개 터널은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나간 것은 아름답게, 사라진 것은 애틋하게 추억의 장소에 깃들어 시간여행을 인도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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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엄마의 모국어는 아랍어다. 이후 엄마는 프랑스로 이주해 딸 지네브 세디라를 낳았다. 프랑스어를 쓰며 성장한 그는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다. 딸은 영어로 말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삼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네브 세디라, 모국어, 2002, 3채널 비디오, 5분, 테이트모던 설치장면 ⓒ지네브 세디라

 

지네브 세디라는 자신의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정체성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3채널 영상 작품 ‘모국어’를 완성했다. 작가와, 그의 엄마, 딸, 세 여성은 서로서로 대화를 나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서 화면을 마주한 관객들은, 영상을 통해 각자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 정도만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영상의 소리는 헤드폰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소리가 없기 때문에 서로의 말에 반응하는 동작, 표정을 좀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도 같고 머뭇거리는 느낌도 있다. 곧 헤드폰을 하나씩 끼고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비디오 속 엄마와 나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대화한다. 두 번째 비디오의 나와 딸은 프랑스어와 영어로 대화하며, 마지막 할머니와 손녀는 아랍어와 영어로 대화하는 중이다. 엄마와 딸은 그런대로 묻고 답하며 대화를 주고받는데, 할머니와 손녀는 불편해 보인다. 각자의 모국어로 말을 건네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쑥스럽게 미소 짓는다. 작가가 연출한 이 어색한 대화의 시간은 문화적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세대를 거쳐 어떻게 계승되는지 묻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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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몬티엘 소토, 목적지 없는 히치하이킹, 2002-2009, 사운드, 포스터, 지도, 사진, 가변설치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계획 없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새벽 2시다. 잠이 오지는 않지만 어깨에 멘 배낭이 너무 무겁다. 이 도시는 나의 발걸음을 붙잡고, 구름 속에 나를 가둔다. 비는 쏟아지고 하루하루 날짜는 지나가고 해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아무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을 밟았다.”

 

사람마다 다른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 살 테지만, 꽤 많은 이들이 그 안에 ‘세계일주’나 ‘여행’을 담고 있지 않을까.

 

전세금을 빼서 몇 년간 세계 곳곳을 다녔다는 가족의 이야기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사람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산다.

일상의 쳇바퀴에서 과감히 벗어나 길을 떠난다는 것은 뭔가 매력적이지만,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일상을 벗어던지는 것이 두려운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쉬운 대로, 짧은 휴가 기간 선택한 여행지에서의 시간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는 작가 마르코 몬티엘 소토는 2002년 여름, 파리를 시작으로 그해 말,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을 마쳤다.

 

그는 여행길에 마주한 경험의 기억을 사운드와 이미지에 담아 설치했다. 그 기억 속에는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낭만적 시선, 여행자의 고독감, 지루함, 방황, 불쑥 솟아오르는 삶에 대한 열정, 착각, 환각이 깃들어 있다. 전시장에 떠도는 작가의 상념은 여행에 대한 관객의 판타지와 만난다.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맥주를 마신다. 나는 베를린을 향해 이동을 하는 중이다. 차들은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나를 태워주지 않는다. 나의 희망은 사라진다. 나는 사거리에 서서 베를린으로 갈지 파리로 갈지 암스테르담으로 갈지 바르셀로나로 갈지 결정을 못한다. 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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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어디든, 세상 밖 어디든 anywhere out of the world, 2013, 팔레 드 도쿄 설치 장면


살면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맺어온 관계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비단 인간과의 관계뿐 아니라 인공물, 자연환경 등 세상 안팎에 있는 많은 것들과 생각보다 촘촘하게 얽혀 있다. 관계 밖에서의 생존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일은 ‘순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소통 능력이다.

 

1964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필립 파레노는 전시장 안에 소통을 유도하는 장치들을 풀어 놓는다. 특정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작업을 펼치는 그는 조명, 음향, 퍼포먼스,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하여 공간과 시간을 공감각적으로 구성한다. 철학자, 저술가, 아티스트 등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 역시 그에게는 중요한 작업 방식이다. 자신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으로 외부와의 소통 채널을 다변화한다. 그는 전시가 작동하는 시공간 자체를 의미 있는 매체로 활용하여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작가의 의도를 전시 안에서 선명하게 규정하기보다는, 관객이 주도적으로 전시의 시공간을 만나면서 의미를 생성해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식의 열린 구조 안에서 탄생할 수 있는 의미는 무한대에 가깝다.

 

작가는 관객 스스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과 관계가 예술 형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관찰한다. 이런 작업 방식을 통해 작가는 개인이 사회적 맥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다가간다. 동시에, 관계망 안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온갖 ‘경계’를 주시하면서, 세상 밖 어딘가로 탈출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굴레를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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