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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에 해당되는 글 44건

  1. 2018.02.05 슬립시네마호텔
  2. 2018.01.22 화가와 모델
  3. 2018.01.15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4. 2018.01.08 오늘
  5. 2017.12.18 10원의 가치
  6. 2017.12.04 소멸을 생각하는 일
  7. 2017.11.27 잘 잤니
  8. 2017.11.20 잘 지내
  9. 2017.11.13 전시인가, 과시인가
  10. 2017.11.06 터널
  11. 2017.10.30 삼대의 모국어
  12. 2017.10.16 나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13. 2017.09.25 세상 밖이라면 어디든
  14. 2017.09.18 평범함의 격조
  15. 2017.09.11 파벨라
  16. 2017.09.08 일식
  17. 2017.08.28 낮잠
  18. 2017.08.21 지속가능성이라는 과제
  19. 2017.08.14 무릎 꿇은 남자
  20. 2017.08.11 인생을 바꿀 만한 경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SLEEPCINEMAHOTEL(슬립시네마호텔), 2018, 영상, 혼합재료, 로테르담 WTC 설치 장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6일 동안 특별한 호텔을 운영하기로 했다. 4시가 넘으면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겨울,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기간이었다. 로테르담 세계무역센터 한쪽에 ‘슬립시네마호텔’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투숙객을 맞이했다. 

 

전면의 큰 유리창 너머로는 전쟁의 폭격에 초토화된 도시를 과거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개성 있고 실험적인 새로운 건축에 내주어 현대건축의 메카가 된 로테르담의 마천루가 펼쳐졌다. 어둠이 조심스럽게 벽을 대신할 뿐, 전체가 하나로 개방된 객실이라 잠자리가 다 노출되는 환경이었지만, 객실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다가 잠 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한 작가는 도시의 스펙터클을 담은 큰 창문 위로 ‘가장 오래된 TV’라는 보름달을 닮은 스크린을 설치하고, 24시간 내내 영상을 상영했다. 이 영상은 숙면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할 터였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상상력과 교감할 수 있지만, 수면 중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스며들어 어떤 작용을 할 법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아이필름뮤지엄’과 ‘사운드 앤드 비전 인스티튜트’의 협조를 받았다. 한 세기 남짓 인간의 삶과 풍경을 기록한 영상 아카이브 가운데 잠자는 동물, 잠자는 사람, 하늘, 강, 바다, 숲, 항해, 비행 등의 장면을 선택해 편집한 이 영상은 호텔 개장일부터 폐장일까지 단 한순간도 반복되지 않았다. 6일의 러닝타임을 가진 한 편의 작품이었던 셈이다.

 

흘러가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처럼, 반복 없이 변화하는 영상은 투숙객이 마주하는 매 순간을 고유한 경험으로 만들어 주었다. 잊지 못할 하룻밤에 일조한 그 영상이 이미 누군가의 경험을 담은 흘러간 ‘역사’의 콜라주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새로움이란, 고유함이란 다 그렇게 오는 법 아닌가.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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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큐레이터, 동료 작가, 이웃, 가족 등 주변 지인의 초상을 평생 화폭에 담아온 앨리스 닐은 모델과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혼을 포착하는 화가’라는 수식어는 그냥 얻은 게 아니었다. 모델들은 그 과정이 불편했지만, 화가는 그 시간을 통해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잡아냈다. 모델을 향한 화가의 통찰력과, 화가를 대면한 모델의 친밀하기도, 불편하기도 한 시선이 캔버스 위에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형태를 만들었다.

 

앨리스 닐, 지니, 1984, 캔버스에 유채

 

작가의 며느리였던 지니는 종종 앨리스의 모델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발랄했던 젊은 날의 하루, 아이를 안고 있는 행복한 순간이 작품으로 남았다. 80대의 노화가 앞에 지니는 다시 앉았다. 제비꽃 색 원피스를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지니의 모습에서 앨리스가 발견한 것은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깊은 상실감이었다. 눈 쌓인 바깥세상의 냉기가 실내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것 같은 하얀 풍경 안에 앉아 있는 지니는, 복잡한 상념에 젖은 눈빛으로 앨리스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니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슬픔에 무너지곤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는 이 바닥 없는 슬픔에도 무뎌질 터였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화가는, 지니가 겪어내는 애도의 시간을 화폭에 담으면서,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이 보내야 할 감정의 터널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다 지나가겠지만, 캔버스를 사이에 두고 앉았던 모델과 화가 사이의 대화는 화면 위에 남아, 문득문득 그 순간의 감정을 상기시켜 줄 터였다. 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정직하게 캔버스를 만났던 앨리스 닐은 이 작품을 마무리한 1984년, 세상을 떠났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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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 미르자,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파동함수의 붕괴), 2017, 혼합재료 @자블루도비츠 컬렉션, 사진: 팀 보우디츠


그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룬 미르자 특유의 사운드 비트와 이미지가 혼성되어 있는 공간을 지나가야 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전기를 잡아내 전기가 흐르는 과정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드러내 보이곤 했다. 특정 속도로 깜박이는 불빛, 스크린의 영상, 잡음 같기도 한 소리로 드러나는 전류는, 흩어져 있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 다양한 모드로 복잡하게, 하지만 그 나름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룬 미르자가 조율한 빛과 소리의 파장 안으로 진입한 몸은 곧 그가 연출한 전류의 관계망과 동기화된다. 그 몸은 하룬 미르자의 세상에 안착하는, 아니면 포섭당하는 기분을 맛보곤 한다.

 

현란한 공간 너머에는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이라 명명한 밀실이 있었다. 작가는 이 공간을 통해 ‘의식이 물질을 통제할 수 있는가’와 ‘물질이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조사하고 싶었다. 물질과 의식, 진리와 신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탐구하고 싶었다. 그리니치 대학교와 임피리얼 칼리지의 연구자들이 그의 조사에 협력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데 탁월하고, 꿈을 꿀 때, 그리고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분비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 디메틸트립타민(DMT)을 작품 제목으로 끌어왔다. 외부의 감각을 박탈당한 공간에 들어가면 인간의 의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는 예술의 이름으로 실험했다. 사람들은 빛도 소리도 완전히 차단된 무반향실에 들어가 10분 정도 머물렀다. 몸에 지니고 있던 휴대전화, 가방 같은 소소한 물건들은 모두 밖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외부의 정보를 온전히 차단한 이 공간의 침묵은 자연스럽게 내 감각을 내 안으로 집중시켰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내가 만난 것은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잡음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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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좋은 새해가 왔다. 매일 새로운 하루, 매분, 매초가 다시 오지 않을 새로운 시간이지만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그 모든 새로움은 빛을 잃는다.

 

해가 바뀌는 정도는 돼야, 나의 습관을 돌아보고 재정비할 마음이 선다. 명색이 새해인데 목표도 좀 세워야 한다.

 

온 카와라, 오늘, 1966-2014, 혼합재료

 

목표를 향한 집념이 얼마 안 가 흔들리고, 흐려지다가 다음 새해를 다시 기다리는 상태가 곧 온다 해도, 새해니까, 일단 의지를 세워본다.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서면서 맞이한 새해니까, 올해를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1966년 1월4일, 온 카와라는 ‘오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굳이 기억할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 또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특별했을 그 하루를 그리는데 그는 ‘날짜’를 선택했다. 다섯 차례 밑칠을 한 모노톤 캔버스 위에 하얀색 물감을 일곱 번까지 칠해서 산세리프 서체의 날짜를 그려 넣었다. 캔버스 뒷면에는 그날의 신문을 스크랩해서 붙이기도 했다. 당일 자정까지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그 작업은 폐기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말을 한없이 아꼈던 그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기록해 나갔을지는 알 수 없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의 한 부분을 잘라내 호명한 ‘날짜’라는 이름의 시간은 매일 반복적으로 쌓여갔고, 그의 ‘오늘’도 담담하게 쌓여갔다.

 

비슷한 듯 다른 ‘오늘’ 그림은 2014년 7월10일 끝났다. 2만9771일을 산 그는 그해 7월 말 세상을 떠났고, 50년 가까이 진행한 그의 ‘오늘’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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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차액의 깊이, 2017, 단채널 영상, 설치


2015년 미얀마 시장 골목에서 이원호는 한 상인의 좌판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빛바랜 동전이 무심히 쌓여 있었다. 동전 더미를 뒤적이다 익숙한 한국 동전을 발견한 그는 어디서 여기로 굴러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동전들을 끄집어내 쌓으며 가격을 물었다. 500원은 400원이기도 했고, 100원이기도 했으며 10원은 300원이기도 했다. 상인은 여러 개를 묶어 사면 깎아주겠다고도 했다. 2017년 작가는 인도 거리에서 한국 동전을 발견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환율과 무관하게 거래되는 동전 가격을 흥정했다. 상인과의 흥정 여부에 따라, 거래는 성사되기도, 안되기도 했으며 그는 이익을 보기도, 손해를 보기도 했다. ‘통화’의 역할을 부여받고 탄생한 ‘동전’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상황에서 손해와 이익을 판단하는 것이 애매하긴 했다.

 

희귀 동전 수집가들 사이에서 동전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다. 1969년 발행한 10원, 1970년에 발행한 적동색 10원은 30만원에도 거래가 된다. 가장 희귀한 것으로 알려진 1998년산 500원 동전은 경매에서 100만원에 낙찰된 일도 있다.

 

몇 해 전, 7억원에 해당하는 10원짜리 동전을 녹여 동괴를 만든 뒤 20억원을 벌어들인 이들에 대한 뉴스는 10원의 재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제조원가가 돈의 가치를 상회하는 10원은 10원이기보다 ‘구리’로 돌아갔을 때 그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이들은 결국 처벌받았다. 영리를 목적으로 주화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돈이 가지고 있는 합의된 교환가치가 통하지 않는 흥정을 경험한 작가는 돈의 의미가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동전을 구매한 경험을 작업에 담으며 사회 속에서 ‘가치’는 어떻게 형성되고 발견되는지 돌아보았다. 그 결과, 예술가의 손에 들어와 ‘예술작품’으로 용도변경된 동전들은 새로운 의미를 낳고, ‘가치’를 형성하며 또 다른 거래의 장으로 들어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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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모임(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2017, 보안여관 전시 장면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가. 건축가 조성룡은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며 ‘집’이라고 했다. 집 없이도 어디선가 살기야 하겠지만, 집이 없다면 불안한 기억은 그저 사라진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거나 지우고 싶은 걸까.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여관이던 시절의 흔적을 폐허처럼 유지하고 있는 예술 공간 ‘보안여관’에서 열린 ‘소록도’ 전시는 ‘기억하는 일’에 대해 질문한다.

 

지난 5년간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 구성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하면서 진행한 작업은 ‘은폐된 섬’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과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다. 이제는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을 폐허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보안여관에 펼치니, 세상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이 잠시 그 소멸의 시간을 멈춘 채, 우리에게 기억하고 기록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한센인들을 철저하게 격리시켰던 ‘우리의 세상’은 마치 이런 곳, 이런 병은 ‘우리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삭제했다.

우리는 그 존재를 아마도 잊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그 땅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시를 주최한 ‘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은 생각한다. 한센인 환우의 수가 줄어들면서 마을은 폐허가 되고, 숲이 되고, 언젠가는 소멸하겠지만, 그들 삶이 기록된 저장소이자 우리 모두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집’들을 그냥 이렇게 사라지도록 둘 것인가. 그들을 여전히 지워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길 것인가. 소록도 마을의 진정한 보존과 상처의 소멸이 이루어지도록 이 작업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도와달라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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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곤 사토시, 잘 잤니(ohayo), 2007, 애니메이션, 1:00 @곤 사토시


이야기는 짧다. 방 안에는 카드며 꽃이며 선물, 빈 술잔 같은 생일파티의 흔적이 있고, 침대에 모로 누워 있던 여성은 알람이 울리자 인상을 찌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음료를 꺼내 마신 후, 칫솔을 들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텔레비전을 켜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맞추고 경쾌하게 인사한다. “잘 잤니.” 그렇게 1분짜리 영상은 끝난다. 단순하다. 주인공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인사하는 순간까지 여럿으로 분리된 채 시간차를 두고 움직였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곤 사토시의 작업에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좀처럼 구별할 수 없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도 어렵다. 환상은 극대화되고 꿈과 현실의 경계도 무의미해진다. 그의 환상 안에서 관객은 내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그의 유일한 단편 애니메이션 <잘 잤니> 속에 담긴 일상의 환영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좀처럼 잠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의 아침을 연상시키기 때문인지 반복 재생을 유도한다.

 

화면 안에는 침대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고, 양치질을 하지만, 이제 겨우 침대를 벗어나 냉장고 문을 여는 내가 있다. 투명해서 배경이 고스란히 비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온전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처럼 휘청거린다. 이 흐릿한 주인공들은 시간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좁은 집 안을 오가는 그들의 동선이 겹치면서 어떤 동작이 앞선 것인지 알 수 없고, 누가 주인공이고 무엇이 그림자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꿈’의 시간에서 멀어져 온전히 잠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들은 하나가 된다. 영혼의 한 조각도 다른 데 흘리지 않고 전날의 피로에서, 잠에서,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잘 잤냐고 인사를 건넬 수 있으니, ‘기상’은 일상의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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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칼, 잘 지내(Take care of yourself), 2007, 혼합재료, 가변설치


“사랑은 재앙입니다.” 서로 다른 속도로 타오르거나, 미묘한 감정의 엇박자 속에 식어 버리거나, 혹은 습관인 양 유지하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 소피 칼의 진심을 알 길은 없다. 출장길에서 남자친구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의 e메일을 받았을 때, 소피 칼은 행간에 녹아 있는 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며, 이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문장으로 끝맺는 ‘이별 편지’가, 완전한 이별의 선언인지, 계속 만나고는 싶다는 뜻인지 파악할 수 없었던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여주면서 해석을 부탁했다.

 

그 이후 작가는 좀 더 많은 여성,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의 해석을 받아보기로 한다. 그의 메일을 받아본 107명의 전문직 여성들은 그들의 언어로 편지의 의미를 해석했고, 작가는 그 내용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 작업으로 완성했다. 법조인은 편지의 법적 영향력을 분석했고, 편집자는 문법과 철자의 오류를 교정했다. 범죄심리학자는 그 남성을 ‘뒤틀린 조종자’라고 평했고 무용수는 그 내용에 반응하는 춤을 선보였다.

 

소피 칼은, 이별이라는, 결코 면역이 생기지 않는 통증의 시간에서 이렇게 빠져나왔다. “이 작업을 시작한 후 한 달 정도가 흐른 뒤로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심지어 그가 다시 만나자며 돌아올까 봐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면, 편지 끝문장을 따서 ‘잘 지내’라고 명명한 이 작품의 의미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거리를 두고 고통을 바라보는 시간을 거쳐 그의 사랑은 이렇게 끝났고, 전 남자친구의 바람대로, 소피 칼은 잘 지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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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플라뇌르 인 루브르 뮤지엄, 2016~2017, 스테인리스강 위에 돋을새김, 실크스크린, 150×120㎝ ⓒ 김홍식

 

“처음 루브르박물관에 들어서던 순간을 기억한다. 에스컬레이터를 가득 메우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파도. 스펙터클은 루브르가 아니라 그 군중이 이미 만들어내고 있었다. (…) 미술관의 관람객은 볼거리에 집착한다. 소비한다. 거대 미술관은 약탈한 수집품으로 가득 찼고, 그 소장품을 다시 약탈하는 군중이 가득하다.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약탈하는지, 너무나 사랑해서 탐하는 건지. 스냅샷을 날린다. 나는 뷰파인더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군상을 주목한다.”

 

김홍식의 관심사는 현대 도시가 겪고 있는 변화와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탐구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도시 산책자가 되어 이곳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지켜보고, 그 현상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관찰하면서 의미를 추적한다.

 

그 산책의 발길이 ‘미술관’에 닿았다. 미술관 안에서 그는 ‘미술품’과 ‘관람객’ 사이 펼쳐지는 또 하나의 풍경을 목격한다. ‘인류 문화의 보고’라는 미술관에 몸을 들인 사람들은 유명한 미술품이 놓여 있는 방을 향해 순례객처럼 행렬을 만들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이후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이 포착한 장면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네트워크 안에 있는 지인들과 공유할 것이다.

 

작가는 루브르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고 믿는 ‘모나리자’ 앞에서 보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전달하고, 망각하는 행위들이 마치 거대한 퍼포먼스처럼 펼쳐지는 장면을 담았다. 작품과 관객과 작가의 시선이 꼬리를 물고 오고가는 ‘미술 감상’의 순간, 금빛 액자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예술’은 묻는다. “미술관에 온 내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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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찾아봤던 드라마 <터널>에서 터널은 ‘운명과 시간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던 형사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터널을 통해 미래로 가고, 그곳에서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면서 범인을 추적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내용. 진실에 닿기 위해 필요한 건 시간여행인 걸까. 시간은 종종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익숙한 주변 풍경에 낯선 기운을 불어넣는 데 탁월한 피터 도이그가 화면에 담은 터널은 무지개색이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알 수 없는 기묘한 화면의 톤 덕분에 사람들은 피터 도이그의 그림을 통해 몽환적인 상황을 만나곤 한다.

 

피터 도이그, Country-rock(wing-mirror), 1998~1999

 

토론토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이 터널에 무지개가 뜬 건 1972년의 일이다. 노르웨이 출신 베르그 욘슨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구를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어두운 터널 입구에 무지개색을 입혔다. 모름지기 무지개란, 잠깐 떴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한시적인 판타지이건만, 소년은 시간이 흘러 페인트가 벗겨지면 다시 칠하고 또 칠하기를 반복하며 이 판타지를 붙잡았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고요한 풍경을 치고 들어온 현란한 페인트색에 거부감을 표하던 마을 사람도 언제부터인가 소년을 도와 무지개를 그렸단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기다가 사라진 뒤에야 황망하게 만드는 많은 것들. 소년은 훌쩍 떠난 친구와의 우정을 터널 앞 무지개로 기억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베르그 욘슨은 자신을 ‘꿈 지킴이’라고 칭하면서 이 무지개가 서로 인사도 잘 안 하고, 잘 웃지도 않는 토론토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으니, 누군가에게 무지개 터널은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나간 것은 아름답게, 사라진 것은 애틋하게 추억의 장소에 깃들어 시간여행을 인도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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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엄마의 모국어는 아랍어다. 이후 엄마는 프랑스로 이주해 딸 지네브 세디라를 낳았다. 프랑스어를 쓰며 성장한 그는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딸을 낳았다. 딸은 영어로 말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삼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네브 세디라, 모국어, 2002, 3채널 비디오, 5분, 테이트모던 설치장면 ⓒ지네브 세디라

 

지네브 세디라는 자신의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정체성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3채널 영상 작품 ‘모국어’를 완성했다. 작가와, 그의 엄마, 딸, 세 여성은 서로서로 대화를 나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서 화면을 마주한 관객들은, 영상을 통해 각자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 정도만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영상의 소리는 헤드폰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소리가 없기 때문에 서로의 말에 반응하는 동작, 표정을 좀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도 같고 머뭇거리는 느낌도 있다. 곧 헤드폰을 하나씩 끼고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그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비디오 속 엄마와 나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대화한다. 두 번째 비디오의 나와 딸은 프랑스어와 영어로 대화하며, 마지막 할머니와 손녀는 아랍어와 영어로 대화하는 중이다. 엄마와 딸은 그런대로 묻고 답하며 대화를 주고받는데, 할머니와 손녀는 불편해 보인다. 각자의 모국어로 말을 건네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쑥스럽게 미소 짓는다. 작가가 연출한 이 어색한 대화의 시간은 문화적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세대를 거쳐 어떻게 계승되는지 묻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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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몬티엘 소토, 목적지 없는 히치하이킹, 2002-2009, 사운드, 포스터, 지도, 사진, 가변설치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계획 없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새벽 2시다. 잠이 오지는 않지만 어깨에 멘 배낭이 너무 무겁다. 이 도시는 나의 발걸음을 붙잡고, 구름 속에 나를 가둔다. 비는 쏟아지고 하루하루 날짜는 지나가고 해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아무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을 밟았다.”

 

사람마다 다른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 살 테지만, 꽤 많은 이들이 그 안에 ‘세계일주’나 ‘여행’을 담고 있지 않을까.

 

전세금을 빼서 몇 년간 세계 곳곳을 다녔다는 가족의 이야기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사람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산다.

일상의 쳇바퀴에서 과감히 벗어나 길을 떠난다는 것은 뭔가 매력적이지만,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일상을 벗어던지는 것이 두려운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쉬운 대로, 짧은 휴가 기간 선택한 여행지에서의 시간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는 작가 마르코 몬티엘 소토는 2002년 여름, 파리를 시작으로 그해 말,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을 마쳤다.

 

그는 여행길에 마주한 경험의 기억을 사운드와 이미지에 담아 설치했다. 그 기억 속에는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낭만적 시선, 여행자의 고독감, 지루함, 방황, 불쑥 솟아오르는 삶에 대한 열정, 착각, 환각이 깃들어 있다. 전시장에 떠도는 작가의 상념은 여행에 대한 관객의 판타지와 만난다.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맥주를 마신다. 나는 베를린을 향해 이동을 하는 중이다. 차들은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나를 태워주지 않는다. 나의 희망은 사라진다. 나는 사거리에 서서 베를린으로 갈지 파리로 갈지 암스테르담으로 갈지 바르셀로나로 갈지 결정을 못한다. 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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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어디든, 세상 밖 어디든 anywhere out of the world, 2013, 팔레 드 도쿄 설치 장면


살면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맺어온 관계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사람들은 비단 인간과의 관계뿐 아니라 인공물, 자연환경 등 세상 안팎에 있는 많은 것들과 생각보다 촘촘하게 얽혀 있다. 관계 밖에서의 생존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일은 ‘순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순리에 순응하며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소통 능력이다.

 

1964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필립 파레노는 전시장 안에 소통을 유도하는 장치들을 풀어 놓는다. 특정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작업을 펼치는 그는 조명, 음향, 퍼포먼스,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하여 공간과 시간을 공감각적으로 구성한다. 철학자, 저술가, 아티스트 등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 역시 그에게는 중요한 작업 방식이다. 자신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으로 외부와의 소통 채널을 다변화한다. 그는 전시가 작동하는 시공간 자체를 의미 있는 매체로 활용하여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작가의 의도를 전시 안에서 선명하게 규정하기보다는, 관객이 주도적으로 전시의 시공간을 만나면서 의미를 생성해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식의 열린 구조 안에서 탄생할 수 있는 의미는 무한대에 가깝다.

 

작가는 관객 스스로 체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과 관계가 예술 형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관찰한다. 이런 작업 방식을 통해 작가는 개인이 사회적 맥락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다가간다. 동시에, 관계망 안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온갖 ‘경계’를 주시하면서, 세상 밖 어딘가로 탈출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굴레를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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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원, 수탉, 2017, 한지에 수묵, 129×167㎝


사석원은 치바이스를 동양화의 ‘넘사벽’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동양화를 막 시작했을 때 그의 화집을 본 사석원은, 따뜻한 시선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생동감을 포착한 표현력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치바이스를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그 역시 살아있는 것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시, 서, 화, 각 모두를 아우른 치바이스는 일상의 소소한 대상,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주목했다. 당대 문인화가들은 대상으로 삼지 않던 ‘미물’이었다. 고전과 자연을 스승 삼아 그림을 그렸던 작가에게 대지 위의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 있었으니 다른 잣대를 내세우며 소재를 고를 일이 아니었다. 세상을 대하는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선인의 틀에서 벗어난 화면을 구상하기 위해 그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먹색을 제대로 내는 데만 40년이 걸린다고 하는 수묵화의 매력을 붓질에서 찾는 사석원은 치바이스의 수탉 그림에 주목했다. 치바이스가 그린 닭 그림에서는 잘 그리고자 하는 교만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교를 떨쳐낸 그림이 주는 평화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사물의 본질만을 묘사하면서, 내적 생명력과 유머를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내공은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무수히 묘사를 반복한 끝에 대상의 본질과 미의 질서를 굵고 단순명료한 필획으로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형상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형상을 꿰뚫고 있는 치바이스의 작업을 보며 사석원은 현대적인 추상미를 통해 수탉의 에너지를 표현해보고자 했다. 대상을 눈앞에 두고 그 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보며 마음에 새겨 놓은 모습을 화면 위로 끄집어낸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수탉의 몸짓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역동적인 붓질과, 그 안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눈동자에서 닭의 생명력을 대면한다. 대상을 향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은 그렇게 세상 모든 평범한 것들이 품고 있는 생명 에너지의 찬란함을 펼쳐 보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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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시오 곤살레스, 파벨라 시리즈, 2004~2007


유토피아는 잊어라. 미래 도시는 방대한 슬럼이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봤다. 많은 것이 도시로 집중되는 가운데, 도시 인구의 절반은 슬럼 거주자일 것이라는 예측이 덧붙었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면 슬럼 또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던 과거의 예언은 부의 불평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를 봤을 때, 안일한 믿음에 불과하다.

 

디오니시오 곤살레스는 10여년 전부터 대도시의 슬럼 지구를 살피며 도시 빈민들의 터전을 촬영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곳곳에 퍼져 있는 빈민촌 파벨라의 건축 구조는 시선을 끌었다. 계획이라고는 전혀 없는 불규칙적이고 불안한 오두막이 산자락부터 산등성이를 타고 퍼져나가 있다. 거주지이긴 하지만, 범죄와 마약의 온상이기도 한 이곳은 폭력과 살해가 공존하는 기피 장소였고, 지역 사람들 내면에는 증오와 절망이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대면한 작가는 작업을 통해 갈등의 중간 위치에 서보기로 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예술가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 역시 이들의 독립성과 자율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독립자인 그들은 의견을 제시할 뿐이지만, 그 의견이 경우에 따라서는 중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개개인의 취향과 삶의 모습에 따라 다른 형태로 번식한 파벨라의 유기적 구조를 물리적인 철거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고민해볼 수 없을지 들여다본 작가는 파벨라를 컴퓨터 합성으로 재건축하기로 한다. 그렇게 현실 이미지 위에 디지털로 조작한 가건물을 앉힌 이미지가 탄생했다. 이 가상의 이미지가 슬럼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지만, 해결을 위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갈등 사이에서 완충지가 되었다. 작품은 작가가 희망한 바로 그 정도의 존재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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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원, 1913, 캔버스에 유채, 105×105㎝


얼마 전 미국에서는 1918년 이후 99년 만에 대륙 전체를 관통하는 개기일식이 있었다. 평생 한 번 보기 힘든 장관이라고 하여, 원정단을 꾸려 미국으로 가는 이들도 있었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순간, 사람들은 태양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단다.

 

지구의 생태계에 가장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태양을 연구하는 것은 천문학계의 오랜 과제이지만, 태양은 그 빛이 너무 강해 제대로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과학계는 태양이 가려지는 이 순간, 태양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태양의 강렬한 빛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혁명과 개혁의 시기에 살았던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1913년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의 무대장식과 의상을 맡아 흰색 배경에 검은 사각형 콘셉트의 커튼을 제작했다. 이 작업은 그가 ‘절대주의’라고 명명한, 철저하게 비재현적인 회화, ‘검은 그림’의 단초가 되었다.    

   

새로운 질서로 개편되는 세계의 흐름을 체감한 그는, 세상의 형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색과 형태에 집중하는 작업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의 세상에 닿고자 했다. 현존하는 세계와 다른 질서를 가진 세계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간 그는 그런 생각을 검은 그림에 반영했다.

 

그는 관객이 작품 속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전하는 감정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작품에서 현실과 연관되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오로지 검은 색면만 있는 화면이 전하는 감정, 그 긴장감을 마주하면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과 다른 무엇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작가는 형태를 지운 세상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세계의 문을 열어주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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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석, 오후의 뜰, 1968, 캔버스에 유채, 97×145.5㎝


분주하다. 세상의 속도는 빠르고, 그 속도를 부정할 용기가 없다면 따르는 게 당연한 세상.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낙오자가 되는 건 순식간일 테니, 초조한 마음이 조급증을 부채질한다. 그래서 바빠지고, 더 바빠지고 새벽부터 밤까지 쉼 없이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휴식을 꿈꾸고, 일탈을 소원하는 건, 그런 바람 자체가 일상의 바퀴를 계속 돌릴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은 아닐지 모르겠다.

 

한때는 노동의 피로를 풀기 위해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을 즐기는 일이 당연하던 시절도 있었단다.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나른한 오후에 낮잠을 즐긴다. 낮잠 권하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과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나, 매일 자는 낮잠이 마음을 깨끗하게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은, 다만 꿈꿀 수 있을 뿐 쉽게 내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운 낮잠에 대한 환상을 키워준다. 혹은, 편하게 낮잠에 빠져들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실향민으로서, 망향의 정서를 화폭에 담아온 장리석은 한 소년이 평상에 누워 단잠에 빠진 풍경을 그렸다. 마당 한쪽에는 정성스럽게 가꾸었을 화단이 보이고 그 앞에는 장독이 보인다. 아파트가 표준 주택이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시골집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마당의 풍경이다. 러닝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잠든 소년의 손에는 어디선가 꺾어왔을 열매가지가 쥐어져 있다. 소년은 친구들과 동네 곳곳을 뛰어놀다 돌아온 나른한 오후, 잠시 달콤한 낮잠에 빠졌을 것 같다. 소년의 잠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풍경은 시간마저 멈춘 것처럼 한없이 고요해 보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후의 뜰’은 1968년 어느 여름의 한가로운 공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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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 그랜비 워크숍, 2015 @어셈블


어쩌면 과제는 ‘시작’이 아니라 시작한 일을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제에는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왜 지속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 따르긴 하겠지만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지역공동체의 일상에 개입하는 프로젝트인 경우 지속가능성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그랜비 포 스트리츠’로 영국의 권위 넘치는 미술상인 터너상의 수상자가 되면서 주목받았던 건축가 디자이너 그룹 어셈블의 작업은 지역사회의 공간과 공동체를 생산적으로 연결하는 바람직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2011년 마을 주민들의 의뢰로 그랜비 프로젝트에 착수한 어셈블이 처음 가졌던 문제의식은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였다. 마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프로젝트 이후에도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은 바로 그 지역공동체라는 정답에 도달한 이들은 주민과 상생하는 예술프로젝트를 지향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외부에서 들어온 주체에게 주민이 소외당하지 않도록 했다.

 

이들이 먼저 착수한 것은 슬럼화된 공공주택단지를 쓸 만하게 재건하는 일이었지만 더 깊이 고민한 것은 프로젝트 이후에도 지역공동체가 재건한 사회기반시설을 적극 활용하면서 생산성을 가지고 유지할 수 있는 장치였다. 그 장치의 하나로 어셈블 멤버들은 주민들과 핸드메이드 생활용품을 만드는 워크숍을 운영했다. 주민들은 건축 폐기물, 공사 잔해물들을 재활용해 손잡이, 테이블, 타일 같은 수공예품을 만들었다. 이후 지역 소싱을 통해 설계·조립한 재활용 핸드메이드 생활용품을 온·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쇼룸을 운영하면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창업의 동력을 확보했다.

 

그렇게 쇠락한 지역의 공간을 재생하는 그랜비 프로젝트는 지속가능성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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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민, 관계의 감각 2017, 리넨에 유채, 38×46㎝


화가가 그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한 가지를 흔들리지 않고 실천할 수 있기를 오랫동안 원해왔다’고 기술한 문영민은 무릎 꿇고 엎드린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왔다. 작가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담으며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한 부분을 회화라는 반복 행위로 옮기는 실천을 수행 중이다. 반복은 시간을 살아내는 일이자 경험을 축적하는 일, 성찰의 도구, 혹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특정할 수 없는 어떤 공간 안에서 한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다. 남자는 절을 하는 중이다. 한국사회에서 절은 익숙한 동작이다. 제사상 앞에서, 장례식장에서 죽은 자를 애도하며, 남겨진 자를 위로하며 사람들은 몸을 숙인다. 크고 작은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에서 절을 하는 행위 역시 익숙하게 일상 안에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절하는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몸을 낮추는 동작’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돌이켜 보았다. 유년 시절 경험한 제사의 과정, 엄숙하게 절하는 행위에서 어떤 무거움과 염원의 마음을 보았던 작가에게 절을 하는 모습은 애도의 보편적 표현이었다.

 

작가의 질문은 한 영혼을 향해 절을 하면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면, 절하는 사람의 마음이 영혼에게 가 닿을 것인지로 이어졌다. 작가에게 절을 한다는 일은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문득 낯설어지고, 의미를 포착할 수 없는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행위로 다가왔다. 그의 작업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 되었고, 알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작업이 되었다. 동일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시간을 가진 작가는, 절하는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인간의 뒷모습을 타고 남은 재와도 같은 회색빛에 담았다. 흥분과 격정이 가라앉은 회색으로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는 그렇게 담담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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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여행이 아니었다, 2005, 영상, 22분 @피에르 위그


미지의 대상을 향한 동경과 호기심은 여행의 동기가 되곤 한다. 여행을 떠나는 또 다른 이유는 도시 속 일상에 정주하는 삶이 지겹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에르 위그가 남극 여행을 결심한 데는 쥘 베른의 소설 영향이 컸다. <해저 2만리>를 비롯한 과학소설은 생명체와 그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현실과 가상을 기묘하게 섞어 작업하는 위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구온난화로 남극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은 섬들이 드러났고, 섬에는 흰 동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작가와 동료들은 알비노 펭귄으로 추정되는 생명체를 찾아 좌표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섬을 향했다. 2005년 2월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한 그들은 미지의 존재와 교신하기 위한 도구도 챙겼다.

 

그의 동료가 ‘인생을 바꿀 만한 체험’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그들의 탐험은 험난했다. ‘계획’에 없던 태풍을 만나고, 빙산에 갇히는 공포를 꼼짝없이 함께한 그들은 익숙한 줄만 알았던 관계 속에서 낯선 ‘사회’를 만났다. 예측을 우습게 뒤집어버리며 죽음을 눈앞까지 데려오는 환경 앞에 그들은 예전에 알던 그들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고, 마치 신의 은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알비노 펭귄이 눈앞에 나타났다. 귀환한 작가는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는 스케이트장 울만 링크에 남극을 불러들였다. 링크에는 인공 빙산이 솟아올랐고, 그 주변에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았다. 오케스트라는 조슈아 코디가 남극의 지형을 모티브로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관객이 공연에 집중하고 있을 때, 펭귄의 환영이 빙산의 꼭대기에 등장했다. 관객은 앉은 자리에서 가상의 남극 혹은 그 어딘가의 풍경 속을 탐험했을 터였다.

 

작가는 이후 남극의 영상 작업과 센트럴파크 퍼포먼스 영상을 편집하여 실제와 가상이 더 복잡하게 섞여 들어간 작업 ‘그것은 여행이 아니었다’를 완성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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