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김지연의 미술 소환'에 해당되는 글 77건

  1. 2018.06.04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2. 2018.05.28 형세
  3. 2018.05.14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4. 2018.05.08 다이얼 히스토리
  5. 2018.04.30 지구는 평화
  6. 2018.04.23 예술가와 갈등
  7. 2018.04.09 반복
  8. 2018.04.02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9. 2018.03.26 어떤 속박
  10. 2018.03.19 흘러간다
  11. 2018.03.12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2. 2018.03.05 6144 ×1024
  13. 2018.02.26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14. 2018.02.05 슬립시네마호텔
  15. 2018.01.22 화가와 모델
  16. 2018.01.15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17. 2018.01.08 오늘
  18. 2017.12.18 10원의 가치
  19. 2017.12.04 소멸을 생각하는 일
  20. 2017.11.27 잘 잤니

불법 이민자 신분으로 뉴욕에 체류하고 있었던 대만 출신 작가 테칭 시에는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살고 있던 맨해튼 아파트에 출퇴근 기록기를 설치한 뒤 매시 정각에 출근카드를 찍고, 기계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잿빛 유니폼 차림이었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기록하던 이 기계는 예술가의 예술 활동을 냉정하게 관리 감시한 끝에 예술 작품이 되었다.

 

테칭 시에(Tehching Hsieh), 일 년의 퍼포먼스 1980~1981, 편지, 사진, 시계, 16㎜ 필름, 유니폼 ⓒ 테칭 시에

 

이 퍼포먼스는 1980년 4월11일을 시작으로 1년간 이어졌다. 365개의 펀치 카드, 365개의 필름 스트립이 쌓였다. 삭발한 채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그의 머리는 장발이 되었다. 1년간 그는 50분 이상 아파트를 떠날 수 없었다. 50분 이상 잠들 수 없었다. 1년은 8760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133장의 순간은 기계의 오류로, 인간적인 오류로 놓쳤다. 그가 기록한 1년의 초상은 6분의 타임 랩스로 정리되었다.

 

테칭 시에는 거대한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대던 시시포스를 언급했다. 형벌처럼 반복되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 출근카드를 펀칭해야 하는 다음 시간을 기다렸다. 1초의 어긋남도 없이 정해진 임무를 마친 후 곧바로 다음 시간을 준비했다. 그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단조로운 노동을 반복하며 그는 철저하게 시간을 소비했다.

 

열심히 살든, 게으름을 피우든, 창의적으로 사고하든, 진부한 패턴을 반복하든 시간은 흘러갔다. 그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시간이 멈출 일은 없었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없었다. “나는 예술계가 나에게 기대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출구, 이것이 나의 자유다.” 그는 이렇게 말했지만 시간을 낭비한 끝에 그는 ‘예술 작품’을 완성하고 말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0) 2018.06.18
분노  (0) 2018.06.11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0) 2018.06.04
형세  (0) 2018.05.28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0) 2018.05.14
다이얼 히스토리  (0) 2018.05.08
Posted by Kh-art

페터 피슐리·다비드 바이스(Peter Fischli and David Weiss), Der Lauf der Dinge(The way things go), 1987, 16㎜ 컬러, 필름 ⓒ이카루스 필름

 

인간계는 복잡하다. 쉬운 길을 어렵게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찌나 얽혀 있는지, 하나의 에피소드가 엉뚱한 곳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미국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1883~1970)는 아주 간단한 일도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다룬 만화로 인기를 끌었다. 생김새도, 작동원리도 한없이 복잡하고 심오해 보이지만, 결국 하는 일은 냅킨을 흔들거나, 우산을 펼치거나, 등을 긁는 정도다. 효율성 제로의 ‘골드버그 장치’를 고안해, 복잡하게 머리 굴리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풍자한 그는 원자폭탄의 위협을 다룬 카툰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가 고안한 비효율적 기계는 “최소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비판하면서 등장했지만, 그의 의도는 살짝 빗나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간들은 단순한 목적을 위해 복잡하게 움직이는 장치들을 만들었고, 골드버그 장치 구현 대회까지 열어 자신의 ‘창의력’을 과시했다.

 

골드버그 장치는 예술가에게도 작업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듀오 작가 피슐리와 바이스는 골드버그 장치처럼 작동하는 작품 ‘상황이 흐르는 방식’을 발표했다. 실을 따라 타들어가던 불꽃이 타이어를 잡고 있던 선에 닿자 그 선이 툭 끊어지며 타이어는 앞으로 굴러간다. 타이어는 드럼통을 치고, 드럼통은 초를 건드리고, 촛불이 바닥에 쏟아진 기름에 닿고, 기름의 불길이 짚단을 태운다. 무대에 오른 사물들은 마치 스스로 동력을 가진 양 구르고 뒤틀리고 넘어지고, 불타오른다. 작가는 작은 불꽃에서 출발한 일련의 연쇄 작용을 통해 시스템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상황을 풍자했다. 작가의 의도는 그랬지만, 의도가 빗나갈지도 모른다는 건 예측가능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노  (0) 2018.06.11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0) 2018.06.04
형세  (0) 2018.05.28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0) 2018.05.14
다이얼 히스토리  (0) 2018.05.08
지구는 평화  (0) 2018.04.30
Posted by Kh-art

마음이 슬프면 몸짓이 슬퍼지는 걸까, 슬픈 동작이 슬픈 마음을 가져오는 걸까. 카메라 앞에 앉은 바스 얀 아더르는 슬퍼하기 시작했다. 슬픔의 종착역은 눈물인 모양이다. 그는 울기 위해 집중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 그는 눈을 감고, 입술을 오물거리고, 볼을 찌푸렸다. 손으로 머리칼을 휘젓고, 눈꺼풀을 문질렀다. 슬픈 제스처로 슬픈 감정을 끌어올리는 사이사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살짝 턱을 들어 올리고 슬그머니 눈을 뜨는 순간 그의 표정에서는 불현듯 슬픔이 사라졌다. 그는 계속 슬퍼했지만, 곧바로 충분히 슬퍼지지는 않았다. 슬픔의 동작이 커지면서, 드디어 그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성인 남성의 눈물을 볼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I’m too sad to tell you), 1971, 16㎜ 필름, 3분34초 ⓒ Mary Sue Ader-Andersen

 

소리 없는 흑백 영상 속에서 그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오열 사이사이 한숨을 돌렸다. 그때마다, 그를 둘러싼 슬픔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열의 표정을 짓는 순간 다시 그는 슬퍼졌다. 슬픔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슬픔이 멈추는 순간의 공백이 차가웠다. 작가의 감정에 동화되던 관람자의 감정에 자꾸 균열이 갔다. 그는 3분34초간 슬퍼했다. ‘전달할 수 없는 감정적인 상태’를 극도의 슬픔으로 표현했다는 작품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의 기능을 상기시켰다. 타인의 슬픔에 닿는 일은 힘들다.

 

‘슬픔’을 작업했던 그는 그로부터 4년 후, 바다 위에서 사라졌다. 초소형 보트를 타고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도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0) 2018.06.04
형세  (0) 2018.05.28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0) 2018.05.14
다이얼 히스토리  (0) 2018.05.08
지구는 평화  (0) 2018.04.30
예술가와 갈등  (0) 2018.04.23
Posted by Kh-art

요한 그리몬프레즈, 다이얼 히-스-토-리, 1997~2000, 비디오, 68분 ⓒ요한 그리몬프레즈


구름 사이를 가로지르며 비행기는 서서히 하강 중이다. 영상에 맞춰 흐르는 잔잔한 클래식 선율에 취해, 늘 그렇듯 평화로운 비행과 여행의 마무리를 예감한다. 멀리 보이는 활주로에는 안전한 착륙을 도와줄 조명등이 길을 밝힌다. 착륙 중인 듯 비행기 조종석이 조금씩 흔들리고, 뒤편에서 문득 불꽃이 번져 나오더니 조종석이 폭발한다. 비행기는 폭발했다.

 

미디어가 어떻게 비행기 납치 사건을 묘사해왔는지에 대한 역사를 추적한 ‘다이얼 히-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벨기에 출신 작가이자 영화감독 요한 그리몬프레즈는 뉴스, 영화, 홈비디오 클립 등에서 발췌한 장면들만을 모아 경쾌한 편집으로 하이재킹 연대기를 완성했다. 작가는 돈 드릴로의 소설 가운데 기술을 맹신하는 현대인들의 현실을 비판한 <화이트 노이즈>와 소비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을 상실한 군중의 폭력성을 다룬 <마오2>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소설가와 테러리스트의 가상 대화로 영상의 내레이션을 구성했다.

 

테러리스트가 하늘을 지배하던 하이재킹의 ‘황금기’인 1970~1980년대, 납치범들의 폭력성을 담은 TV프로그램은 프라임 타임에 배치되었다. 매스컴이 쏟아내는 이미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납치범들의 정치적 메시지는 오히려 언론에 ‘납치’되기에 이른다. 작가는 1960년대 테러 현장의 납치범은 로맨틱한 혁명가처럼, 1990년대 납치범은 텔레비전 세트에 폭탄을 설치하는 익명의 존재처럼 편집하여, 방송 카메라가 시청자에게 ‘죽음’과 ‘폭력’의 영상으로 전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허구’마저도 ‘사건’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미디어발 이미지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때, 미디어를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지 모른다. 작가는 1995년 빌 클린턴과 보리스 옐친이 워싱턴 회담을 마친 후 박장대소하는 장면으로 테러의 연대기를 마무리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세  (0) 2018.05.28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0) 2018.05.14
다이얼 히스토리  (0) 2018.05.08
지구는 평화  (0) 2018.04.30
예술가와 갈등  (0) 2018.04.23
반복  (0) 2018.04.09
Posted by Kh-art

평화란 무엇인가. 질문은 간단하지만 대답은 간단하지 않은 이 주제를 안고, 2017년 프랑크푸르트의 쉬른미술관은 ‘평화’전을 열어 우리 생활 속에서 평화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베카타 오즈딕먼, 폴 뮐러, 블루닷, 2017 ⓒ쉬른미술관

 

“평화의 역사는 인류 자체만큼 오래 되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으로 간주되는 데 반해, 평화는 뭔가 허약해 보입니다. 언론에 전쟁과 폭력은 수익성을 보장하는 사건이며, 정치인들에게도 중요한 관심 대상입니다. (…) 전시회 ‘평화’는 평화로운 삶과 평화를 향한 다른 접근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라고 언급한 큐레이터 마티아스 울리히는 평화를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해 생태계에 관련된 모든 것들 사이의 상호 작용과 의사소통의 과정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물, 식물, 동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환경에 중점을 두고 평화를 바라보고자 했다.

 

미술관은 전시와 연계하여 새로운 평화 로고 공모전을 진행했다. 600여명이 참여한 이 공모전 출품작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드러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비롯한 5명의 배심원들은 그 가운데 ‘파란 점’을 우승 작품으로 선정했다. 터키의 베카타 오즈딕먼과 독일의 폴 뮐러가 동일한 디자인을 제출했다.

 

베카타 오즈딕먼은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는 국경과 장벽의 단절을 극복하고, 자연과 더불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맑고 푸른 세상의 상징이 바로 평화의 상징일 수 있다고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했다. 폴 뮐러는 보이저 1호 탐사선이 우주에서 지구 사진을 찍었을 때 그저 파란 점이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지구의 평화 상징으로 푸른 점을 디자인한 이유를 설명했다. 푸른 별 지구에 사는 모두가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그렇게 파란 점이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  (0) 2018.05.14
다이얼 히스토리  (0) 2018.05.08
지구는 평화  (0) 2018.04.30
예술가와 갈등  (0) 2018.04.23
반복  (0) 2018.04.09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0) 2018.04.02
Posted by Kh-art

2016년 콜롬비아 대통령 후안 마누엘 산토스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뇨와 평화협정에 서명하여, 52년간 2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콜롬비아 내전 종식의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국민투표 결과, 협상안은 부결되었다. 그래도, 산토스 대통령은 콜롬비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376명의 후보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택되었다.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 Sumando-Ausencias(Counting the Absences), 2016, 설치 ⓒ도리스 살세도, Secretaria de Cultura de Bogota

 

평화협상이 부결되자, 콜롬비아 국민들은 국가의 평화 협상 추진을 지지하기 위해 거리에 모여들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명성이 높은 국제적 예술가 도리스 살세도는 350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내전의 희생자 2300명의 이름을 재 가루로 흐리게 써넣은 천 조각을 꿰매 볼리바르 광장을 뒤덮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천의 길이는 7000m에 달했다. ‘Sumando Ausencias’(부재 더하기)라는 제목의 이 퍼포먼스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작가는 “이 작업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집단 생산을 넘어서는 집단행동의 가능성을 탐구한다”고 말하면서, 낯선 이들이 서로 나란히 앉아 죽음과 실종을 생각하면서 바느질로 옷감을 이어 붙여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덧붙였다. 이 작업은 국내외 언론과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작가가 선택한 ‘명단’은 전체 희생자 가운데 7%에 불과하고, 작업 소스로 사용한 명단 역시 과연 신뢰할 만한지 확신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이런 작품을 하는 것이 진정 희생자를 위한 것인지, 작가 자신의 ‘작품’을 위한 것인지도 의심했다. 함께 모여앉아 바느질을 했던 자원봉사자들은 끊임없이 바느질의 완성도와 테크닉을 요구한 작가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예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만 지속적인 질문을 던질 뿐이다”라고 했던 살세도는 이 작업으로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이얼 히스토리  (0) 2018.05.08
지구는 평화  (0) 2018.04.30
예술가와 갈등  (0) 2018.04.23
반복  (0) 2018.04.09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0) 2018.04.02
어떤 속박  (0) 2018.03.26
Posted by Kh-art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 1982, ⓒYi-Chun Wu/MoMA


해가 뜨고 지는 일, 눈을 뜨고 감는 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일, 전원을 켜고 끄는 일, 일어나고 잠드는 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 꽃이 피고 지는 일, 계절이 오고 가는 일, 만나고 헤어지는 일, 달이 차고 기우는 일, 태어나고 죽는 일, 새것이 낡아가는 일. 나는 소소한 일, 거대한 일이 촘촘하게 반복되는 세상에 파묻혀 살고 있다.

 

전통을 거부하는 일이 전통인 예술계에서,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가 음악의 전통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지독하게 단순한 반복이었다. 반복되는 악절을 일치시켰다가 어긋나게 만들고 다시 일치시키는 전개가 되풀이되는 그의 음악은 진부하거나, 지루하거나, 기존 체계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법한 정도의 혁신이었다.

 

벨기에를 떠나 뉴욕 유학길에 올랐던 무용수 드 케이르스마커의 짐가방에는 스티브 라이히의 음반이 있었다. 1982년, 22세의 드 케이르스마커는 그의 음악과 교감하여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을 발표했다. 엄격하게 반복적인 동작으로 구성한 이 실험적인 작품으로 그는 ‘무용에 혁신을 촉발한’ 안무가가 되었다. 무용수가 반복하는 회전 동작이 쌓여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은 움직임을 따라 무대 위 하얀 모래 위에서 꽃처럼 피어올랐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업에 대해 ‘그저 음악에만 기대지 않고, 음악 위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했다’고 덧붙이며, 그의 행보에 독보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초연 이후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연하기까지, 300회인지 400회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해 온 이 춤은 이제 ‘전설’이 되었고, 여전히 그 춤을 추고 있는 ‘미니멀리즘 무용의 교과서’ 드 케이르스마커는 이제 58세가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는 평화  (0) 2018.04.30
예술가와 갈등  (0) 2018.04.23
반복  (0) 2018.04.09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0) 2018.04.02
어떤 속박  (0) 2018.03.26
흘러간다  (0) 2018.03.19
Posted by Kh-art

예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정한 유형의 힘을 알아차리는 데 유난히 밝은 눈을 가진 작가라고 평가받았던 한스 하케는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 제안을 받고, 독일관에 축적되어 있는 히틀러의 욕망에 주목했다.

 

한스 하케, 게르마니아, 1993, 설치,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 파빌리온 ⓒ한스 하케

 

1909년 베니스의 자르디니 정원에 세 번째 국가관으로 자리 잡은 독일관은 히틀러가 추구하는 나치의 미학 원리, 독일 예술의 새로운 정신을 담기 위해 1938년 재건되었다. 로마제국을 넘어서는 거대한 독일제국의 건설을 꿈꾼 히틀러는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으로 도시계획을 추진했고, 베니스의 독일관도 그 맥락 안에서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히틀러의 비전을 그대로 투영한 독일관은 패전 이후, 나치즘 시대의 산물이 되어 버렸다.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참여 작가들의 과제는 독일관이 품어내는 나치의 역사를 지우고, 건물의 메시지를 무력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1991년 통일 이후 독일 사회에 네오나치즘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바라보며, 그는 1934년 히틀러가 베니스비엔날레를 방문했던 당시의 사진을 국가관 입구에 걸었다. 입구를 통과해 실내로 들어선 관객은 공허하게 빈 공간과 산산이 부서진 바닥면을 만난다. 그는 내부 바닥 판을 조각내어 방문객들이 비틀거리며 걷도록 만들었다. 나치의 깃발 아래, 부서지는 콘크리트 조각을 밟으며 ‘게르마니아’를 통과하는 관객들은 ‘합법적’ 파괴와 학살이 자행된 전쟁의 참상을 연상했다. 독일의 건강한 미래는 그릇된 역사를 철저히 분쇄한 후에나 올 수 있음을,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술가와 갈등  (0) 2018.04.23
반복  (0) 2018.04.09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0) 2018.04.02
어떤 속박  (0) 2018.03.26
흘러간다  (0) 2018.03.19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0) 2018.03.12
Posted by Kh-art

건설현장처럼 전시장 곳곳에 툭툭 쌓여 있는 시멘트 벽돌담 너머로 화면 곳곳이 떨어져 나간 대형 모니터가 서 있고, 부서져 나온 모니터 조각들은 전시장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깨진 화면 위로 모델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드리 헤밍웨이의 모습이 보인다. 노란 블라우스를 입은 그는 채광이 좋은 사무실에 앉아 옥수수를 먹는 중이다.

관절재활치료기구(CPM)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테이블 위 옥수수에 닿는 것은 영 쉽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옥수수를 입에 넣는 데 성공한다.

 

예스퍼 유스트, servitudes, 2015, 영상, 설치, 아이뮤지엄 설치장면.

 

옥수수를 씹는 촉촉한 소리와 피아노의 영롱한 선율이 하모니를 이루는 가운데, 어색하면서도 우아한 몸짓으로 옥수수를 먹으면서 간간이 관객을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헤밍웨이의 모습은 아름다운 옥수수 광고모델 같다.

 

덴마크 출신 작가 예스퍼 유스트는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기계의 힘을 빌려 옥수수를 먹는 찰리 채플린을 보았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손발이 묶인 그는 점심시간을 아끼기 위해 공장주가 도입한 자동 급식 기계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를 먹었다. 빠르게 회전하는 급식 기계는 채플린의 이빨을 갈아버리고, 컨베이어 벨트의 미친 속도는 그의 정신을 갈아버렸다.

 

<모던타임즈>의 시간으로부터 세월이 꽤 흘렀으니, 무언가 달라졌을까. 채플린의 시대와 드리 헤밍웨이의 시대를 옥수수(GMO)와 기계로 연결한 예스퍼 유스트는 옥수수 뒤에서 이익을 거둬들이는 이의 그림자를 작품 속에 포착했다.

 

전보다 섬세한 속도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는 그림자의 몸짓은 더없이 우아했고 매력적이었다. 그림자가 마련한 판타지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기꺼이 올라탄 이들은 옥수수를 즐겼고.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욕망을 연료 삼아 컨베이어 벨트는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복  (0) 2018.04.09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0) 2018.04.02
어떤 속박  (0) 2018.03.26
흘러간다  (0) 2018.03.19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0) 2018.03.12
6144 ×1024  (0) 2018.03.05
Posted by Kh-art

네쉬린 코드르, 확장된 바다, 2017, 비디오 설치, 12시간, ⓒ네쉬린 코드르


세상에 멈추어 있는 것은 없다. 지구는 여전히 시속 1600㎞의 속도로 자전하고, 시속 10만㎞의 속도로 공전 중이니,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분주하고 번잡한 이유는 모두 정신없이 돌고 달리는 지구 때문이다. 하루를 돌리고, 계절을 달리는 지구의 속도 위에 흐르지 않는 건 없다.

 

네쉬린 코드르는 베이루트의 야외 풀장에서 흘러가는 하루의 절반을 영상 속에 붙잡았다. 어둠을 뚫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어떤 움직임과 물살을 가르는 소리로 영상은 시작한다. 지구 자전의 속도에 맞춰 붉은 기운이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면 순식간에 날이 밝는다. 수평의 평평한 프레임 안에 포착한 야외 풀장 너머 지중해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푸른 하늘이 시원하다.

 

작가는 야외 풀장에서 줄기차게 헤엄치고 있다. 일정한 속도로 코스를 오가는 그는, 규칙적으로 프레임 안을 헤엄쳐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어느새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태양이 표준 자오선을 지나는 정오에 한 시간 남짓 풀장을 벗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수영했다. 수영하는 작가의 움직임 너머 지중해에서는 간혹 보트가 떠 있다가 지나가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첨벙거리다 지나가고, 파도가 일렁이다 지나간다. 풀장도, 바다도, 하늘도 푸르게 고요한데, 그 지독하게 잔잔한 12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푸른색이 알아차릴 수 없는 속도로 눈앞에서 지나간다. 여전히 지구는 정신없이 돌고 있지만, 세상의 소음을 뒤로한 채 잔잔한 그 푸르름 앞에, 지난하게 반복되는 작가의 몸짓 앞에 느긋해지는 마음의 속도가 불편하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를 기억하는 예술  (0) 2018.04.02
어떤 속박  (0) 2018.03.26
흘러간다  (0) 2018.03.19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0) 2018.03.12
6144 ×1024  (0) 2018.03.05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0) 2018.02.26
Posted by Kh-art

1982년 제니 홀저가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 작업을 내건 이후, 사람들은 권력 남용의 현장에 이 경구를 소환했다. 급기야 지난해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인용된 문장으로 언급되며, 권력 앞에 침묵하는 이들을 각성시켰다.

 

제니 홀저, 트루이즘-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Truism-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 1982, 컴퓨터 애니메이션,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6.1×12.2m ⓒ제니 홀저, 퍼블릭 아트 펀드, 사진: 존 마케일

 

지난해 10월, 미술전문잡지 아트포럼에서 일했던 아만다 슈미트는 잡지의 공동 발행인 나이트 랜즈맨의 성희롱을 폭로했다. 신디 셔먼, 로리 앤더슨, 제니 홀저 등의 예술가뿐 아니라 아트딜러 사디 콜, 바버라 글래드스톤, 큐레이터 로라 호프먼, 리사 필립스 등 7000명 이상의 미술계 여성들이 아만다 슈미트의 용기를 지지하며 미술계 내 권력을 이용한 성희롱을 고발, 비판하는 움직임에 동참했다.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We Are Not Surprised·WAN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제니 홀저의 경구에서 출발하는 홈페이지 ‘www.not-surprised.org’에 “우리는 자원 제공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비웃음당하고, 짓눌리고, 희롱당하고, 경멸받고, 협박받았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게시하고, 권력 남용의 현장에 늘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했다. 잡지는 사과하고, 나이트 랜즈맨은 사임했다. 아만다 슈미트는 침묵을 깨뜨린 용기로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채 흐르지 않았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트포럼과 나이트 랜즈맨은 ‘책임’으로부터 살짝 비켜서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권력자가 ‘승승장구’하는 일은, 늘 그렇듯이 놀라울 것도 없지만.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속박  (0) 2018.03.26
흘러간다  (0) 2018.03.19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0) 2018.03.12
6144 ×1024  (0) 2018.03.05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0) 2018.02.26
슬립시네마호텔  (0) 2018.02.05
Posted by Kh-art

극장에서 상영 중인 마거릿 혼다의 작품 ‘6144×1024’는 그저 ‘색’이었다. 영화 전체를 한 컷에 담고 싶어서 영화 상영시간 내내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놓았던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가 필름에 포착한 스크린이 하얀 색이었다면, 영상의 의미에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마거릿 혼다의 작품은 색의 스펙트럼이었다. 하나의 색이 다른 색으로, 또 다른 색으로 일정한 속도에 맞춰 변해갔다. 어둠에 몸을 묻고,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영상에 몰입할 기대감으로 극장을 찾는 이들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는 화면이었다. 서사의 개연성이랄 것도, 미장센이랄 것도 없는 이 영상에서는 1초에 24프레임씩 약 300만장의 컬러 스펙트럼이 36시간22분2초간 흘러갔다.

 

마거릿 혼다, Spectrum Reverse Spectrum, 2014 ⓒ마거릿 혼다

 

경험을 지배하는 물질의 세계와 그 과정을 깊이 살펴보는 작업에 집중하는 마거릿 혼다는 기술이 지시하는 지침을 고스란히 수용하기보다 그 기술의 예측 가능한 기능을 배반하거나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상상을 풀어내는 실험을 즐긴다. 최근 디지털 영화 프로젝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 작가는 디지털 영화 프로젝터로 구현 가능한 모든 색을 펼쳐보이고 싶었다. 적색 청색 녹색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조합 6144종의 색을, 1024단계에 달하는 거의 모든 명도로 볼 수 있는 영상을 완성했다.

 

시작과 끝이 있기야 하지만, 시작도 끝도 큰 의미가 없는 이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끊임없이 극장을 들락거렸다. 누군가는 1분 만에 극장 밖으로 나갔고, 누군가는 1시간 이상 모노크롬 회화처럼 펼쳐지는 스크린을 주시했다. 극장에 머무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색채의 스펙트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거꾸로 흐르지도 않는 시간의 스펙트럼이 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흘러간다  (0) 2018.03.19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0) 2018.03.12
6144 ×1024  (0) 2018.03.05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0) 2018.02.26
슬립시네마호텔  (0) 2018.02.05
화가와 모델  (0) 2018.01.22
Posted by Kh-art

2002년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오덴세, 스웨덴의 말뫼, 오스트리아의 린츠와 그라츠 거리에 “외국인 여러분,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끼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라는 메시지의 주황색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그룹 슈퍼플렉스가 ‘글로벌 콤플렉스’라는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었다. 2001년 가을, 77년간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해 온 중도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선거에 패배했다. 세금 인상, 유로화 도입 등의 정책이 유권자의 반감을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9·11 테러 이후 반이슬람 정서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 집권당의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향한 덴마크 사람들의 불안감도 이들의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 정권을 잡은 보수연립정권은 강경한 이민 정책을 추진했고 자국민 중심주의를 추구했다. 우경화의 출발이었다.

 

슈퍼플렉스, 외국인 여러분,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끼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2002, 벽에 채색, 포스터(사진 Anders Sune Berg)

 

슈퍼플렉스는 ‘덴마크 사람’ ‘외국 사람’을 경계 짓고 국가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보수정권의 정책은 위험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선가는 외국인이건만, 자국민과 외국인의 경계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질문해야 했다. 그들은 거리에 하나의 문장을 던졌다. 이제 사람들은 ‘외국인’ ‘우리’ ‘덴마크인’이 누구인지 다시 토론해야 했다.

 

2016년 덴마크 거리의 광고판에는 백인 가족사진 위로 ‘우리들의 덴마크-우리가 보살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적은 포스터가 붙었다. 반이민 정책을 내세워 제2정당으로 급부상한 국민당(DF)의 광고였다. 이 광고는 덴마크 사회에서 인종차별 등의 논란을 가져왔다. 같은 해 덴마크국립미술관(SMK)은 슈퍼플렉스의 포스터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전시했다. 작가들은 벽면에 메시지를 적어 넣었고,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포스터를 비치했다. 10년이 더 지났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어쩌면 더 나빠진 세상을 향해 사람들은 2002년의 구호를 퍼뜨리며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0) 2018.03.12
6144 ×1024  (0) 2018.03.05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0) 2018.02.26
슬립시네마호텔  (0) 2018.02.05
화가와 모델  (0) 2018.01.22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0) 2018.01.15
Posted by Kh-art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SLEEPCINEMAHOTEL(슬립시네마호텔), 2018, 영상, 혼합재료, 로테르담 WTC 설치 장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6일 동안 특별한 호텔을 운영하기로 했다. 4시가 넘으면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겨울,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기간이었다. 로테르담 세계무역센터 한쪽에 ‘슬립시네마호텔’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투숙객을 맞이했다. 

 

전면의 큰 유리창 너머로는 전쟁의 폭격에 초토화된 도시를 과거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개성 있고 실험적인 새로운 건축에 내주어 현대건축의 메카가 된 로테르담의 마천루가 펼쳐졌다. 어둠이 조심스럽게 벽을 대신할 뿐, 전체가 하나로 개방된 객실이라 잠자리가 다 노출되는 환경이었지만, 객실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다가 잠 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한 작가는 도시의 스펙터클을 담은 큰 창문 위로 ‘가장 오래된 TV’라는 보름달을 닮은 스크린을 설치하고, 24시간 내내 영상을 상영했다. 이 영상은 숙면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할 터였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상상력과 교감할 수 있지만, 수면 중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스며들어 어떤 작용을 할 법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아이필름뮤지엄’과 ‘사운드 앤드 비전 인스티튜트’의 협조를 받았다. 한 세기 남짓 인간의 삶과 풍경을 기록한 영상 아카이브 가운데 잠자는 동물, 잠자는 사람, 하늘, 강, 바다, 숲, 항해, 비행 등의 장면을 선택해 편집한 이 영상은 호텔 개장일부터 폐장일까지 단 한순간도 반복되지 않았다. 6일의 러닝타임을 가진 한 편의 작품이었던 셈이다.

 

흘러가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처럼, 반복 없이 변화하는 영상은 투숙객이 마주하는 매 순간을 고유한 경험으로 만들어 주었다. 잊지 못할 하룻밤에 일조한 그 영상이 이미 누군가의 경험을 담은 흘러간 ‘역사’의 콜라주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새로움이란, 고유함이란 다 그렇게 오는 법 아닌가.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6144 ×1024  (0) 2018.03.05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0) 2018.02.26
슬립시네마호텔  (0) 2018.02.05
화가와 모델  (0) 2018.01.22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0) 2018.01.15
오늘  (0) 2018.01.08
Posted by Kh-art

미술관 큐레이터, 동료 작가, 이웃, 가족 등 주변 지인의 초상을 평생 화폭에 담아온 앨리스 닐은 모델과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영혼을 포착하는 화가’라는 수식어는 그냥 얻은 게 아니었다. 모델들은 그 과정이 불편했지만, 화가는 그 시간을 통해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잡아냈다. 모델을 향한 화가의 통찰력과, 화가를 대면한 모델의 친밀하기도, 불편하기도 한 시선이 캔버스 위에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은 형태를 만들었다.

 

앨리스 닐, 지니, 1984, 캔버스에 유채

 

작가의 며느리였던 지니는 종종 앨리스의 모델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발랄했던 젊은 날의 하루, 아이를 안고 있는 행복한 순간이 작품으로 남았다. 80대의 노화가 앞에 지니는 다시 앉았다. 제비꽃 색 원피스를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지니의 모습에서 앨리스가 발견한 것은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깊은 상실감이었다. 눈 쌓인 바깥세상의 냉기가 실내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것 같은 하얀 풍경 안에 앉아 있는 지니는, 복잡한 상념에 젖은 눈빛으로 앨리스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니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문득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슬픔에 무너지곤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언젠가는 이 바닥 없는 슬픔에도 무뎌질 터였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화가는, 지니가 겪어내는 애도의 시간을 화폭에 담으면서,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이 보내야 할 감정의 터널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다 지나가겠지만, 캔버스를 사이에 두고 앉았던 모델과 화가 사이의 대화는 화면 위에 남아, 문득문득 그 순간의 감정을 상기시켜 줄 터였다. 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정직하게 캔버스를 만났던 앨리스 닐은 이 작품을 마무리한 1984년, 세상을 떠났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0) 2018.02.26
슬립시네마호텔  (0) 2018.02.05
화가와 모델  (0) 2018.01.22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0) 2018.01.15
오늘  (0) 2018.01.08
10원의 가치  (0) 2017.12.18
Posted by Kh-art

하룬 미르자,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파동함수의 붕괴), 2017, 혼합재료 @자블루도비츠 컬렉션, 사진: 팀 보우디츠


그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룬 미르자 특유의 사운드 비트와 이미지가 혼성되어 있는 공간을 지나가야 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전기를 잡아내 전기가 흐르는 과정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드러내 보이곤 했다. 특정 속도로 깜박이는 불빛, 스크린의 영상, 잡음 같기도 한 소리로 드러나는 전류는, 흩어져 있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서로 다양한 모드로 복잡하게, 하지만 그 나름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룬 미르자가 조율한 빛과 소리의 파장 안으로 진입한 몸은 곧 그가 연출한 전류의 관계망과 동기화된다. 그 몸은 하룬 미르자의 세상에 안착하는, 아니면 포섭당하는 기분을 맛보곤 한다.

 

현란한 공간 너머에는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이라 명명한 밀실이 있었다. 작가는 이 공간을 통해 ‘의식이 물질을 통제할 수 있는가’와 ‘물질이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두 가지 아이디어를 조사하고 싶었다. 물질과 의식, 진리와 신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탐구하고 싶었다. 그리니치 대학교와 임피리얼 칼리지의 연구자들이 그의 조사에 협력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데 탁월하고, 꿈을 꿀 때, 그리고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분비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 디메틸트립타민(DMT)을 작품 제목으로 끌어왔다. 외부의 감각을 박탈당한 공간에 들어가면 인간의 의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는 예술의 이름으로 실험했다. 사람들은 빛도 소리도 완전히 차단된 무반향실에 들어가 10분 정도 머물렀다. 몸에 지니고 있던 휴대전화, 가방 같은 소소한 물건들은 모두 밖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외부의 정보를 온전히 차단한 이 공간의 침묵은 자연스럽게 내 감각을 내 안으로 집중시켰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내가 만난 것은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잡음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립시네마호텔  (0) 2018.02.05
화가와 모델  (0) 2018.01.22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0) 2018.01.15
오늘  (0) 2018.01.08
10원의 가치  (0) 2017.12.18
소멸을 생각하는 일  (0) 2017.12.04
Posted by Kh-art

새로운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좋은 새해가 왔다. 매일 새로운 하루, 매분, 매초가 다시 오지 않을 새로운 시간이지만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그 모든 새로움은 빛을 잃는다.

 

해가 바뀌는 정도는 돼야, 나의 습관을 돌아보고 재정비할 마음이 선다. 명색이 새해인데 목표도 좀 세워야 한다.

 

온 카와라, 오늘, 1966-2014, 혼합재료

 

목표를 향한 집념이 얼마 안 가 흔들리고, 흐려지다가 다음 새해를 다시 기다리는 상태가 곧 온다 해도, 새해니까, 일단 의지를 세워본다.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서면서 맞이한 새해니까, 올해를 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해본다.

 

1966년 1월4일, 온 카와라는 ‘오늘’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굳이 기억할 것이 없는 그저 그런 하루, 또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특별했을 그 하루를 그리는데 그는 ‘날짜’를 선택했다. 다섯 차례 밑칠을 한 모노톤 캔버스 위에 하얀색 물감을 일곱 번까지 칠해서 산세리프 서체의 날짜를 그려 넣었다. 캔버스 뒷면에는 그날의 신문을 스크랩해서 붙이기도 했다. 당일 자정까지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그 작업은 폐기했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말을 한없이 아꼈던 그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기록해 나갔을지는 알 수 없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의 한 부분을 잘라내 호명한 ‘날짜’라는 이름의 시간은 매일 반복적으로 쌓여갔고, 그의 ‘오늘’도 담담하게 쌓여갔다.

 

비슷한 듯 다른 ‘오늘’ 그림은 2014년 7월10일 끝났다. 2만9771일을 산 그는 그해 7월 말 세상을 떠났고, 50년 가까이 진행한 그의 ‘오늘’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가와 모델  (0) 2018.01.22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0) 2018.01.15
오늘  (0) 2018.01.08
10원의 가치  (0) 2017.12.18
소멸을 생각하는 일  (0) 2017.12.04
잘 잤니  (0) 2017.11.27
Posted by Kh-art

이원호, 차액의 깊이, 2017, 단채널 영상, 설치


2015년 미얀마 시장 골목에서 이원호는 한 상인의 좌판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빛바랜 동전이 무심히 쌓여 있었다. 동전 더미를 뒤적이다 익숙한 한국 동전을 발견한 그는 어디서 여기로 굴러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동전들을 끄집어내 쌓으며 가격을 물었다. 500원은 400원이기도 했고, 100원이기도 했으며 10원은 300원이기도 했다. 상인은 여러 개를 묶어 사면 깎아주겠다고도 했다. 2017년 작가는 인도 거리에서 한국 동전을 발견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환율과 무관하게 거래되는 동전 가격을 흥정했다. 상인과의 흥정 여부에 따라, 거래는 성사되기도, 안되기도 했으며 그는 이익을 보기도, 손해를 보기도 했다. ‘통화’의 역할을 부여받고 탄생한 ‘동전’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상황에서 손해와 이익을 판단하는 것이 애매하긴 했다.

 

희귀 동전 수집가들 사이에서 동전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다. 1969년 발행한 10원, 1970년에 발행한 적동색 10원은 30만원에도 거래가 된다. 가장 희귀한 것으로 알려진 1998년산 500원 동전은 경매에서 100만원에 낙찰된 일도 있다.

 

몇 해 전, 7억원에 해당하는 10원짜리 동전을 녹여 동괴를 만든 뒤 20억원을 벌어들인 이들에 대한 뉴스는 10원의 재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제조원가가 돈의 가치를 상회하는 10원은 10원이기보다 ‘구리’로 돌아갔을 때 그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이들은 결국 처벌받았다. 영리를 목적으로 주화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돈이 가지고 있는 합의된 교환가치가 통하지 않는 흥정을 경험한 작가는 돈의 의미가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는 동전을 구매한 경험을 작업에 담으며 사회 속에서 ‘가치’는 어떻게 형성되고 발견되는지 돌아보았다. 그 결과, 예술가의 손에 들어와 ‘예술작품’으로 용도변경된 동전들은 새로운 의미를 낳고, ‘가치’를 형성하며 또 다른 거래의 장으로 들어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생성 디메틸트립타민을 위한 방  (0) 2018.01.15
오늘  (0) 2018.01.08
10원의 가치  (0) 2017.12.18
소멸을 생각하는 일  (0) 2017.12.04
잘 잤니  (0) 2017.11.27
잘 지내  (0) 2017.11.20
Posted by Kh-art

 

소생모임(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 건축의 소멸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 2017, 보안여관 전시 장면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가. 건축가 조성룡은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며 ‘집’이라고 했다. 집 없이도 어디선가 살기야 하겠지만, 집이 없다면 불안한 기억은 그저 사라진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거나 지우고 싶은 걸까.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여관이던 시절의 흔적을 폐허처럼 유지하고 있는 예술 공간 ‘보안여관’에서 열린 ‘소록도’ 전시는 ‘기억하는 일’에 대해 질문한다.

 

지난 5년간 조성룡과 성균건축도시설계원 구성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하면서 진행한 작업은 ‘은폐된 섬’에서 살았던 이들의 삶과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다. 이제는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을 폐허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보안여관에 펼치니, 세상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이 잠시 그 소멸의 시간을 멈춘 채, 우리에게 기억하고 기록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한센인들을 철저하게 격리시켰던 ‘우리의 세상’은 마치 이런 곳, 이런 병은 ‘우리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삭제했다.

우리는 그 존재를 아마도 잊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그 땅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시를 주최한 ‘소록도를 생각하는 모임’은 생각한다. 한센인 환우의 수가 줄어들면서 마을은 폐허가 되고, 숲이 되고, 언젠가는 소멸하겠지만, 그들 삶이 기록된 저장소이자 우리 모두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집’들을 그냥 이렇게 사라지도록 둘 것인가. 그들을 여전히 지워버려야 할 대상으로 여길 것인가. 소록도 마을의 진정한 보존과 상처의 소멸이 이루어지도록 이 작업을 기억하고 응원하고 도와달라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0) 2018.01.08
10원의 가치  (0) 2017.12.18
소멸을 생각하는 일  (0) 2017.12.04
잘 잤니  (0) 2017.11.27
잘 지내  (0) 2017.11.20
전시인가, 과시인가  (0) 2017.11.13
Posted by Kh-art

곤 사토시, 잘 잤니(ohayo), 2007, 애니메이션, 1:00 @곤 사토시


이야기는 짧다. 방 안에는 카드며 꽃이며 선물, 빈 술잔 같은 생일파티의 흔적이 있고, 침대에 모로 누워 있던 여성은 알람이 울리자 인상을 찌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음료를 꺼내 마신 후, 칫솔을 들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텔레비전을 켜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맞추고 경쾌하게 인사한다. “잘 잤니.” 그렇게 1분짜리 영상은 끝난다. 단순하다. 주인공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인사하는 순간까지 여럿으로 분리된 채 시간차를 두고 움직였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곤 사토시의 작업에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좀처럼 구별할 수 없다.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일도 어렵다. 환상은 극대화되고 꿈과 현실의 경계도 무의미해진다. 그의 환상 안에서 관객은 내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그의 유일한 단편 애니메이션 <잘 잤니> 속에 담긴 일상의 환영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좀처럼 잠자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의 아침을 연상시키기 때문인지 반복 재생을 유도한다.

 

화면 안에는 침대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고, 양치질을 하지만, 이제 겨우 침대를 벗어나 냉장고 문을 여는 내가 있다. 투명해서 배경이 고스란히 비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온전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처럼 휘청거린다. 이 흐릿한 주인공들은 시간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좁은 집 안을 오가는 그들의 동선이 겹치면서 어떤 동작이 앞선 것인지 알 수 없고, 누가 주인공이고 무엇이 그림자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꿈’의 시간에서 멀어져 온전히 잠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들은 하나가 된다. 영혼의 한 조각도 다른 데 흘리지 않고 전날의 피로에서, 잠에서,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잘 잤냐고 인사를 건넬 수 있으니, ‘기상’은 일상의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원의 가치  (0) 2017.12.18
소멸을 생각하는 일  (0) 2017.12.04
잘 잤니  (0) 2017.11.27
잘 지내  (0) 2017.11.20
전시인가, 과시인가  (0) 2017.11.13
터널  (0) 2017.11.06
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