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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무르익어가는 5월 초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딸아이와 함께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변월룡(1916~1990)의 세계를 감상하였다. 수많은 인물화와 폭풍우 몰아치는 풍경,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북녘 자연의 묘사에 한동안 우리 부녀의 시선이 움직일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지 않은 그 이름 변월룡. 고려인 2세로 옛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레핀 예술학교 교수가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끝까지 변월룡이란 한국 이름을 고수하였던 인물. 그는 1953년 소련 문화성의 명령에 따라 북한에 파견된다. 북한에 머물렀던 1년3개월 동안 변월룡은 수많은 북한의 인물,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범을 전수했다. 하지만 북한의 영구 귀화를 거부하여 북한에서도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백남준, 이응노와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할 대가라고 극찬을 한 유홍준 교수의 평가처럼 위대한 화가의 존재를 적성국 소련의 화가라는 이유로 지금껏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천재 화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던 고국의 현실이 평생의 한으로 맺혀 있었을 그를 생각하니 분단이라는 트라우마가 또다시 우리를 괴롭힌다.

많은 여운을 뒤로한 채 미술관 밖을 나서니 문득 예상치 않았던 진풍경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한민국의 한복판인 서울시청 옆으로 고궁의 열린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자리한 서양의 신고전주의 양식인 석조전을 비롯하여 중앙에 전통양식의 중화전, 그 너머로 곡선미를 자랑하는 서울시청사, 그리고 양옆으로 넓게 드리워진 모더니즘의 빌딩 숲. 덕수궁 현대미술관 앞에 펼쳐져 있는 풍광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다양한 건축양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건축전시장 그 자체이다.

넓은 영국식 정원 중앙에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분수와 좌측으로 수양버들마냥 늘어진 벚나무 가지가 만들어 내는 자연스러운 곡선은 주변의 건축물들과 한데 어울려 멋진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수없이 주변을 오갔으련만 덕수궁 내에서 이렇게 멋진 풍광을 처음 느껴보다니 나 자신이 쑥스러울 따름이다. 여름을 기다리는 봄날의 정취도 이리 아름다울진대 벚꽃이 만발했을 때 와 봤더라면 더욱 멋진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은 서울의 풍경이다.



윤희철|대진대 건축과 교수

Posted by Kh-art
지난달 중순 서울 명동성당에서 아퀴나스 합창단이 부르는 슈베르트의 ‘십자가 아래의 어머니(Stabat Mater)’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터라 명동성당 안에서 불리는 합창의 음향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들리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복잡한 명동거리를 통과해 성당에 도착한 나는 갑자기 어떤 외딴 섬에 도착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복잡하고 국내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명동에 이렇게 여유있고 평화로운 넓은 공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삼건축의 설계로 명동성당 종합계획의 1단계 공사가 2014년 마무리됐다. 그 전의 명동성당과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 1898년 미국인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건립된 고딕양식의 대성당 앞쪽으로 넓게 자리한 열린 공간이 가장 큰 특징이다.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넓은 녹지와 보행자들의 광장을 조성했다. 열린 공간 아래에는 서점, 카페, 갤러리 등 다양한 편의시설과 문화공간이 자리 잡고 있고 외곽으로는 지상 10층의 서울대교구 신청사를 비롯한 파밀리아 채플과 프란치스코홀이 열린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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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에 사용된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이 신축건물에도 똑같이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느껴진다.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는 명동성당의 전체 모습은 뒤쪽에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남산을 배경으로 멋진 도시풍경을 자아낸다.

종종 마련되는 명동성당 대성전 안에서의 음악회는 첨두아치와 리브볼트, 스테인드 글라스 등 고딕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건축미와 그러한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멋진 건축 음향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복잡한 도심 속 외딴섬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 답답했던 마음 문이 열렸다면, 명동성당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음향에 잠시 자신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추어 뾰족한 첨탑과 깊고 웅숭한 기도처의 고요와 따뜻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합창의 하모니가 아직까지 내 귓가에 맴돈다.


윤희철 | 대진대 건축과 교수


Posted by Kh-art

봄내음이 무르익기 시작하던 지난 1일 내 눈을 의심케 하는 소식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침 만우절이어서 도처에서 장난기 섞인 소식들이 올라오던 터라 이 역시 장난이겠거니 하고 일축하려 했다. 그런데 현지시간으로 3월31일이란 내용을 접하고 여기저기 살펴보니 자하 하디드의 사망은 사실이었다.

앞으로도 한참 활동할 나이인 65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이라크 출신 건축가인 그는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그는 내놓는 설계 안마다 건축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슈 메이커였다.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2014년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는 자하 하디드의 대표적인 유작이 됐다.


국제지명현상 설계에서 당선된 그의 설계 안은 3차원 곡선만으로 이루어진 유기체 형상의 모습이었다. 전시·판매 등 복합문화공간 용도로 건립된 이 건물은 공사비만 5000억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데다 서울의 역사성이나 주변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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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건물은 주변의 직선적인 20세기 건축물군과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어 그 형태 면에서나 크기에 있어 이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관 1년 만에 방문객 1000만명이 넘었고, 이제는 하루 평균 2만명 이상이 찾는 대표적인 서울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제 이 건물이 활발한 문화활동을 기반으로 다양한 수익모델을 창출해 수지 측면에서도 ‘예산 잡아먹는 하마’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불식되길 기대한다. 그것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자하 하디드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남긴 자신의 대표 유작에 기대하는 바람이리라.



윤희철 | 대진대 건축과 교수

Posted by Kh-art

창덕궁 동쪽 끝자락에는 궁궐의 위세 높은 형상과는 사뭇 다른 소박한 모습의 한옥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조선 제24대 왕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해 지었다는 낙선재(樂善齋)가 그것이다

‘선한 일을 즐겨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낙선재와 그 오른쪽으로 후사를 기원하는 의미의 석복헌(錫福軒), 그리고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의 수강재(壽康齋)를 합하여 이들 영역 전체를 낙선재라 부른다. 헌종의 정비였던 효현왕후 김씨가 혼례를 치른 지 2년 만에 운명하자 뒤이어 효정왕후 홍씨가 간택되었다.

그러나 혼례 후 만 2년이 흘러도 후사가 없자 헌종은 이를 이유로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하게 된다. 경빈 김씨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헌종은 궁궐 한 모퉁이에 자신의 서재인 낙선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석복헌을 지어 선물한다.

그러나 헌종이 너무 짧은 생애(1827~1849)를 마친 탓에 석복헌에서 경빈 김씨와 함께했던 시간은 겨우 2년여밖에 되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석복헌 우측에 있는 수강재는 헌종의 할머니인 순원왕후의 육순을 기념하여 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지어진 건물이다.

창덕궁 안에 건립된 사대부 주택인 낙선재는 조선 마지막 왕인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가 기거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석복헌은 이은의 아들 이구씨와 그의 아내 줄리아가 미국에서 돌아와 생활했던 곳이고, 수강재는 덕혜옹주가 마지막까지 생활하다 생을 마친 곳이다.

낙선재 뒤뜰에는 순종의 비 윤씨를 위해 지은 별당인 한정당(閒靜堂)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봄철이면 낙선재와 한정당 사이의 경사진 화계(花階)에는 매화, 앵두꽃, 살구꽃이 봄경치의 장관을 이룬다.

봄내음이 서서히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요즘 낙선재 뒤뜰에서 연출되는 봄꽃의 향연에 잠시 흐르는 시간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철 | 대진대 건축과 교수

Posted by Kh-art

2004년 현대식으로 지어진 새 역사의 등장으로 그간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한몸에 담아왔던 옛 서울역사가 본연의 기능을 뒤로하고 이제는 문화공간으로 변신하였다. 1947년까지 경성역으로 불리던 옛 서울역사는 1925년 일본인의 설계로 완공되었다.

당시 “동양 제1역은 교토역, 제2역은 경성역”이라 할 정도로 옛 서울역사는 규모가 큰 역사였다. 건물의 양식은 중앙 돔을 중심으로 비례가 중시된 좌우 대칭의 르네상스 양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중앙에 놓인 돔은 사각형 평면 위에 원형의 돔을 얹는 형식(펜덴티브 돔)이 특징인 비잔틴 양식으로 되어 있다.

돔 네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탑은 장식적 요소가 많은 바로크 양식의 기법이 더해져 결국 옛 서울역사는 여러 가지 양식이 혼합된 절충주의 양식으로 정의된다. 비록 일제에 의해 지어지긴 했어도 현재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외관을 지녀 사적 284호로 지정되었다.

2004년 KTX 열차의 개통과 함께 새 역사가 모든 역사의 기능을 도맡게 됨에 따라 이 건물은 폐쇄되기에 이른다. 한동안 방치되기도 했던 이 건물은 건축학자들과 건축가 등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원형으로 복원하는 한편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이 건물은 2011년 원형복원공사를 마치면서 이 건물의 사적 번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개관 이후로 전시, 공연, 콘퍼런스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이어지면서 이 건물을 찾는 방문객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 조성공사가 마무리되면 문화공간으로서 이 건물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대한민국 수도의 관문에서 아름다운 근대유산을 배경으로 우리의 문화수준을 한껏 보여줄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공간으로 정착되길 기대한다.


윤희철 | 대진대 건축과 교수

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