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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미로와 미궁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포세이돈이 자기를 위한 제물로 쓰라고 보낸 흰 황소를 왕비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신에게 바치지 않았다. 이에 모욕을 느낀 포세이돈은 미노스 왕을 벌주기 위해 파시파에 왕비가 그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왕비는 몸이 달아 명장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나무로 된 가짜 암소를 만들게 하여, 그 속에 몸을 감춘 채 황소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 후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났고, 미노스왕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게 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고, 해마다 아테네 출신의 처녀 총각 각 7명을 먹이로 주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가 제물로 바쳐질 희생자들에 끼어 크레타로 왔다.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그만 테세우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녀는 자기를 그리스로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고, 테세우스는 대신 미궁의 숙제를 풀게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을 주어 완전하게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했다.

신화 속 미궁은 도대체 어떤 장소였을까? 사실 미로(maze)는 막다른 길이 있고 복잡하게 얽혀있어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드는 곳이다. 반면 미궁(labyrinth)은 마치 진자처럼 회전하는 길을 따라가면 안전하게 중심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든 길을 다 거쳐서 궁극적인 중심으로 가는 외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로가 중심을 잃도록 배치되어 있다면, 미궁은 반드시 중심에 닿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샤르트르 대성당에 가면 회중석 중앙 바닥에 미로처럼 보이는 둥근 형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미궁이다. 그 미궁은 사람들이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몸을 옮기며 중심에 다다를 수 있도록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그곳은 예루살렘이자 천국이며, 자궁인 동시에 이데아다.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신을 명상하며 걷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조용한 퍼포먼스 예술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