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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철의 바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적 조각가 리처드 세라는 철을 물결처럼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무겁고, 거칠고, 위험해 보이는 철로 부드럽고, 유약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만든다. 마치 내 마음대로 안되는 상대를 구슬러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딱딱한 물질을 부드러운 물질로 바꾸고, 작은 물건을 큰 물건으로 바꾸어 놓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크게 감동시킨다. 현대미술은 발상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세라는 영문학도 출신으로 예일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때 생계를 위해 제철소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의 세라를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200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개관 기념전의 단독 작가로 초대되었다. 세라의 두 번째 회고전인 이 전시에서 MoMA의 이사회 의장은 “리처드, 당신을 위해 이 건물을 새로 지었다”라는 말로 그의 작품에 경의를 표했다. 이 말의 배경에는 세라의 거대한 작품이 들어오기 위해,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이미 그의 작품을 들여놓고, 공사를 마감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만큼 예술가로서의 세라의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각도 건축도 아니며, 둘의 구분조차 의미 없게 만드는 세라의 강철판은 어떻게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일까? ‘시간의 물질’이라는 연금술적인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철판을 구부리고 휘게 해 물결 혹은 리본처럼 파동을 이루게 했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 속을 거닐며 보고 만지고 느끼도록 배려했다. 이때 관람객은 우선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런 감정을 숭고미, 그중에서도 수학적이고도 역학적인 숭고미라고 한다. 그런 체험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나, 고딕 성당 혹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상채플처럼 아주 섬세한 시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물결 위에 몸을 실은 것처럼 영적인 분위기 말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