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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키스

김미현, 키스, 2013년


이 장면은 낯익고도 낯설다. 서양 미술의 오랜 전통 속, 사랑에 빠진 두 남자의 한순간인가 싶다가도 쉽게 들어설 수 없는 누군가의 집, 비밀스러운 일상을 목격하는 듯한 주춤거림을 갖게 한다. 사진의 흐릿하고 부드러운 입자는 몽환적이고도 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쩌면 본디 사랑이란 이 흐릿함만큼이나 유약하고, 그래서 더욱 갈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벽에 걸린 그림 속 여인은 고통이자 기쁨인 사랑의 모순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연인끼리의 입맞춤을 애잔한 연민의 시선으로 지켜볼 뿐이다. 그 순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섞이고, 사랑을 둘러싼 통속적인 금기도 허물어져 내린다.

 

김미현은 1985년부터 파리에 살고 있는 사진가다. 정물부터 풍경, 다큐멘터리까지 그녀의 사진들은 부드러운데도 묘하게 강렬한 분위기를 풍긴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과천관의 전시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에서는 그녀의 밤에 관한 연작 3편을 소개하고 있다. ‘밤의 파리’에서는 파리의 카페 풍경을 담았다면, 그와 쌍을 이루는 서울의 밤은 ‘포장마차’가 카페를 대신한다.

 

외롭고도 쓸쓸한 밤을 달래는 그 대중적인 장소를 넘어, 이제 밤은 ‘키스’를 통해 더욱 은밀한 시간을 허락한다. 국내에서 동성애를 다룬 작품 자체가 흔치 않고, 설령 다룬다고 해도 긴장감을 놓지 않은 선언적인 경우가 대다수인 데 비해 김미현의 ‘키스’는 실제이면서도 영화 같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이질적이지 않은 현실로 인식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덕분에 그녀의 섬세한 시선 속에서 한순간의 입맞춤은 영원처럼 정지한다. 밤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슬프고도 아름답게.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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