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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공원 혹은 미니어처

외국인 사진가와 통도사를 거닐 때였는데, 일주문을 향해 걷던 그녀가 문득 형태가 소박한 문과 낮은 담장은 자연을 품기 위한 것이냐고 물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건축과 풍경의 어울림을 알아본 작가 특유의 섬세함에 놀라는 한편, 풍경을 소유하려 들지 않던 옛 건축 앞에서 은근 으쓱해졌다. 과거 산과 하늘은 저 멀리 문 밖에도 존재하면서, 네모난 창과 문 안에도 깃들었다. 그날 사진가는 자신에게 사진을 배운 한국 학생들이 구도를 잡을 때 자연스럽게 여백을 강조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호상, 대치동, 2005


그러나 이제 도심에서 이런 풍경을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층층이 솟은 아파트는 앞집 거실을 넘어다보게 하고, 한강이 바라다보이는 전망은 모두의 것이 아니라 평수의 가치에 따라 소유권을 허락한다. 박호상의 ‘A Square’ 연작은 도심에서 자연을 꿈꾸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작은 공원에 주목한다. 사실 말이 공원이지, 이곳은 놀이터와 운동 시설, 산책로의 기능을 한곳에 압축해 놓은 고층 건물의 작은 마당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 위로 점점이 심어 놓은 나무들은 일종의 장식인 양 부자연스럽다. 작가가 높은 곳에서 잡아낸 작은 공원들은 레고 블록처럼 조립된 인공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마치 분양을 위한 홍보 책자의 조망도처럼 화려하지만, 콘크리트 위에 세워진 실제의 녹지 공간은 디스토피아의 상징인 경우가 허다하다.

박호상의 작품 속에서 사각 틀은 풍경을 들이기 위한 빈 공간이 아니라 녹지마저도 부동산의 평수로 계산하는 시대의 각 잡힌 상품이다. 그곳은 이제 우리에게 여백 대신 자투리 땅을 허락하지 않는 강박을 선물한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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