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북두칠낙

사라진 희귀 성씨 중에 낙씨가 있다. 윤태준의 거짓말은 이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한성백제가 축조한 경기 의왕시 모락산성을 배경으로 낙씨의 탄생 설화를 지어낸 뒤 그 일대에서 그럴싸한 기록사진을 만들어낸다.



모락산성에서 주어온 돌멩이에는 관리번호를 매긴 뒤 사료로 삼고, 박물관에서 찍어온 유물 사진 또한 관련 자료라고 제시한다.

그가 지어낸 얘기대로라면 낙씨의 시조를 키운 인물은 훈족에게 끌려왔다가 한성백제의 강제노역에까지 동원된 로마제국 출신의 서역인이다. 때는 465년 8월25일. 낙씨가 태어날 때는 까마귀 떼가 울었는데, 그 새들이 앉았던 바위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작업 제목 ‘북두칠낙’은 이런 줄거리에서 비롯했다.

황당무계하지만 듣다 보면 그럴싸해지는 이야기는 사진이 뒷받침돼 더욱 믿음직스러워진다. 작가는 애초 자신의 성인 윤씨의 성씨설화를 기록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윤씨의 설화에 얽힌 장소에 가보니 생각보다 볼품이 없었다. 공인된 역사와 지어낸 이야기 사이의 경계, 그 경계에서 확신을 선물하는 사진의 역할에 대한 의심은 그때 시작되었다. UFO나 유령에 대한 얘기도 증거 사진 덕분에 훨씬 흥미진진해지는 걸 보면, 사진은 확실히 진짜에 대한 논란을 부추기는 효과가 대단하다.

그런 점에서 윤태준은 어쩌면 낙씨 설화에 얽힌 최초의 목격자일지도 모른다. 윤씨가 낚시하듯 던진 낙씨 이야기는 진짜마저도 의심하게 만들면서 유쾌한 진실 게임에 빠져들게 한다.


송수정 ㅣ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기와 나  (0) 2016.06.10
공원 혹은 미니어처  (0) 2016.06.03
골목, 기억의 목소리  (0) 2016.05.19
눈의 백일몽  (0) 2016.05.12
인더스트리 코리아  (0) 201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