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太極)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태극은 궁극적인 원리와 가치로서 끝없는 무극이다. 태극은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영원성과 무한성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꿈꾸는 무한한 가치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인 사랑이기를 바란다. 태극이 사랑의 극치라는 의미에서 ‘인극(仁極)’으로 부르고 싶다. 역시 사람의 궁극은 사랑이다.
사랑이 무얼까? 조선시대의 작은 백자합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이 합에는 태극과 건곤감리가 그려져 있다. 그 문양은 조선시대에 향로나 연적에도 종종 사용되었던 태극과 주역의 상징이다. 그 상징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랑을 묻는다.
‘태극문양합’,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박병래 기증품
사랑은 품이다. 사랑이란 중앙에 음으로 양으로 사람을 아끼는 끝없는 품이 있고, 주변에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우주와 자연이 감싸주고 있다고 상상한다. 사랑의 품은 사람들을 아끼고 아껴서, 자유로운 하늘과 땅에서 춤추게 한다. 끝없는 생명의 힘이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강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잘 지켜주는 품이다.
사랑은 곁이다. 하늘과 땅, 불과 물, 서로 다르지만 아끼고 아끼어 돕는 마음으로 곁에 선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대신 삶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곁에 서서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추울 때는 따뜻한 불이 되어 주고, 목마를 때는 한 모금의 물이 되어 준다. 늘 낮고 소박하게 곁에 있는 것으로, 반드시 위대하지 않기에 곁에 있어 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사랑은 틈이다. 건곤감리의 괘에 틈이 있듯이, 허수룩한 틈이 많은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 마음을 낮추어 소박하니, 다른 사람의 사랑이 끼어들 틈이 있다. 사랑은 가끔 마음에 들쑥날쑥한 감정의 폭풍을 일으키지만, 마음에 틈을 두면 사랑이 돌고 도는 것을 느낀다. 마음 틈새로 사랑을 채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 같은 평정심으로 돌아온다. 틈의 지혜로 사랑은 지속된다.
사랑은 늘이다. 사랑으로 세상을 보면, 언제나 그곳에 있는 것이다. 작은 태극함이 나에게 사랑을 깨닫게 해준 오늘이 고맙다.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지난 칼럼===== > 선승혜의 그림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리 보는 마음가짐 (0) | 2015.12.18 |
---|---|
나라의 미학 (0) | 2015.12.11 |
한국 종이의 ‘참을성과 질김’ (0) | 2015.11.27 |
불꽃처럼, 생명처럼 (0) | 2015.11.20 |
“지난 상처로 미래를 대비하다” (0) | 2015.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