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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벗은 남자가 더 아름답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을 꼽으라면? 아마 아폴론일 것이다. 비너스가 아니라 아폴론이라고? 사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는 남성 누드만이 조각의 전형이었다. 비너스 같은 여성 누드상이 등장하려면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왜 남성 누드만이 대대적으로 성행한 것일까? 남성과 나체에 대한 남다른 생각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남성들이 벌거벗는 일에 대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 벌거벗음은 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편안하고 자유로운 것, 즉 일종의 문명적인 상태를 의미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나체가 되기 위해 체육관으로 갔다. 김나지움은 젊은 아테네인에게 나체가 되는 법을 가르쳤던 것이다. 김나지움(체육관)이라는 말이 ‘완전한 나체’를.. 더보기
카라바조의 의심 충격은 착각 때문이었다.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를 만지는 자가 도마(Thomas)가 아니라 바로 나인 것 같다는 착각 말이다. 마치 3D 영화를 보는 듯한 친밀한 접촉의 느낌이었다. 카라바조는 어떻게 캔버스와 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릴 수 있었을까? ‘의심하는 도마’의 주제는 요한복음 20장 24절에 등장한다. 예수의 예언은 기적처럼 일어났다. 무덤에 묻힌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가 살아생전에 예언한 대로 제자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침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자기 손으로 예수의 상처를 만져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온몸이 축 늘어진 채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8일이 지난 후 제자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다시 나타난 예수는 의심 많은 도.. 더보기
눈삽과 남근 작년 1월 만난 폭설은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했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마련한 롱아일랜드의 세컨드하우스를 보러간다는 설렘은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간단히 무시하게 만들었다. 길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속도로에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는 차를 마을 입구에 내버려두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수도가 터지는 등 집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이튿날. 평상시에는 한없이 아름다웠을 설경이 재앙처럼 느껴지는 건 그날 밤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맨해튼까지 실어다줄 차는 눈 속에 파묻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우리는 눈삽 두 개로 꼬박 두 시간 눈을 퍼냈고, 겨우겨우 차를 몰았지만 길은 아수라장이었다. 9시간의 사투 끝에 맨해튼에 돌아왔을 땐 어깨와 팔에 심한 통증이 .. 더보기
늙은 유혹녀 사람들은 죽음보다 늙음을 더 비참하게 여기는 것 같다. 젊은 시절 여배우가 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영영 은막을 떠나듯이 늙은 모습을 과시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더구나 미술사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의무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7세기 바로크 시대 이전까지는 늙은 여자가 그려지는 예가 거의 없었다. 늙음은 병듦과 마찬가지로 천대받고 무시당해도 어쩔 수 없는 시절이었으며, 노인은 측은한 존재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절이었다. 퀸틴 마시스의 ‘그로테스크한 늙은 여인’(1525~1530)은 생전에 아주 추악한 인물이었던 티롤의 공작부인 마가렛 마울타시의 초상으로 추정된다. 한편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즐겨 그렸던 광인과 기형인 그리고 추녀와 추남 등의 드로잉을 참고해.. 더보기
어떤 인간혐오주의자의 시선 드가의 ‘기다림’은 오디션을 기다리는 무용수와 그녀의 엄마를 포착한 작품이다. 그런데 오디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디션을 마친 후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무용수는 오디션에서 실수로 발목을 다쳤는지 혹은 실수한 것이 겸연쩍었는지 발목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엄마는 오디션을 망친 딸을 원망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디션 전이거나 후거나 이 장면은 난감하고 처연하다. 엄마와 딸은 동상이몽이다. 같은 의자에 앉아있지만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더구나 고꾸라질 듯 바닥을 향한 딸의 얼굴은 검게 물들었고, 엄마의 얼굴은 무엇인가를 포기한 듯 훨씬 냉랭하고 차분해 보인다. 드가는 어린 무용수들을 수없이 그렸다. 무희들을 그리기 위해 오페라극장의 연간 회원권을 구입.. 더보기
섬뜩하지만 왠지 볼매! 혐오와 공포를 야기시키는 대상은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욱 매혹의 위력을 갖는다. 여기 시선을 사로잡는, 흉하지만 어쩐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초상화가 있다. ‘토니나’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얼굴에 온통 털이 난 소녀 안토니에타 곤살부스. 그녀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시작한 1572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페트루스 곤살부스는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섬 출신으로 선천성 다모증으로 얼굴은 물론 손과 팔 등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파리로 건너와 난쟁이와 광대를 좋아했던 앙리 2세의 궁정에서 음악과 미술, 문학, 라틴어를 배우며 자랐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 아름다운 네덜란드 여인과 결혼, 네 명의 자녀를 낳았다.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의 질병을 물려받았.. 더보기
아주 아름다운 예배 마리아와 갓 태어난 아기,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는 요셉, 그리고 천사들의 합창, 목동들의 경배는 미술사에서 흔한 예수 탄생 장면이다. 동방박사가 오기 전 단계의 상황을 그린 장면이랄까.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의 법령에 따라 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떠났다.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진통을 느꼈으나 묵을 곳을 마련하지 못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곳을 묘사하지는 않았으나 아기가 구유에 놓였음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그곳이 마구간임을 암시했다. 플랑드르의 화가 후고 반 데르 구스의 ‘목자들의 경배’는 1475년쯤 메디치은행의 브뤼헤 지점장이었던 이탈리아인 토마소 포르티나리의 의뢰로 그려졌다. 3년 동안 브뤼헤에서 그려져 배로 운반되어 피렌체까지 들어온 이 그림은 14.. 더보기
삼미신과 삼위일체 서구의 미술관에 가면 세 여자가 서로의 어깨를 만지며 서 있는 조각상이 있다. 조각뿐만 아니라,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같은 유명한 회화작품 속에도 이런 포즈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전형적인 여성 누드를 ‘카리테스’(Charites)라고 한다. 카리테스는 그리스어 카리스(Charis)의 복수형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미와 우아함의 여신을 일컫는다. 로마 신화에서는 ‘그라티에’(Gratiae)라고 부르며, 미술사에서는 삼미신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에서 이들의 이름을 에우프로쉬네(Eu-phrosyne·기쁨), 탈리아(Thalia·꽃의 만발), 아글라이아(Aglaia·빛남)라고 밝히고, 제우스와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 에우리노메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더보기
거미로 태어난 엄마 마흔에 작업을 시작해서 일흔에 명성을 얻고, 팔십에는 스튜디오에서 작업만 하겠다고 외부 출입을 삼가며 하루 서너점의 작품을 완성했던 여자. 그리고 ‘새터데이 아티스트 토크’를 만들어 전 세계의 작가들을 자기 작업실로 끌어들였던 예술가. 내 삶의 큰 스승이기도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피스트리 보수공장(숍)을 운영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권위적이고 호색가였던 아버지와 조용하고 인내심이 강한 어머니 아래서 세 남매 중 둘째딸로 성장했다. 특별히 둘째딸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들인 영어 가정교사는 10년 이상 아버지의 정부로 살았다. 어머니는 둘 사이를 알고도 묵인했지만, 똑똑했던 부르주아에게 아버지와 정부를 감시하는 일을 맡겼다. 그때부터 부르주아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는 .. 더보기
게이들의 수호신, 성 세바스찬 남성 누드의 전형인 아폴론을 제치고 르네상스에 새롭게 등장한 누드가 있다. 바로 성 세바스찬! 그는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305)의 근위장교다. 세바스찬은 당시 공인되지 않은 기독교 신자였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기독교도들을 격려한 탓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군중이 보는 앞에서 나무기둥에 묶인 채 화살을 맞는 형벌을 받았던 것이다. 화살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세바스찬은 황제를 찾아가 그리스도교를 전하고자 했고, 결국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는다. 7세기에 흑사병이 로마를 휩쓸었을 때, 로마인들은 마치 궁수가 활을 쏘듯이 신이 이 질병을 내려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화살에 맞아도 죽지 않았던 역사 속 인물인 세바스찬을 기억해냈다. 그들은 세바스찬을 흑사병에서 백성을 .. 더보기
우울의 창조력 11월 말은 가장 멜랑콜리하다. 이 멜랑콜리한 느낌이 적어도 내겐 슬픈 행복이다. 심연의 상상력을 끌어올리는 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멜랑콜리의 감정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창의적인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멜랑콜리는 ‘검은 담즙(melaina chole/black bile)’이라는 뜻으로 우울로 해석된다. 15세기 말,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중세의 체액우주론(humoral cosmology)과 더불어 점성학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 말해 점성술적인 견해와 신화적인 비유들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멜랑콜리의 행성을 토성(saturn:새턴/사투르누스/크로노스)으로 삼고, 전통적으로 흙, 겨울, 건조, 차가움, 북풍, 검은색, 늙음과 관련지었고, 그 특징을 내향.. 더보기
라파엘로의 숨겨놓은 연인 라파엘로는 서른일곱에 미혼으로 죽었다. 당대 인기화가로 교황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교황의 주선으로 만난 질녀를 마다하고 짧은 생애 동안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라 포르나리나’라는 여자다. ‘라 포르나리나’는 ‘제빵사의 딸’이라는 뜻으로, 그녀의 본명은 시에나 출신의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다. 라파엘이 로마에서 일하던 12년 동안 그의 정부로 지낸 여자다. 르네상스 미술사가 G 바사리에 따르면 “라파엘로의 성품은 너무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서 짐승들까지도 그를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여리고 섬세한 외모의 소유자였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미소년 같은 품새는 여성들의 모성본능을 꽤나 자극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가 .. 더보기
사랑의 절정이란 이런 것? 수년 전 루브르미술관에서 목격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날 놀라게 했다. 몇 번째 루브르를 방문했지만 한번도 이 반쯤만 엎드려 누운 여자(?)의 실체를 제대로 목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너스인 줄만 알았던 이 여자는 사실 헤르마프로디토스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남녀추니, 어지자지, 즉 양성체의 인간이다.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다. 제우스가 태어난 프리기아의 이다산에서 님프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란 그는 15세에 세상 구경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남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살마키스라는 호수의 요정이 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렸다. 살마키스는 그를 소문난 미소년인 에로스로 착각하고 열렬히 사랑고백을 한다. 자기를 애인으로 삼아달라고, 그렇게만.. 더보기
이런 결혼식 어때요? 흥겹고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는 결혼식 장면이다. 허름한 곡식창고에서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난한 농민의 혼례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풍속을 흥미롭게 그려낸 피테르 브뤼헬은 종종 농부로 변장을 하고 동네 행사에 몰래 참여하곤 했다. 테이블을 사선으로 배치하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을 크게 그려 오른쪽을 강조하는 구성방법은 당시로선 매우 독특한 것이다. 카메라가 없던 시기에 마치 사진 스냅 샷과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정작 혼례식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신부는 이 잔치와 고립되어 있다. 초록색 휘장 아래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쓴 신부는 먹고 마시는 하객들 사이에서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랑 비슷한 인물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결혼식 저녁까지.. 더보기
뒷모습이 아름다운 남자 회화에서 뒷모습은 꽤 매력적인 소재다.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 창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뒷모습은 아련하게 매혹적인 것이다. 화가들은 왜 뒷모습을 그렸을까? 뒷모습만을 단독적으로 그리는 것이 등장하려면 19세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뒷모습이 그려졌던 거다. 낭만주의의 가장 기본적 정조는 동경이다. 동경은 무한에 대한 사랑, 즉 먼 곳을 사랑하는 것이다. 먼 곳에 대한 동경은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으로 나뉜다. 19세기적 관점으로 볼 때, 시간적인 먼 곳은 고대와 중세시대이며, 공간적인 먼 곳은 근동인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혹은 극동인 인도와 중국, 일본과 같은 곳이다. 이런 낯선 것, 이국적인 것, 그로테스크한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낭만주의의 모토인 것이.. 더보기
눈먼 소녀의 센스 존 에버렛 밀레이는 영국이 자랑하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영국의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진보적 예술가 단체로 르네상스 전성기 화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미술운동) 화가다. 이 그림은 1854년 화가가 영국의 서섹스의 윈첼시 지방 근처에 머무는 동안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다. 근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중시 사상을 가졌던 라파엘 전파의 거장답게 이 그림은 산업혁명으로 동공화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화려한 색채와 치밀한 세부 묘사와 더불어 시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고아로 보이는 두 소녀가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남루한 옷차림과 무릎 위의 손풍금으로 미루어 거리의 악사로 생계를 .. 더보기
몬드리안의 ‘데 스틸-스타일’ 몬드리안은 자연을 혐오했다. 칸딘스키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창밖의 나무가 보기 싫다고 창을 등지고 앉을 정도였다. 그는 자연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는데, 그것이 너무 변덕스럽고 무질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몬드리안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초토화되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었으니, 자연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상향에 관한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네덜란드의 한 소도시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은 종교적 환상에 빠져 있던 아버지와 자주 아픈 어머니 사이에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 서른 살쯤 파리에 정착하게 된 그는 신지학(Theosophy·보통의 신앙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한 본질에 관한 지식을 신비한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로 알아가고자 하는 종교철학)이라는 학문에 .. 더보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키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진 그림 중 하나는 클림트의 ‘키스’다.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가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이 ‘키스’가 지닌 의미를 은밀히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명성이란 항상 오해의 총합에 지나지 않으니까. ‘키스’는 클림트의 나이 45세, 그의 완숙기에 만들어진 주옥같은 작품이다. 형식을 보면 황금색 색채와 아르누보 문양으로 되어 있다. 빈분리파(Wien Secession·‘분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 활동을 목적으로 결성됐음을 의미)의 우두머리인 클림트가 인상주의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려준다. 인상주의로부터는 빛의 사용법을, 아르누보로부터는 자연의.. 더보기
잭슨 폴록의 캔버스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은 경매에서 수백억원에서 천억원대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 최고가로 낙찰되곤 한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 저 정도 그림쯤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로 생각했다. 그런 폴록에 대한 폄하의 시선이 바뀐 건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서 회고전을 본 이후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림이 진정 영혼 혹은 정신이 물질화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자 그림을 보고 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안겨준 사건이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유럽 중심의 미술이 미국으로 옮겨지던 1940~1950년대에 태어난 가장 미국다운 미술 양식이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추상’이란 회화의 형식을, ‘표현’이란 그 내용을 의미한다.. 더보기
세잔의 사과, 먹고 싶지 않은 세잔의 사과는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이빨이 작살날 것 같다. 그만큼 딱딱하고 견고해 보인다. 보통 세잔은 사과 하나로 미술계를 제패한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사과와의 인연은 부르봉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훗날 프랑스 유명 문학가로 성장하게 될 에밀 졸라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파리에서 온 졸라는 특유한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그때마다 세잔은 졸라를 두둔했다. 그런 어느 날, 졸라가 세잔의 집으로 사과 한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사과로 진짜 우정이 시작되었던 것! 그러나 세잔이 사과를 그린 것은 단순히 우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잔의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정물화 한 점을 그리기 위해 100번 이상 작업했고, 인물화를 그릴 때도 모델을 15..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