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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도쿄 앵무새

감각적인 색감과 구도로 짧은 시간 빠르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젊은 사진가 미즈타니 요시노리. 그가 처음 도쿄에 살기 시작했을 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대도시의 문화나 사람이 아니라 앵무새였다. 빨강 주둥이에 연두색 몸을 한 앵무새 떼가 집 앞 나무와 전깃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앵무새가 머무는 하늘만 본다면 그곳은 도쿄가 아니라 히치콕 영화 속의 장면이거나 열대 지방이어야만 했다. 이 새들이 풍기는 야릇한 분위기에 홀려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니기를 1년, 은행잎의 빛깔이 녹색에서 노랑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포착한 것은 물론 그는 앵무새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비밀도 알아냈다.

 

Yoshinori Mizutani, Tokyo Parrots 연작 중

 

저녁이면 다 같이 둥지로 날아와 밤을 보낸 뒤, 아침이면 무리를 나눠 움직이는 이 앵무새들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터는 도쿄공업대학. 애초에는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지에 서식하다 1960~1970년대 애완조로 팔려 바다를 건너왔다. 그러나 한 차례의 유행이 지나자 여러 이유로 서서히 집 밖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이 외래의 앵무새 떼가 도심에 번식하면서 토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또한 당연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늦은 오후부터 해가 지는 시간대에 걸쳐 강한 조명을 곁들여 찍은 미즈타니의 사진들은 이런 사연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복잡하고 답답한 전깃줄을 제법 근사한 횃대로 삼거나 은행나무 가지에 적응해서 깃들어 사는 이 새들의 낯설면서도 강렬한 모습은 이방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금 야생성을 터득해 가는 이 새들의 집요한 운명을 각인시킨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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