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TV가 나를 본다


올리비에 컬만, ‘Watching TV’ 연작 중



오늘도 텔레비전이 눈을 유혹한다. 솔직히 딱히 뭘 보려고 한 건 아니지만 텔레비전에서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튀어나와 내 눈을 꼬셔주면 좋겠다.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널브러질 수 있을 텐데. 그 생각 없는 순간을 비집고 고민거리도 잠시 들어왔다 나가며 정리가 되고, 무작정 바라보던 화면이 점점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워져서 몰입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 그사이 앉아 있던 내 몸은 점점 무너져 내려 마침내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과 잠 사이를 오락가락할지도 모른다.


만약 텔레비전에 눈이 달려 그런 나를 바라본다면, 텔레비전은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따분하다고 생각할까. 대략 지구 인구의 60% 정도가 텔레비전을 본다 하니 전 세계 40억명은 그런 내 모습과 얼마만큼 닮아 있을까.


프랑스 사진가 올리비에 컬만의 ‘TV 시청’ 작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닐 때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과 그들이 보고 있는 수상기를 촬영했다. 포르노,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채널은 제각각이었지만 텔레비전 앞의 시청자들 모습은 국적을 막론하고 한결같았다. 텔레비전이 쏟아내는 비현실의 세상으로 빠져드는 순간 인류는 마치 텔레비전 세대가 진화해온 방식인 듯 비슷한 포즈를 자기 복제해낸다.


컬만은 텔레비전 밖 현실 세계의 나른하고 우스꽝스러운 우리 모습을 통해 텔레비전이 유혹하는 판타지의 가벼움까지 조롱한다. 최근에는 텔레비전 시청이 줄어드는 반면, 그와 동일한 수가 페이스북에 접속한다 하니 페이스북 세대는 어떤 포즈로 진화 혹은 퇴행할지 두고볼 일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 캐나다  (0) 2016.10.04
기호 1번  (0) 2016.09.23
도쿄 앵무새  (0) 2016.09.02
디포짓  (0) 2016.08.19
50+1  (0) 201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