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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릴케와 로댕의 섬세한 인연


62세의 로댕과 27세의 릴케.(출처 :경향DB)




“니콜라스 3세의 발이 울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 로댕은 벌써 알았던 것이다. 우는 발이 있다는 것을, 완전한 한 인간을 넘어서 울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모든 땀구멍에서 솟아나는 엄청난 눈물이 있다는 것을.”


나를 울컥하게 만든 릴케가 쓴 로댕론의 한 대목이다. 젊은 시절 릴케는 로댕의 비서였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전시 중이던 로댕의 제안으로 1905년 9월15일부터 1906년 5월12일까지 로댕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비록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고 사소한 오해로 결별했지만, 릴케는 로댕의 위대한 작품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강연과 글을 쓰는 등 로댕을 전파하는 사도 역할을 했다. 릴케는 로댕을 만난 것을 일생의 큰 행운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위대한 조각가를 만났던 일이 어떤 문학작품보다 자신의 시에 훨씬 더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고 회상했다.


릴케가 로댕을 처음 만났을 당시 62세의 로댕은 명성의 절정에 있었다. 첫 만남 이후 거의 4년 동안 로댕은 릴케의 감정과 사고를 지배했다. 특히 릴케는 로댕이 영감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작업 중’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릴케는 영감에 의해서 무언가가 떠올라야 글을 쓸 수 있었지만 로댕은 작업 자체를 영감으로 삼았던 것이다. 릴케는 로댕을 통해 “값싼 감정에서 벗어나 화가나 조각가처럼 자연 앞에서 일하며 대상을 엄격하게 파악하고 묘사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로댕을 만나는 순간 릴케의 예술과 일생 전체가 바뀌어 버렸던 것!


내 비평의 모토가 ‘릴케의 로댕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 글을 만난 게 감히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릴케가 로댕 전도사였던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의 전도사가 되었다. 릴케의 로댕론을 아껴가며 탐독하다 보면 두 거장의 숨결 모두에 감응하게 된다. 로댕 예술과 릴케 문학의 아름다운 향연이 한자리에 있다니! 가장 아름다운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것처럼, 이런 만남이 내게도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