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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잭슨 폴록의 캔버스


Number 8(부분), 캔버스에 에나멜과 알루미늄 페인트, 1949년(출처 :경향DB)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은 경매에서 수백억원에서 천억원대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 최고가로 낙찰되곤 한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 저 정도 그림쯤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로 생각했다. 그런 폴록에 대한 폄하의 시선이 바뀐 건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서 회고전을 본 이후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림이 진정 영혼 혹은 정신이 물질화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자 그림을 보고 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안겨준 사건이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유럽 중심의 미술이 미국으로 옮겨지던 1940~1950년대에 태어난 가장 미국다운 미술 양식이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추상’이란 회화의 형식을, ‘표현’이란 그 내용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은 경제공황과 정신적 파국상태를 동시에 맞이한다. 이런 총체적 비극의 시대에 작가들은 편안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당시로선 자연이나 사물의 외면을 묘사하는 일이 얼마나 표피적인 일인가를 깨달았던 거다. 그때 가능한 것이 그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면을 쿨하고 엄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기보다는, 파토스와 같은 감정적인 측면을 폭발시키는 것에 가깝게 말이다.

폴록은 캔버스를 벽에 세워 그리는 방법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캔버스를 눕혀놓고 그렸다. 그리고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뿌리는 기법, 즉 드리핑(dripping)을 위주로 작업했다. 이런 그의 그림은 마치 성교를 하듯이 캔버스 위에서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액션 페인팅’이라고도 부른다. 무의식의 자동기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런 방법을 통해 그는 시대적 상처와 개인의 트라우마를 겹겹이 담아냈다. 관자들은 느낀다. 그 꼬이고 얽힌 선들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힘겨운 일인가를. 폴록이라는 화가를 알고 싶으면, 에드 헤리스가 제작·주연·감독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를 보라. 폴록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처럼 그림 그리기를 배웠던 에드 헤리스의 연기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