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불편한 유령




대개 사진에서는 초점이 맞은 대상이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은 보통은 사진 한가운데에 놓인다. 그렇게 주목받고 있는 대상에 주목하도록 우리의 눈은 길들여져 왔다. 그 ‘쨍한’ 사진에서 우리는 강박처럼 그가 왜 주인공인지를 읽어내려고 애쓴다. 대상의 표정, 피부색, 복장, 나이 등등 우리가 사진 속에서 찾아 헤매는 기호들이 정말 그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한번쯤 사진 속의 내 모습과 전혀 동화되지 못하는 경험을 해봤다면, 그것은 단지 사진이 실물보다 못 나와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 모습이 나를 전혀 설명해 주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브라질 사진가 칼레는 이 고민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작업 속에서 인물들은 모두 초점이 빗나가 있다. 유령처럼 흐릿한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생략한다. 대신 인물이 등지고 서 있는 배경 속에 훨씬 많은 시각 정보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단정 지을 어떤 단서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리우데자네이루, 뉴욕 혹은 파리처럼 대도시를 떠돌며 작가가 얻어낸 이미지들은 그곳이 어디든 그저 대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흐릿한 인물이 왜 그곳에 있는지, 그가 이방인인지 거주자인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작품 제목 ‘시커스’는 우리말로 ‘뭔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뜻할 텐데, 작가는 결국 대도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갈망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초점은 맞지 않지만, 눈길을 거둬들일 수는 없는 불편하고 모호한 유령, 실제 대도시의 주인공들은 이런 모습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지난 칼럼===== > 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퍼맨의 꿈  (0) 2014.04.24
죄인  (0) 2014.04.17
판잣집에서의 하룻밤  (0) 2014.04.03
뿌리 혹은 먼지  (0) 2014.03.27
그래비티  (0)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