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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판잣집에서의 하룻밤


Roger Eberhard, Shanty Town Deluxe11, 2014



판잣집이 한 채 있다. 오래된 기념사진처럼 빛도 바래 보인다. 새하얀 구름과 적당히 짙은 나무 그림자는 가난을 축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런 의심없이 본다면 영락없이 과거의, 추억할 법한 누군가의 앨범 사진이다. 그러나 저 멀리 비행기가 자꾸만 눈에 걸린다. 아무리 날지 못한다 하더라도 비행기가 가난한 동네의 장식품처럼 서 있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는 쓰레기 한 점 없고, 양철벽에는 옹색한 방에서 쫓겨나온 살림살이 하나도 걸려있지를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해 문을 연 이곳은 호텔이다. 호텔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수백만명이 판자촌에 살고 있는 진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체험해 보라는 유혹이 가득하다. 대신 뜨거운 물과 인터넷, 온돌이 제공되는 특별한 공간에서라는 단서가 붙는다. 가난한 동네의 상징인 공중 화장실의 긴 줄을 짐작하기 위해 야외 화장실도 덤으로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범죄로부터는 안전하다는 사실은 빼놓지 않는다. 투숙객들은 건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아프리카의 사파리 체험에라도 나선 듯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마도 진실을 알려면 이 누추한 집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하리라. 그러나 스위스 태생의 사진가 로저 에버하르트는 이방인처럼 외관만을 찍은 채 더 이상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투숙객들처럼 혹은 정말 이런 집에 사는 사람처럼 기념사진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농담 같은 현실 앞에서 더욱 아리송해지는 사진. 그것은 돈으로 가난마저도 훔치는 세상을 향해 작가가 선택한 가장 냉소적인 작업 방식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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