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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삶에 번번이 얻어맞은 얼굴


코깨진 사내, 1864년, 대리석, 파리 로댕박물관 소장



오랫동안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대가의 유명 작품보다 훨씬 더 마음을 끄는 작품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공부가 주는 축복이다. 통상 로댕의 경우 ‘지옥의 문’ ‘영원한 우상’ ‘키스’ 등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그런데 이들보다 점점 더 마음을 사로잡는 뭉클한 작품이 있다. 바로 ‘코깨진 사내’다.

젊은 시절 로댕이 생활고로 버젓한 모델을 구할 수 없을 때, 이웃집에 사는 ‘비비’라는 별명을 가진 가난한 노인이 모델을 서주었다. 그러나 난방 시설이 없는 아틀리에는 너무 추워서 노인의 머리를 빚은 점토가 얼어 갈라졌으며, 두개골은 깨졌다. 간신히 얼굴만(뒤통수가 없다)을 겨우 지탱할 수 있었고, 코가 깨진 이런 얼굴의 형태가 되고 말았다.

1864년 로댕은 이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낙선하고 말았다. 지나칠 정도의 생생한 사실적인 묘사가 심사위원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던 것! 그는 이 얼굴을 계속해서 연작으로 만들었는데, 결국 대리석으로 조각해 살롱전에 입선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1880년 ‘지옥의 문’ 제작 때 사용, ‘생각하는 사람’ 바로 옆에 배치했다.

이 얼굴은 로댕의 작품 활동 초기 생계를 이어가기가 매우 어려운 때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로댕의 조수이자 로댕 작품의 탁월한 비평가였던 릴케의 주옥같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코끝이 찡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이 로댕으로 하여금 이 두상을, 일그러진 코로 인해서 고통받는 얼굴 표정이 더 고통스럽게 보이는 이 늙어가는 못생긴 사내의 두상을 만들도록 부추겼는지 우리는 알 것 같다. 그것은 이 얼굴 표정 속에 모여 있는 삶의 충만이었다.

이 얼굴에는 대칭을 이루는 면이 하나도 없고, 어느 것도 반복되는 일이 없으며, 공허하게 남은 자리, 침묵하거나 무관심한 곳이 한군데도 없다는 사실이 바로 그 이유였다. 이 얼굴은 삶에 의해 어루만져진 적이 없고 오히려 삶에 번번이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아마 로댕이 살아있다면, 지금 살아남아 고통받는 이들에게 이 작품을 바칠 것만 같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