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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수잔 발라동의 올랭피아


‘푸른 방’, 캔버스에 오일, 1923년


근대 여성화가 중에는 모델 출신이 여럿 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비천한 신분 출신의 모델들은 천재화가들 옆에서 진정한 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 모델 빅토린 뫼렝,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 등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던 모델은 수잔 발라동이었다.

발라동은 당대 밑바닥 직업이었던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생업에 뛰어들어 청소부, 직공, 양재사 등 갖가지 궂은일을 경험했다. 비교적(?) 안정된 서커스단의 무희가 되었지만 추락으로 부상을 입어 서커스단에서 쫓겨난다. 그때 16세의 발라동은 늙은 퓌비 드 사반의 모델이 되었고, 이후 르누아르의 모델이 된다. 마침내 로트렉의 모델이 되었을 때, 그녀의 재능을 간파한 로트렉은 소묘의 대가인 드가에게 소개한다. 발라동은 드가의 모델이자 문하생으로 체계적인 미술 교육을 받게 됐던 것이다.

발라동의 연애경력 또한 파란만장하다. 사랑했던 로트렉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의 거절로 결별했고, 변태적 성향의 음악가 에릭 사티를 단박에 차버렸다.

세월이 흘러 18세에 사생아로 낳은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몽마르트르의 풍경을 그린 화가)의 친구인 21세 연하의 앙드레 우터와 사귀고 결혼했다. 한 지붕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는 당대 최대의 스캔들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의 대가 발라동의 배포를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바로 ‘푸른방’(1923년)이다. 이 그림은 미술사의 전통적인 주제인 비너스와 올랭피아, 오달리스크의 새로운 버전인 셈이다. 그림 속 주인공 여자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육감적이지도, 멋진 옷을 입지도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를 전혀 의식하지도 않으며, 담배를 꼬나문 것이 여장부다운 품새다. 그리고 왼편에 놓여있는 책은 그녀가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메타포다. 그녀는 담배와 책이라는 남성들의 전유물을 기꺼이 사용할 줄 알았던 양성체였던 것 같다. 바로 발라동 자신에 관한 그림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