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아스파라거스에 얽힌 화가와 컬렉터

마네, 아스파라거스 다발, 캔버스에 오일, 46×55㎝, 1880년

그림 그 자체보다 그림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를 반추하는 일은 그림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오늘날처럼 예술가에 대한 에피소드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더욱더 그런 스토리가 그리워진다.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로 유명한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아스파라거스’에 얽힌 에피소드가 꼭 그렇다.

어느날 한 컬렉터가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 그림을 사갔다. 그런데 그 컬렉터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200프랑을 더 얹어주었다. 모두 깎으려고만 하는 세상에 그림이 좋다고 기분 좋게 웃돈을 더 얹어주다니, 참으로 드문 일이 일이 아닌가! 이럴 때 수집가는 예술가보다 한 수 위인 예술가가 된다.

그러자 마네는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만 있는 그림을 따로 그려 보내면서, “선생님이 사 가신 그림에서 한 줄기가 빠졌습니다”라고 적은 쪽지를 함께 보냈다. 이로써 우리는 컬렉터보다 더 한 수 위인 예술가의 탄생을 보게 된다. 마네는 종종 관심과 애정을 담아 지인들에게 이런 식으로 선물을 한 적이 많다. 그 속에는 항상 유머러스한 농담이나 애정과 배려심의 증표들이 담겨 있었다.

이런 유머와 위트에 근간한 예술적 천재성과 품위있는 사교성 덕분에 마네 주변에는 추종자가 들끓었다.

이 작품은 구도와 소재 면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와 유사하지만, 기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마네의 아스파라거스는 그만의 성급하고 즉흥적이면서 자유롭고 순수한 붓 터치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그림은 어쩐지 좀 허술하고 미완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죽은 자연, 움직이지 않는 자연이라는 정물화 특유의 정제된 느낌보다는 왠지 생기발랄한 아우라가 시선을 끈다. “이것은 다른 작품 속의 모티프들처럼 정지된 생물이 아니다. 혹 비록 그것이 정지해 있다고 할지라도, 당시에는 생기가 넘쳤을 것”이라는 조르주 바타유의 언급만큼 이 작품의 가치를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지난 칼럼===== > 유경희의 아트살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경이 소경을 이끌면?  (0) 2014.10.31
유혹의 메타포, 세이렌  (0) 2014.10.24
너무 닮아서 낯선  (0) 2014.10.10
메두사, 양성성의 신화  (0) 2014.10.03
철의 바다  (0) 201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