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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그래비티


안준, Gravity #03, 2013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떠다니는 것처럼 텅 빈 복도에 사과가 부유하고 있다. 아니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낙하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기다란 복도는 사과가 천장에서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도 앞에서 복도 끝을 향해 추락하고 있는 듯한 착시효과마저 준다. 아담을 유혹하고, 신데렐라를 잠들게 했으며, 뉴턴에게 추락하는 것은 무게가 있다는 것을 일러준 빨간 사과가 그렇게 허공에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강하고 있는 사과는 분명 낯설다.

사진가 안준의 ‘그래비티’ 연작은 우리 눈이 포착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시각적 실험이다. 실험이므로 조작된 사진이 아니다. 작가는 만족할 만한 이미지를 얻을 때까지 카메라 앞에서 사과 던지기를 쉼 없이 반복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가 떨어지는 과정을 카메라로 증명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작가는 공간에 던져진 사물의 우연성과 운명에 대해 묻는다. 주변에 분명 존재하는,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물의 질서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그 질서는 중력이 우리를 잡아당긴다는 불변의 법칙만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던져져 바닥에 나뒹굴기 전까지 어떤 방향으로 날아갈지, 바닥에 부딪혀 어떤 모습으로 부서질지는 운명을 다하기 전까지는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바닥에서 끝을 맞이하리라는 절대법칙을 거스르고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그러므로 안준이 보여주려는 사물의 질서는 그 사물의 우연성과 숙명까지를 담보로 한다. 한 점 사과처럼 붉게 세상에 던져진 모든 생명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사건을 갖는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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