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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미로

 

김태동, 데이 브레이크 033, 2011


도시는 도무지 투명하지가 않다. 한때 서울은 일단 발만 들여놓으면 어제보다는 잘살게 될 것 같은 꿈의 도시였는데, 이제 그 꿈을 먹고 공룡으로 자라버린 것일까. 분주하고 화려한 도시의 거리를 쏘다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오히려 한없이 쓸쓸해진다. 도시 속의 나는 늘 작고, 도시라는 공룡은 그런 나를 골탕이라도 먹일 듯이 여기저기로 몰고 다닌다. 도무지 숨을 고를 수가 없다.

 

김태동의 ‘데이 브레이크’는 천의 얼굴을 지닌 대도시의 밤과 마주하는 작업이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밤은 도시의 특권이자 화려함의 상징이지만, 작가에게 밤은 화장을 지운 도시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차들이 뜸해지고 전화기의 울림이 잦아들고, 빛들이 조도를 낮추는 밤이야말로 도시가 본색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엄밀하게 말해 도시에는 낮과 밤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작가는 마치 도시의 밤을 뒷조사하는 탐정처럼 한강이나 지하철의 종점, 공원 언저리를 기웃거리다가 그 깊은 시간 그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섭외한다. 그나마 도시는 아직 살 만한 곳일까 아니면 도시가 우리의 호기심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인적 드문 깊은 밤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남자를 위해 사람들은 의외로 선선히 발길을 멈추어 주었다.

 

한강의 낚시꾼이며 오토바이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막차에서 내려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서던 비옷 입은 소녀 등 작품 속 배경과 주인공의 사연은 넓은 도시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작가는 도시와 밤을 이야기하면서 지쳤다거나 외롭다거나 아니면 삶의 따스함 같은 뻔한 느낌을 들먹거리지 않는다. 장소들은 본 듯하면서도 낯설고, 사람들의 표정은 그 낯선 도시에 이제 막 도착한 듯 불안하면서도 무표정하다. 불안하고, 신비롭고, 위태로운 깊은 밤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헌사처럼 보여서일까. 작품은 별 말을 안 하는데 보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