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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강재구, 이등병 #02, 2002

 

 

러닝셔츠 차림의 앳된 병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딱 봐도 이등병이다. 짧은 가시처럼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에서 시작해 경련이 일 만큼 가지런한 눈과 입을 거쳐 불끈 쥔 주먹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사진가가 대놓고 시킨 것도 아닐 텐데, 카메라 앞에서 그는 완전한 ‘얼음’ 자세다. 온 생애를 통틀어 가장 긴장하고 있을 그 모습은 국방부의 홍보 사진 속 늠름함과는 다른 안쓰러움마저 불러일으킨다. 군대에 들어가는 순간 딴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집단이란 참 무서운 곳이다.

 

사진가 강재구는 사진병으로 복무했다. 처음에는 이등병들의 사병증명용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몸짓, 표정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대를 하고 나자 자연스럽게 훈련장에서 만난 예비역들에게 시선이 멈췄다. 새파랗게 질린 이등병 시절이 언제였냐는 듯, 긴 머리며 목에 걸친 액세서리며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손까지, 예비역들에게 군복은 오히려 패션이었다.

 

내친김에 입영을 앞두고 있는 젊은이들을 기록하고, 그들의 휴가 나온 모습과 제대 후 모습까지를 추적했다. 10여년의 작업 기간 동안 휴대폰 주소록에는 스토커처럼 곧 군대에 가거나, 곧 제대할 남자들의 이름이 빼곡해졌다. 촬영을 위해서는 휴가 날짜도 미리 알아야만 했기에 그들의 여자 친구도 섭외 일순위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의 연작 작업의 이름은 <12mm>. 입영을 앞둔 젊은이들의 머리카락 길이에서 착안한 이 제목은 군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획일성과 폭력성, 그리고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어떻게 남성성을 얻게 되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사진 속에서 작가가 개입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사진 속 인물들이 던지는 이야기는 훨씬 풍성하다. 이처럼 작가의 중립적 시선은 대상에 대해서 훨씬 골똘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