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토요일) 저녁, 뉴욕에서 출장 온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 마침 세일기간이라 백화점 주변 도로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다. 참고로 친구는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라는 곳에서 다양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www.koreasociety.org) 보통은 전시 준비 차 1년에 한번 정도 혼자 한국을 방문하곤 하는데, 이번엔 다른 직원과 함께였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는 젊은 직원은 이번이 첫 한국방문이라고. 건축 학도답게 한옥을 보고싶어 해서 아쉬운 대로 한옥으로 된 식당에 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후 행선지는 인사동. 이젠 고궁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한옥 구경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더구나 인사동 역시 '전통문화의 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온갖 종류의 짝퉁이 넘쳐나는 지라 보여줄 것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면, 서울은 추억이 머물기에 적당한 도시가 아닌 듯하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모두 부지부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추억들도 속절없이 먼지 속으로 사라진다. 어찌보면 그게 인생의 순리겠지만, 자연스럽게 나이듦을 참지 못하고 쉽게 고치고 때려 부수고 밀어내 버리는 데에는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민다. 갑자기 소중한 것을 강탈당한 느낌이랄까. 청진동과 피맛골이 사라진 낯선 풍경 앞에서 상실감과 무력감에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사라져버리면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될까. 아, 어쩌다 이렇게 매정한 도시가 됐는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겨우 신세계백화점 언저리까지 왔다. 신호에 걸려 한참을 서 있다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묘하게 아려온다. 오늘 아침 창졸간에 접한 박완서 선생님의 부음 탓이다. 어떤 특정한 공간이 불러 일으키는 기억과 그에 따른 감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이곳 - 신세계 본점 앞은 언제나 꿈결같이 아득하고 애련한 우수가 감도는 곳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분수대를 중심으로 서양식 근대 건축물인 신세계와 한국은행이 마주하고, 명동과 을지로 입구, 소공동, 남대문시장으로 가는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있다. 그리고 그 길, 후미진 골목마다 옛 영화를 간직한 오래된 노포(老鋪)들이 포진해 있다.
“지금 바로 옆에 보이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은 1930년에 세워진 건물이에요. 서울에서는 아주 오래된 건물에 속하죠. 원래는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의 경성점이자. 최초의 백화점으로 세워진 건물이에요. 광복 후에는 미군의 PX건물로 사용되기도 했구요. 사실 오늘 아침에 박완서라는 유명한 소설가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바로 그분이 당시에 이곳에서 일하셨답니다.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 주문을 받는 일종의 ‘삐끼’ 역할이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당시 그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들 중에 한국의 ‘국민 화가’라고 불리는 박수근 씨도 있었다는 거예요. 두 사람 모두 전쟁통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PX에서 일하게 됐던 거죠. 이 운명적인 만남을 쓴 소설이 박완서 선생님의 데뷔작 『나목』이에요. 박수근 화백이 즐겨 그리던 소재도 바로 ‘나목’이었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분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 몰라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랍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직원이 아주 흥미있어 한다. 정말 전쟁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두 사람이 있었을까.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미군의 PX라는 낯선 곳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은 대학 신입생으로 빛나는 청춘을 보냈을 터이고, 또 한 사람은 화단의 중견화가로서 화업에 매진했을 테니까 말이다.
미츠코시 백화점 엽서. 왼쪽이 경성우체국(현 중앙우체국), 오른쪽이 미츠코시백화점(현 신세계 본점)이다.
PX 초상화부 작업 장면. 왼쪽이 도예가 황종례, 한 사람 건너 박수근이 보인다. 1952-54년경.
위 사진 · 구글에서 업어온 사진. 6.25직후 미군 PX건물로 사용되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붉은색 테두리의 PX간판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나목』을 읽은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하지만 소설 속의 몇 장면 - 특히 퇴근길에 두 사람이 을지로입구 전차역까지 함께 걷거나 명동의 노점상에서 움직이는 인형을 구경하는 장면 등은 마치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인양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래서 가끔 을지로입구나 명동을 걸을 때면 『나목』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곤 한다. 더구나 롯데백화점 맞은편 명동 입구 쪽에는 언제나 움직이는 인형을 파는 노점상이 있어서, 두 사람이 인형을 구경하던 곳이 바로 이 부근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곤 한다.
어렸을 땐 나도 이런게 참 재밌고 신기했는데 말이쥐...-.-;;
오래된 도시는 사람들의 꿈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땀과 눈물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속에서 지친 도시민들은 따뜻하게 위로받기도 하고 다시금 힘을 내기도 한다. 진짜 디자인이 잘된 도시는 이렇게 무형의 깊이를 간직한, 정서적으로 안정된 도시가 아닐까. 내게 신세계 앞은 바로 그런 곳이다. 방사선으로 난 길마다 수많은 추억들이 녹아있고, 그 길을 걸으며 나는 꿈을 꾸고 힘을 얻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당시를 추억한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어느 도록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책장을 뒤져보았다. 역시, 1999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우리의 화가 박수근>의 도록 수록글이다. 옮겨 적기엔 다소 글이 길지만, 그리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인용해 본다.
박수근의 그림을 많이 보여주고 싶지만, 작품 이미지 저작권 탓에 가지고 있는 도록 몇 권을 대신 사진 찍어 올린다.
위· 아래 두 권은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 <박수근과 그 시대 화가들전>(2004, 왼쪽)과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우리의 화가 박수근전>(1999, 오른쪽) 도록. 위의 것은 1965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린 <‘65 박수근 유작전>의 출품작 79점 중 2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2009년 갤러리현대에서 만든 전시 도록이다.
아래·1965년 중앙공보관화랑에서 열린 박수근 화백 유작전 팸플릿을 재현한 것. 6점의 흑백 도판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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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인용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모두 타이핑 하게 됐다.
거칠고 황량한 시절, 그 아픔과 상처를 온몸으로 견디고 이겨내 예술로 꽃피워 내신 두 분이 문득 너무 그립고 감사하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그림으로, 문학으로 남겨 기억하게 해주셔서 너무나 고맙다. 작품 속에서는 모두 헐벗은 나목(裸木)을 그렸지만, 분명 그것은 '희망'을 그린 것이었을 게다. 쓰라린 상실과 아픔을 넘어 다시 새순이 돋고 푸른 잎이 피는 봄을 그리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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