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로 인한 예술인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성북구 한 고시원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되었다. 영화배우 판영진씨는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생활고와 지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자살을 한 예술인의 비극적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2011년), 인디뮤지션 이진원(2010년), 배우 정아율(2012년)과 김수진(2013년), 우봉식(2014년), 가수 김지훈(2013년) 등. 최고은씨가 전기와 가스가 끊긴 월세 방에서 며칠을 굶다 세상을 떠난 지 4년이다. 그 후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예술인의 연이은 죽음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문화예술인 실태조사(2012년)에 따르면, 예술인의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은 100만원 이하가 67%, 50만원 이하가 51%나 된다. 장르별 편차도 심한 편으로, 문학인의 92%가 수입 100만원 이하다. 조사 시점의 1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가 57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예술인의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셈이다.
이렇듯 예술인의 3분의 2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다. 건강보험 가입률은 98% 정도지만, 국민연금은 67%, 산재보험 28%, 고용보험 31%이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는 정규 고용직 비율이 1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술인 대다수가 자영 예술인이거나 프리랜서 또는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이들의 고용방식을 고려한 노동 및 사회보장 제도는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산재보험을 보장해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보험가입이 선택사항이고 예술활동상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가 한정되어 있어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다. 오히려 예술인에게는 계약과 계약 간 단기 실업에 적합한 실업급여가 더 필요하나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 게시되었던 예술인복지재단의 광고 (출처 : 경향DB)
이처럼 문화예술계가 제대로 된 소득과 사회보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것은 열정 노동 때문이다. 2014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 전체의 문화향유율은 71.4%이지만, 영화를 제외한 문학(6.2%), 미술(10.6%), 음악(4.9%), 연극(12.6%) 등 순수예술은 10% 전후에 불과하다. 순수예술 분야는 근본적으로 수요 부족에 원인이 있다. 좁은 시장에서 많은 예술인들이 활동하다보니 출혈경쟁이 이루어지고 낮은 단가에도 활동할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 분야는 시장은 크지만 스타 시스템에 기반한 분배 구조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화되고 무명의 신인과 스텝들은 가난을 면하기 어렵다. 여기에 구두 계약 관행과 경력 및 활동경력에 따르는 표준인건비 기준 부재 등 제도적 한계가 결합되면서 문화예술 생태계의 구조적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나마 공공 지원은 예술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되고 있다. 예술인의 공공지원 수혜율은 약 28%이다. 하지만 예술가가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은 줄고, 시민을 위해 예술가를 동원하는 사업은 늘어나는 추세이다. 공익사업의 경우 재능기부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재능밖에 없는 예술가에게 재능마저 기부’하라는 형국이다. 공공 일자리 사업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거의 없다. 그나마 예술인복지재단이 긴급생활자금이나 긴급의료비 지원 등을 늘리면서 지원하고 있지만, 지원수요에 비해 부족한 재원과 선정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창작지원금 110억원이 배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예술인의 죽음을 직면하게 되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예술인 복지 문제는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노동으로 보고 자영예술가나 프리랜서, 비정규직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문화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정책-표준계약서의 의무 적용과 표준사례비(artist fee) 기준 확산 등-과 함께 실업급여의 보장을 통해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를 줄이고자 하는 제도적, 정책적 노력이 함께 결합되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양현미 | 상명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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