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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아는 얼굴

로버트 코닐리어스, 셀프 포트레이트, 미국회도서관 소장

 

한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1839년에 촬영된 낡은 사진은 비록 유령처럼 희미하지만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오뚝한 콧날, 진지한 눈빛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코닐리어스, 미국 사진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럼, 이 사진의 촬영자는 누굴까? 바로 코닐리어스 자신이다. 프랑스에서 사진의 발명을 공표한 1839년과 같은 해에 벌써 셀카 사진이 등장한 셈이다. 코닐리어스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버지의 램프 가게 뒤편에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10분가량 꼼짝 않고 있다가 자신의 얼굴을 얻었다. 최초의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로 촬영된 이 사진은 세계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간주된다.

 

170여년 전 코닐리어스의 첫 장 이후, 오늘날 셀카 사진은 하루에 3억5000장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이미지라 그런지 별의별 사건도 발생한다. 위험천만한 곳에서 셀카를 찍다가 사망하거나, 한 10대 소년은 셀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셀카 중독 등의 부작용이 언급되는 요즘이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의 역사를 움직인 중요한 욕망이다. 사진이론가 존 택은 “사진이란 그저 자신들이 아는 이들의 얼굴 사진을 획득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는 얼굴, 또는 알고 싶은 얼굴이라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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