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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여기, 그를 보라

한 프레임 안에 여러 얼굴이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다. 다중노출과 장노출로 얼굴의 윤곽이 뒤섞이고, 이목구비가 허물어진 형상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화를 닮았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형상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존재가 분열하거나 해체되는 고통의 순간이 가시화된다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The Portrait 2, Archival Pigment Print, 110x90cm, 2018 ⓒ권순관

 

일반적으로 선명한 얼굴이 담긴 초상 사진을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연동된다. ‘그는 누구인가?’ 사진 속의 그가 어떤 존재인지 식별하려는 인식 능력이 발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뼈와 살이 마구 뒤엉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얼굴을 분별하기 어려운 권순관의 초상 사진은 우리의 인식 능력을 무력화시킨다. 이 사진을 바라볼수록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원초적인 질문에 집중하게 된다. ‘그 얼굴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또는 ‘그는 과연 볼 수 있는 존재인가?’ 대답은 뭉뚱그려진 얼굴처럼 불확실하다. 다만 확연한 게 있다면, 사진 속 존재의 고통이기에 베이컨의 그림을 볼 때처럼 또다시 마음이 서늘해진다.

 

사진 속의 그는 장기 복역한 양심수이다. 이념의 논리에 따라 반대쪽 체제에는 존재하면 안되는 사람인 셈이다. 국가에 의해 투명 인간 취급되는 그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 사진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여기, 그를 보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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