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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남산 사진사

남산 사진사 소송윤씨와 김한식씨의 모습, 1987년 5월14일, 경향신문사

 

두 남자가 똑같은 모자를 쓰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다. 소송윤씨와 김한식씨, 두 사람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남산 사진사이다. 80년대 초 팔각정, 분수대, 야외음악당 등 구역을 나눠 남산에서 영업했던 사진사는 90여명이었다. 당시 서울 관광의 필수 코스인 남산은 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남산 사진사가 되려면 ‘남산사진협회’에 가입하고, 자릿세를 내야 할 정도였다.

 

남산뿐만 아니라 경복궁과 창경궁, 어린이대공원 등 전국의 유원지마다 사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입학식, 졸업식, 소풍, 운동회 등 한 가정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곳에도 등장했다. ‘사진’ 또는 ‘촬영’이라고 쓴 완장을 팔에 차고, 필름 사진과 즉석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차려’ 자세를 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 카메라와 사진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손에 카메라(스마트폰)를 들고, 수시로 손쉽게 사진을 찍고 올리고 보내는 시대가 되면서 남산의 사진사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의 완장처럼, 그 시절의 ‘차려’ 자세처럼 무언가 특별했던 사진은 이제 흔하고 흔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든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진을 남긴다. 입학사진에서 결혼사진까지, 증명사진에서 영정까지, 우리의 생애주기마다 깃드는 사진의 특별한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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