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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의미의 시차

어느 작가는 자신의 전시회 때 도슨트 프로그램에 몰래 참여한다.

관객 사이에서 자기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니 왠지 짓궂다. 도슨트 입장에서 원작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건 민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Sub/Ob-Ject, WeⅠ, 2017 ⓒ기슬기

 

반면, 발화자(주체)가 아닌 청자(객체)의 위치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건 작가에게 유의미하다. 작품의 의미가 청자에게 어떻게 (오)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슬기의 ‘Sub/Ob-Ject’ 시리즈를 보며 이미지를 둘러싼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교란하거나 역전시킨다는 측면에서 앞서 말한 작가의 행위가 떠오른다.

 

기슬기는 외국인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얻은 단편적인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이미지를 제작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 발화와 청취의 시차, 기록과 기억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 이미지는 결국, 발화자에게 비롯된 이야기를 통역자와 청자가 번역하고 왜곡시킨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전시장에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철장을 설치하고, 이 안에서 카메라로 관객을 관찰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이미지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카메라의 대상이라는 걸 인지할 때, 관객은 철장의 안과 밖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럽게 된다.

 

그리고 전시장에서 자신은 시선의 주인인지, 대상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안과 밖, 주체와 객체, 내 눈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본 것을 믿어도 될까.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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