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7일자 지면기사-
이한열 열사(왼쪽)와 어머니 배은심 여사, 1986년, 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얘야, 사진 한 장 찍자”고 했을까, 아니면 “엄마, 사진 찍어요” 했을까?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가을 햇볕이 환해서, 노란 국화가 탐스러워서 카메라 앞에 섰을 것 같다. 사진 찍고 싶을 만큼 햇살이 좋았던, 국화가 예뻤던 그날은 두 사람의 소박한 모습으로 동결된다.
어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기념사진이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구석이 있다. 저기 해맑게 웃는 청년이 바로 이한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한열 열사가 저리도 예쁘게 웃는 아이였단 말인가. 내가 사진으로 기억하는 이한열은 1987년 6월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이종창에게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모습뿐이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처럼 어떤 사진이 누군가를 기억하는 대표 이미지가 될 때, 그 사진은 강력한 기억의 수단이지만 동시에 망각의 도구가 된다. 하나의 이미지만 강하게 남고, 다른 이미지들은 서서히 지워지거나 그 존재를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을 보며 정작 확인할 것은 프레임 안에 보이는 기억뿐만 아니라 프레임 밖에 숨겨진 망각의 빈자리이다.
문득,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무척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생때같은 아이를 하루아침에 잃는 것도 그렇지만, 저리도 웃는 게 예쁜 아이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일은 얼마나 억울할까.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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