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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집

낭만의 도시 파리의 주택가. 이 근사한 말들의 조합은 그 주택가 앞에 서보기 전까지만 의미를 지닌다. 아주 고급한 주택 단지가 아닌 한 파리는 집시와 아랍계 이민자와 화교들이 더불어 사는 전 세계의 축소판 공동 주택이다. 크지 않은 도시,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곳에서 집이 가지는 의미는 그만큼 상징적이고 복잡하다. 그것은 자유와 희망을 의미하기도 하고, 반대로 정착할 수 없는 삶들이 거쳐가는 불확실한 미래에 불과하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깊은 밤 몸을 누일 수 있는 거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거처를 얻기 위한 조건들은 갈수록 힘겹고 까다로워진다.

Laurent Chehere, Flying Houses-Caravan


만약 정주의 상징인 집이 하늘을 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집을 얻고 지키기 위한 굴레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강제 철거 명령이나 난민 신세에 기죽지 않고 훌쩍 어딘가로 날아오를 수만 있다면, 한 칸짜리 집일지라도 진짜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광고 사진가였던 로랑 셰에르는 영화 감독 빔 벤더스와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현실 속의 집에 날개를 달아준다. 대형 카메라로 집을 정교하게 찍은 뒤, 낙서며 창틀 같은 집의 세부적인 모양새는 추가로 촬영해 한 장의 사진 속에 합성한다. 얼핏 보면 집이 날고 있을 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의 내부나 밖에 널린 빨래의 질감까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거리에 서 있을 때는 눈길이 가지 않던 주택의 다양한 모습에 주목하게 만들면서, 작가는 집이 우리 시대에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집만 있으면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라고 꿈꾸는 인생들을 향한 애잔한 찬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