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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애송이의 여행

이 사진을 처음 보면 두 번 놀란다. 우선 작가가 직접 접은 사진 속 종이들이 너무 작아서 놀라고, 그렇게 작은데도 기관을 갖춘 생명체처럼 정교해서 또 한 번 놀란다. 하물며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 크기도 작다. 큼지막하고 화려한 작품들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전시장에 걸린 모노톤의 자그마한 사진들은 애초 벽과 한 몸이었던 것처럼 잔잔한 존재감만을 발한다. 그래서 오히려 액자 가까이 고개를 바짝 디밀어야 하고, 숨은 그림 찾듯 작은 대상들 앞에서 더 긴 시간을 머물러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의 둔한 감각이 깨어나는 사이, 책장의 펄럭임을 타고 활자 속에서 튀어나온 종이비행기들은 사진 밖으로 가벼운 비상을 시도한다. 순간 종이비행기가 일으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를 느낀 것 같기도 하다.

권도연의 ‘애송이의 여행’


사진가 권도연은 종이가 만들어낸 이 작은 사물들에 관한 작업에 ‘애송이의 비행’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제목처럼 그의 종이들은 책 속에서 작은 이파리로 피어나기도 하고, 꽃잎을 발사체 삼아 더 먼 도약을 시도하기도 한다. 작가는 ‘연약한 재료를 접어 새로운 사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의 몸과 생각은 조화롭게 화해했다’고 유년 시절의 종이 접기 경험을 고백한다. 종이는 접힐 때마다 부지런히 새로운 면을 만들어내다 결국에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또 다른 사물로 탄생한다. 그 탄생을 위해 종이가 지니게 된 접힌 자국들은 작가가 보기에 세상과의 관계 맺기를 꿈꾸는 저마다 의미 있는 흔적들이다. 그러므로 권도연의 작업은 종이 접기에 관한 시각적 놀이가 아니라 한 사물의 존재 방식에 대한 섬세한 탐색이다. 눈에 띄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던 아주 작은 사물들도 사실은 이렇게 곱게 존재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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