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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점들


황규태, 점들, 1995-1999


정교하고 화려하게 정렬한 이 점들의 정체는 과연 뭘까. 눈이나 볼에 바르는 색조 화장품 내지는 디자이너를 위한 컬러 차트, 아니면 디지털 이미지를 확대한 픽셀들? 답은 조금 더 시시하다. 바로 문구점에서 파는 땡땡이 스티커. 사진가 황규태는 이 스티커를 근접 촬영한 뒤 컴퓨터로 색을 조작했다.

그러나 3m 크기의 프린트로 보는 그의 점들은 손바닥만한 스티커와는 달리 도발적이다. 가볍지만 싼 티 나지 않고,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칠순을 넘긴 황규태는 여전히 파격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진계의 이단아다.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던 1960년대, 팝아트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디지털이 나오기 훨씬 전인 그때부터 필름의 어느 부분만을 확대해서 재촬영하거나 필름을 불에 태워 우연한 이미지를 얻어냈다. 물론 디지털이 출현한 이후로는 훨씬 더 자유자재로 이미지를 확대하고 재조합한다. 넓은 의미에서 그에게는 컴퓨터도 스캐너도 카메라이므로 장비에 대한 구애도 없다.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 ‘사진 이후의 사진’에서는 1970년대 이후 그의 행보를 시기별로 보여준다. 때로는 검은 석유통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황금 만능주의를 풍자하고, 미국 성조기에 무당들의 오방색을 입혀서 국가 권력을 기만한다.

미술의 엄숙주의를 깨는 대부분의 작업들이 그렇듯이 그의 작업은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결코 조잡하지는 않다.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노장이 지닌 내공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의 작업은 진짜를 재현해야 한다는 사진 특유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대신 사진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훨씬 깊이 하게 만든다. 결국 사진을 확대하고 확대하다 보면 점들의 조합일 뿐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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