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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데곤(bodegon)’은 스페인의 정물화를 일컫는 말이다. 영어와 프랑스에서는 정물화를 각각 ‘스틸 라이프(still-life)’, 즉 움직이지 않는 생명 혹은 ‘나튀르 모르트(nature morte)’, 즉 죽은 자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선술집을 의미하는 보데가(bodega)에서 비롯된 ‘보데곤’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니까 보데곤은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다. 원래 그것은 술집이나 요릿집을 묘사하거나, 즐비하게 놓인 음식을 배경으로 서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그렇듯이 외면상 일상적인 소재이지만, 종종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장르는 펠리페 3세(재위 1598~1621) 치정하의 세비야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했다. 세비야화파는 17세기 전반기 스페인에서 가장 유력한 화가 집단이었다.

벨라스케스, 계란을 부치는 노파, 캔버스에 유채, 100.5×119.5㎝, 1618년,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세비야의 귀족으로 태어난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는 화가 초년 시절 보데곤의 훌륭한 선례를 남겼다. 놀라운 사실은 이 그림이 19세의 어린 나이에 그려졌다는 것! 캄캄한 부엌, 왼쪽으로부터 들어온 빛이 화면 앞쪽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있다. 노파는 숯불 위에 얹힌 작은 질그릇에 계란을 부치고 있다. 야위고 초라한 노파는 소년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 쳐다보고 있고, 멜론과 포도주병을 들고 있는 소년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 밖을 째려보고 있다. 비천한 계급의 두 존재 모두 위엄과 품격이 예사롭지 않다. 또한 젊음과 늙음의 대비는 삶의 덧없음을 암시하며, 노파의 손에 들린 달걀은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삶, 즉 부활이 있음을 의미한다.

벨라스케스는 인물 묘사는 물론 질그릇, 도자기, 금속절구와 그릇, 나무수저, 노끈, 바구니, 유리병, 칼, 양파, 고추 등의 세부를 일찍부터 마스터한 숙련된 기법으로 기막히게 묘사해내고 있다. 젊디젊은 화가의 냉혹할 만큼 섬세한 시선은 그로 하여금 미술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인 ‘시녀들’을 탄생시키게 했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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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