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어지러운 전깃줄에 걸린 현수막 구호가 더없이 어지럽다. 검은 실루엣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없어 어지럽다. 어지러운 구호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어지러운 사내는 송경동 시인이다. 포클레인 위에서 어지러운 구호를 외치던 시인은 땅으로 어지럽게 곤두박질친다. 그는 기륭전자 옛 사옥 앞에서 해고노동자의 단식농성장을 부수려 했던 포클레인을 막고 12일 동안 밤샘 농성을 했다. 2010년의 일이다. 그해 11월, “내일부터 나오지 마시오”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됐던 기륭의 노동자들은 1895일간의 복직투쟁 끝에 사측과 정규직 고용에 합의했다. 그에 따라 노동자 10명은 2013년 5월부터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들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고, 같은 해 12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 더보기 이전 1 ··· 502 503 504 505 506 507 508 ··· 10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