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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심점환, 바다에 누워2’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뭍에 올라온 물고기는 재물을 약탈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감시자 역할을 하느라 반닫이며 뒤주의 자물통에 새겨졌다. 불가에서 물고기는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채 나태와 방일에 빠진 수행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존재다. 물고기는 목탁이 되어 구도자의 타락을 방지한다. 불가에서 물고기의 상징은 중생을 생각하는 부처의 자비, 장애가 없이 자유로운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로까지 이어진다.


심점환, 바다에 누워 2, 2016, 캔버스에 유채, 100×119.8㎝


신라 실성왕 15년 3월, 동해변에서 뿔 달린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해 5월 토함산이 무너지고 샘물이 솟구쳤다. 이듬해 5월 왕이 죽었다. 백제 의자왕 19년 5월에는 사비하에서 길이가 30척이나 되는 큰 물고기가 죽어서 떠올랐다. 이듬해 백제는 망했다. 물고기가 죽고나면 누군가의 세상은 사라졌다.

화가 심점환은 오래전 한 인터뷰에서 사람으로 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차라리 곤충이나 식물처럼 미물로 태어났다면 희망과 불안에 얽매이지 않았을 것이란다. 불안은 종종 허무를 낳는다.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왕 생겨났으니 가능한 한 빨리 썩어서 없어지는 것이 좋겠단다. 빨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은 그의 마음은 붉은 화면 가득 물고기를 해체하여 쌓아놓았다. 머리를 잘라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냈다. 생선찌개를 주문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양새건만, 어쩐지 입에 침이 고이지는 않는다.

생명을 잃은 물고기는 무엇인가의 밥이 될 것이고, 악취를 풍기며 썩을 것이고, 흙으로, 어쩌면 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생명이 될지 모른다. 누군가의 세상은 소멸하지만 또 누군가의 세상은 열릴지 모른다. 이것은 희망일까 불안일까. 희망이 있어서 불안한 것일까. 그때도 희망이 없을까봐 불안한 것일까. 희망이 있으니 불안하지 않은 것일까. 희망이 없으니 불안할 일 없는 것일까. 물고기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해체된 몸통 밖에서 부레만 보석처럼 빛난다.



김지연 ㅣ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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