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김지연의 미술 소환'에 해당되는 글 146건

  1. 2020.03.31 회귀
  2. 2020.03.23 격리
  3. 2020.03.16 간호사
  4. 2020.03.09 민주주의의 위선
  5. 2020.03.02 진실을 찾아서
  6. 2020.02.24 게잠트쿤스트벨크
  7. 2020.02.17 절개
  8. 2020.02.10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9. 2020.02.03 플로라
  10. 2020.01.20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11. 2020.01.13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12. 2020.01.06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13. 2019.12.30 기억저장소
  14. 2019.12.23 미장제색
  15. 2019.12.16 삶은 예술은 바나나
  16. 2019.12.09 아직은 헛기술
  17. 2019.12.02 설근체조
  18. 2019.11.25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19. 2019.11.18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
  20. 2019.11.11 아무것도 아닌 무엇

김지연의 미술 소환

피터 도이그, 100년 전, 2001, 캔버스에 오일, 229×358㎝, 퐁피두센터 소장, ⓒ 피터 도이그


딱히 돌아가고 싶은 시점이 있는 건 아니다. 아니다. 이 시큰둥한 마음은 어쩌면,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 모두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역설적으로 튀어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보기 전. 면접에 들어가기 전. 탈락하기 전. 집값이 오르기 전. 주식이 폭등하기 전.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건물이 무너지기 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 전쟁이 나기 전.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


웹소설 한쪽을 점령하고 있는 ‘회귀물’을 뒤적이다보면, 지금 여기를 함께 살고 있는 자들의 아쉬움, 미련, 후회, 욕망이 눈에 들어온다. 한번 살아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살이에 대한 노하우와 미래에 대한 정보로 무장한 ‘젊은’ 회귀자는 과거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며 그의 인생뿐 아니라 주변의 인생을, 환경을 변화시킨다. 빛나는 미래의 보석을 알아볼 안목이 생길 리 없는 나는, 위기를 기회로 돌리기 위해 의지를 불사르는 주인공들에게 빙의하여 악을 응징하고, 세상을 구하고, 콤플렉스도 해결해본다.


모든 것이 왜소한 한 남자를 화면 안에 그려넣은 피터 도이그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어두운 눈을 알고 있다. 고요하지만, 조심스럽게 일렁거리는 화면 안에서 긴 머리에 깡마른 이 남자는 우리를 본다. 메마른 이 남자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나, 세상은 아직 그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했다. 


그런 눈은 아마도 100년 뒤에나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잔잔한 풍경을 고요하게 흔드는 붓질로, 푸른 물결에 깊이 박힌 오렌지빛 그림자로, 지나고 나면 그제서야 그때가 결정적인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기록한다. ‘100년 전’이라는 이름으로.


<김지연 |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귀  (0) 2020.03.31
격리  (0) 2020.03.23
간호사  (0) 2020.03.16
민주주의의 위선  (0) 2020.03.09
진실을 찾아서  (0) 2020.03.02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지연의 미술 소환

휴고 건즈백, The Isolator, 1925 ⓒSyracuse University Libraries, Special Collections Research Center


예술계 정보를 전하는 웹사이트 이플럭스를 열었더니, 헬멧을 쓰고 앉아 있는 휴고 건즈백의 이미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로 인류가 처한 오늘의 상황과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볼 만한 키워드, 읽어볼 만한 글을 공유하자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에디터는 그 첫번째 키워드로 ‘전염’을 제시했다.


“과학소설은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뒤섞인 멋진 로맨스”라고 정의한 휴고 건즈백은 발명가이자, 저술가, 잡지 발행인으로 살면서 기발한 발명품을 발표하고, 과학소설 잡지를 창간하는 등 현대 기술을 예견하고 과학소설의 미래를 개척한 인물로 꼽힌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발명품 ‘아이솔레이터’는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시야를 한정시키는 도구다. 나무로 제작한 헬멧에 산소통을 연결할 수 있어 착용해도 호흡엔 지장이 없다. 사무실 안에서 주변과의 관계를 기능적으로, 또 선언적으로 차단하는 이 도구는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환경으로부터 직장인을 보호하여,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행동강령으로 선포된 현재, 우리가 처한 자가격리의 상황은 ‘아이솔레이터’로 활용 가능해 보인다. 일상의 흐름을 무너뜨리면서 생존을 위협하고, 혼돈과 침체에 빠뜨리는 이 멈춤과 격리의 상태가,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사회적 관계를 무한 증식시키고, 만남의 관성을 끊지 않은 채 매일을 ‘이벤트’처럼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고독’을 격리된 방 안에서 마주한다. 서로를 멀리하고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는 우리는, 곧 지금과는 단단히 달라진 세계가 오고 말 것이라는 걸 예견하며 방 안에 앉아 있다.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귀  (0) 2020.03.31
격리  (0) 2020.03.23
간호사  (0) 2020.03.16
민주주의의 위선  (0) 2020.03.09
진실을 찾아서  (0) 2020.03.02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리처드 프린스, Emergency Nurse, 2004, 캔버스에 잉크젯, 아크릴릭, 152.4×116.8㎝ ⓒ리처드 프린스


예술가들이 즐겨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몫이다.” 해결책 없는 문제제기나 질문은 염증을 일으키지만, 탁월한 질문은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참여하지도 않은 전시에 참여했다는 거짓말을 한 뒤 ‘거짓말이 나의 출품작이었다’고 한다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사진을 재촬영하여 제작한 ‘새로운 초상화’ 시리즈를 완판시키며 예술의 창작과 모방, 복제 논란에 또다시 불을 붙였던 리처드 프린스는 늘 광적으로 이것저것을 수집하고 들여다본다. 그는 전유와 도용, 모방으로 미국의 대중문화와 유머를 미술 안에 끌고 들어와 일상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질문을 던지는 데 능숙하다.


그는 사스로 인해 전 세계가 히스테리의 최정점에 도달한 2002년 당시, 우리 모두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로맨스 소설 표지를 뒤적이며 간호사 관련 삽화를 찾아 작업한 뒤 간호사 그림 연작을 발표했다. 눈 밑부터 턱을 크게 감싸는 흰색 마스크를 쓴 간호사들은 특정 개인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 익명의 얼굴은 하나의 개인을 넘어 더 큰 아이디어로 나아가는 아이콘이 되어 화면을 채운다. 태양이 저무는 듯 노을이 드리워진 어둑한 대기를 가르는 그의 몸짓은 어딘가 조급하다. 1950~1960년대 간호사의 전형적인 흰색 유니폼에 푸른 재킷을 걸치고 진료가방을 든 그의 상체가 살짝 앞으로 쏠린 때문인가. 긴장감이 감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공포와 위로를 동시에 목격하는 지금 우리의 상태는 2002년의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귀  (0) 2020.03.31
격리  (0) 2020.03.23
간호사  (0) 2020.03.16
민주주의의 위선  (0) 2020.03.09
진실을 찾아서  (0) 2020.03.02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알리 바니사드르, 민주주의의 위선, 2012, 리넨에 오일, 76.2×91.44㎝ ⓒAli Banisadr


이란에서 태어난 화가 알리 바니사드르에게 ‘소리’는 작업을 풀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다. 탁월한 공감각 능력을 타고난 그는 소리가 전해주는 이미지를 그 영감과 연동하는 붓질로 화면에 펼친다. 구상과 추상의 결을 오가며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작가는 우리의 언어가 포착하지 못하는 성찰, 언어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유를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자신의 공감각적 재능을 알아차린 건, 그의 어린 시절을 온통 지배했던 전쟁의 소리 덕분이다. 그의 가족은 이란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았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의 포화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일상을 지배하는 전쟁 소리를 피할 수 없었던 그의 내면엔 파괴의 소리가 각성시키는 이미지가 차올랐다. 전쟁의 혼돈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작업은 페르시아 역사를 아우르고, 동시대 전 지구적인 사회문제를 가로지른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촉발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향한다. 합리와 모순이 얽혀 있어 늘 판단과 선택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혼돈에 찬 공기가 그의 화면을 채운다.


하늘빛은 제법 푸르고 공기도 청명해 보이는 하늘 아래 바람에 팔랑거리는 낙엽처럼 흔들리는 형상들이 엉켜 있다. 깃발인지, 화살촉인지, 총알인지 알 수 없는 물체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사이, 절벽을 잇는 가느다란 사다리 옆에 선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땅 위의 울긋불긋한 형상들은 분주함을 과시하듯 어지럽다. 그 덕분에 대지의 공기는 제법 흔들리지만, 그들의 기운이 하늘까지 닿지는 못했는지, 하늘은 그저 잠잠하다. 작가는 바람 소리 가득한 이 작품을 ‘민주주의의 위선’이라고 불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격리  (0) 2020.03.23
간호사  (0) 2020.03.16
민주주의의 위선  (0) 2020.03.09
진실을 찾아서  (0) 2020.03.02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절개  (0) 2020.02.17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원인 콜렉티브, 진실을 찾아서(진실 부스), 2011~현재. ⓒ원인 콜렉티브


소년이 말한다. “진실은 축구다.” 여성이 말한다. “진실은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남성은 말한다. “진실은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그룹 ‘원인 콜렉티브’가 제작한 거대한 이동식 말풍선 스튜디오 ‘진실의 부스’는 ‘진실은’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만화의 말풍선을 닮은 이 하얀 부스 안에는 작은 촬영 스튜디오가 있다. 사람들은 이 안에서 약 2분간 발언할 수 있다. 


2011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멕시코, 남아프리카, 미국을 여행하고 있는 ‘말풍선’에 참여한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사랑, 예술, 기술, 연대, 가치, 폭력, 가족, 정치, 불신 등 세상의 온갖 주제를 아우른다. 


누구도 명쾌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가능한 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한 작가들은 이렇게 진실을 리서치하고 그 내용을 웹사이트 ‘insearchofthetruth.net’에 기록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진실이라고 생각할까. 자신이 믿는 진실은 삶에 영향을 미칠까. 개인의 나약한 목소리가 모이면,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추구하고, 믿는 진실에 닿을까. 결국은 거대한 세상의 안녕을 떠받치는 기둥의 조각으로 흡수되어, 개개인이 추구하는 진실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목적에 따라 은폐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진실을 말하는 일은 질문을 낳는다. 


작가들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진실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할 일이다.” 그리고 말한다. “그것이 진실이기만 하다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호사  (0) 2020.03.16
민주주의의 위선  (0) 2020.03.09
진실을 찾아서  (0) 2020.03.02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절개  (0) 2020.02.17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0) 2020.02.10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양희, 게잠트쿤스트벨크, 2019. ⓒ이양희


그것은 ‘잔치’였다. 좋아하는 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 안무가 이양희의 오래된 지인들이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의상디자이너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퍼포머로, 스태프로 협력하여 잔치의 톤과 매너, 캐릭터를 만든다. 무대와 객석을 특정할 수 없는 공간 안에서 퍼포머는 손님을 맞이하고, 서로를 소개하고, 음식을 서빙한다.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일컫는 ‘밀롱가’의 콘셉트를 적용한 이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거닐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시공간이 찰나의 정적을 스치기가 무섭게 이곳을 다른 빛과 리듬이 채우는 순간, 퍼포머들은 달라진 빛과 리듬에 기댄 움직임으로 공간을 환기시키며 그때 그곳에 있는 이들을 순식간에 그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다른 경험은 다른 감각으로 쌓인다.


오랜 시간 한국 전통무용을 교육받은 이양희는 춤사위의 요소와 특징을 기반으로 움직임 워크숍을 구성했다. 그 안에는 ‘공연예술의 발현 과정과 시공간의 요소들, 그 안에서 퍼포머가 존재하는 방식’을 배우고, 폐기하고 다시 배우기를 반복하며 고민하고 발전시켜 온 이양희의 안무 방법론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이 긴 시간 정리한 이 내용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서로 배우고 나누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게잠트쿤스트벨크(총체예술극)’가 되기를 바랐다. 잔치가 예술이 아닐 이유도 없지만, 잔치를 예술에 가두어야 할 이유도 없는 이 시공간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들과 눈 맞출 수 있기를, 공연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주주의의 위선  (0) 2020.03.09
진실을 찾아서  (0) 2020.03.02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절개  (0) 2020.02.17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0) 2020.02.10
플로라  (0) 2020.02.03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지연의 미술 소환

한나 회흐, 다다 식칼로 독일의 마지막 바이마르-똥배 문화 시대 절개, 1919, 콜라주, 114×90㎝,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소장


“그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은 그가 이미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 자신이 특권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그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며 정치적 공격성을 드러내던 베를린 다다의 유일한 여성 작가 한나 회흐를 동료 남성 예술가들은 ‘다다의 잠자는 공주’라고 불렀다. 여성해방을 지지하며 남녀평등권, 기회 균등을 향해 정치적으로 옹호하던 그들이었지만, 소시민의 위선, 부조리한 세태를 고발하기 위해 매춘부, 여성의 나체를 폭력적으로 전시하는 방법을 거리낌 없이 선택하는 남성 동료 작가들 안에서 그는 편안할 수 없었다.


“나는 자기 확신에 찬 우리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 둘레에 쳐 놓는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은 바뀌었다. 모든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는 1920년 ‘제1회 국제 다다 전시회’에 ‘다다 식칼로 독일의 마지막 바이마르-똥배 문화시대 절개’를 출품하여 다다이스트들을 향한 냉소를 보낸다. 작품 안에는 독일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를 비롯하여 무너진 과거를 대표하는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상징인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대면하고 있다. 다양한 화보에서 ‘절개’해낸 인물들 중에는 자신을 비롯하여 무정부주의적인 익살에 심취한 다다이스트들의 모습도 있다. 그 사이로 ‘다다에 가담하라’ ‘다다에 투자하라’ ‘다다가 정복한다’ 같은 유명한 말들이 광고문구처럼 자리를 채운다. 격변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변화를 이용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이익을 흔드는 변화 앞에서는 행동을 유예하는 이들을 향해 작가는 가위를 들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실을 찾아서  (0) 2020.03.02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절개  (0) 2020.02.17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0) 2020.02.10
플로라  (0) 2020.02.03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0) 2020.01.20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안 카포테, 오픈 마인드(바리케이드), 2014, 변형한 바리케이드와 철제 구조물, 관객참여형 가변설치 ⓒ YOAN CAPOTE/COURTESY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쿠바 작가 요안 카포테는 지하의 미로 공원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뇌 구조처럼 설계한 ‘신경세포’의 미로 안에서, 사람들이 걷고 머물면서 명상하고 교감하기를 바랐다. 미로 한쪽에 쿠바 지도를 넣어,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쿠바에 대한 정책이 바뀌고, 그때마다 그 상황이 강제하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쿠바인들의 스트레스를 강조했다. 


미로가 제시하는 삶에 대한 다양한 함의와, 명상의 필요성을 접목한 이 작업으로 그는 대다수 현대인이 살고 있는 도시환경을 되돌아본다. 시스템이 집적되어 유기적인 것 같지만, 구성원이 합의하거나 냉소하지 않으면 통제될 수 없는 도시의 불온한 현실 앞에서, 도시 생활에 중독된 인간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돌아봐야 했다.


작업 구상 후 10여년이 흐른 뒤에야 그는 이 프로젝트를 공공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구상대로 구현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 한계는 해결책을 낳는 법. 그는 미로의 개념을 뒤집어보기로 한다. 상상의 끝에,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리케이드야말로 일상의 공간을 마술처럼 미로로 만드는 데 특화된 도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바리케이드를 구부리고 잘라 붙여, 이 사물이 군중을 통제하는 데 쓰이는 방식을 뒤틀면서 뇌 구조의 미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미로 구조물을 들어올려 사람들의 머리 높이에 설치했다. 미로는 ‘바리케이드’의 태생적 용도와 무관하게 관객의 동선을 전혀 방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흔쾌히 안으로 그들을 초대했다. 관객은 미로 아래를 유유자적 걷거나, 그 아래 요가매트를 펼쳐 놓고 요가와 명상을 했다. 예술가의 선택을 거쳐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 법률, 도그마, 터부는 조금 가벼워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잠트쿤스트벨크  (0) 2020.02.24
절개  (0) 2020.02.17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0) 2020.02.10
플로라  (0) 2020.02.03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0) 2020.01.20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0) 2020.01.13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테레사 허버트&알렉산더 버츨러, 플로라, 2017, Synchronized double-sided Film Installation with shared Soundtrack, 30분 ⓒ테레사 허버트&알렉산더 버츨러


제임스 로드가 쓴 자코메티 평전에 실린 한 장의 흑백사진은 작가 듀오 테레사 허버트와 알렉산더 버츨러의 호기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좌측에 앉은 젊은 자코메티는 카메라를 향해 있고, 우측의 여인은 그를 향해 앉았다. 둘 사이에는 이 여인, 플로라 마이요가 만든 자코메티의 두상이 있다. 사진이 포착한 특별한 분위기, 그리고 플로라에 대한 로드의 매력적인 묘사에 매료된 두 사람은 플로라를 찾아나선다.


미술사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미국 덴버 출신의 이 작가는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단호히 정리한 뒤 조각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역시 파리로 유학 온 자코메티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플로라가 자코메티의 두상을 만든 것처럼 자코메티 역시 그녀의 두상을 만들었다. 그들 사이에는 여느 연인들처럼 굴곡이 있었고 결국 이별했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평생 알 수 없었다.


듀오 예술가는 플로라의 아들을 만나, 싱글맘으로 살아간 엄마를 회상하는 그의 떨리는 입을 포착했고, 아들의 증언과 그들이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투채널 비디오를 완성했다. 2016년, 미국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읊는 아들이 이끌어가는 다큐멘터리와, 1927년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자코메티의 두상을 만드는 플로라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가 서로 등을 맞댄 채 흐른다.


그러나 기억은 불안하며 기억을 간직한 자의 목소리는 진실이자 허구다. 듀오 예술가는 한때 예술가의 삶을 꿈꾸었던 이가 남겨둔 삶의 편린들을 추적하고 조합하면서 사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기억과 감정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다리 위로 우리의 역사가 흐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개  (0) 2020.02.17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0) 2020.02.10
플로라  (0) 2020.02.03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0) 2020.01.20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0) 2020.01.13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0) 2020.01.06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황수현,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2019. ⓒ 황수현


사실 인간에게는 공감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경험하는 육체적 통증을 나는 느낄 수 없으며, 타인의 행복, 슬픔의 감정 역시 그저 상상할 뿐 정확히 그의 느낌에 닿을 수는 없다. 만일 내 경험이 축적한 느낌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타인의 감정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사치의 ‘느낌’을 찾아냈다면, 그래서 내가 상대를 향해 표현한 공감의 제스처가 타인의 마음에 닿았다면, 그때 우리는 공감했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말 공감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서로의 느낌에 닿지 못한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


황수현 연출로 세 명의 퍼포머가 둥글게 모여 앉은 관객 사이에서 1시간가량 펼친 퍼포먼스는 세번째 날의 분위기가 가장 무거웠다고 했다. 앞머리를 늘어뜨려 얼굴을 가린 세 퍼포머는, 관객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 있다. 관객마저 ‘관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퍼포머들은 똑딱거리는 시계추처럼 발을 까딱대며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들의 몸이 극도의 긴장감을 품고 있다는 것은, 그 움직임이 만드는 근육의 감각을 상상하면 알아차릴 수 있다. 문득 옆자리 관객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는 퍼포머의 동작은 그로테스크와 유머 사이를 오갔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리듬은 다채로워지고, 호흡은 휘파람에 실려 서로 신호를 주고받듯 허공을 가로질렀다. 의자를 타고 넘던 그들의 몸은 바닥으로 향하고 서로 얽혀들어 움직이며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날의 관객들은 견고했고, 좀처럼 퍼포머의 유머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날의 관객들은 퍼포머들이 느끼는 것을 생각했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0) 2020.02.10
플로라  (0) 2020.02.03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0) 2020.01.20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0) 2020.01.13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0) 2020.01.06
기억저장소  (0) 2019.12.30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더 스크랩 인스타그램 계정


“여러분, 환영합니다. ‘더 스크랩’은 한국의 창작자들로부터 홍콩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사진/이미지를 전달받아 출력하고 전시합니다.”


2016년, ‘사진을 보는 일, 생산하는 일, 유통하는 일에 대한 고민과 의문’으로 출발한, 일종의 사진 유통 플랫폼 ‘더 스크랩’은 이미지 외에 어떤 정보도 없이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 같은 크기, 같은 재질의 사진 가운데 취향에 따라 사진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예술품 유통의 현실뿐 아니라, 이 시대의 젊은 감각, 청년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문제의식도 이끌어냈던 이 기획은 이제, 서로 교류하고 취향을 확인하는 경험에서 더 나아가 이미지를 통해 각자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고, 세상과 연대하는 경험의 장을 만들면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홍콩 바깥의 우리가, 민주화를 열망하는 홍콩의 현실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인터넷의 사진, 영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SNS에 떠 있는 사진에 ‘좋아요’와 ‘공유’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일 말고 그들과 연대하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 기획단은, ‘닿을 수 없는 연결이 주는 무기력함’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2019년의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에서 구매권을 구입한 1282명의 관객은 165명·팀의 작가들이 출품한 1000여장의 사진 가운데 각자 10장을 선택하여 한 권의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이들의 책은 2부씩 제작되었으며, 선택자의 사인이 담긴 1부의 스크랩북은 1월 열리는 홍콩 아트북페어 기간 동안 홍콩 시민들에게로 간다. ‘더 스크랩’은 멈추지만, ‘교류가 연대가 되고 지역, 문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지형을 그려보고’ 싶은 이들의 바람은 계속 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로라  (0) 2020.02.03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0) 2020.01.20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0) 2020.01.13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0) 2020.01.06
기억저장소  (0) 2019.12.30
미장제색  (0) 2019.12.23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펠리체 바리니,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2017, 오스나브뤼크 마르크플라자, 독일, ⓒ펠리체 바리니


펠리체 바리니가 도시 곳곳, 그러니까 건물 바깥의 길, 벽, 지붕, 유리창, 아니면 쇼핑몰이나 사무실 내벽과 천장, 복도에 기하학적인 패턴을 그려넣은 것은, 사람들을 모두 어떤 단 하나의 자리에 세우고, 단 하나의 장면을 목격하게 만들어서 그들의 감탄을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물론 작가가 설정해 둔 어떤 위치를 찾아 그곳에 선 자는, 공간 곳곳에 흩어져 있던 페인트 자국이 모여 하나의 형태를 완성하는 꽤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별 의미 없이 조각난 듯 보이던 색면이 마법처럼 하나의 형태로 모이는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관객은 3차원 공간이 그 패턴으로 인해 입체감을 상실하고 평평해 보이는 경험을 한다. 작가는 그렇게 관객들이 건축과 도시를 새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단다.


그러나, 작가는 관객 모두가 이 하나의 자리에 서서 바로 그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동서고금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갖는 의미로 자주 언급하는 바로 그 의미, ‘일상을 새롭게,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만나는 경험은 조각난 페인트 자국이 흩어져 있는 공간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전에 없던 선들을 툭툭 마주치는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과 다른 느낌으로 공간을 경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그가 ‘큰 그림’을 그린 건 맞지만, 여기에는 관객의 동선과 관점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없으니, 어떤 위치에 서고, 어떤 방향으로 시선을 던지느냐는 오롯이 관객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거다. 그래서 관객들은 늘 그랬듯 무심하게 공간을 배회해도 좋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내 위치에 따라 자꾸 변하는 풍경 속 패턴의 향연을 만끽할 수도 있겠다. 그러다 문득, 그의 작품을 즐기든 말든 그의 설계 안에 갇혀 통제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눈을 굴려보지만, 그 답은 외면하고만 싶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0) 2020.01.20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0) 2020.01.13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0) 2020.01.06
기억저장소  (0) 2019.12.30
미장제색  (0) 2019.12.23
삶은 예술은 바나나  (0) 2019.12.16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크 레키, Dream English Kid, 1964-1999AD, 2015, 4:3films, 5.1 surround sound, 23분 2초 ⓒMark Leckey, Cabinet London


이제, 우리의 기억은 대체로 온라인에 있다. 뮤지션 양준일에 대한 정보는, 그가 <슈가맨>에 나와 이슈몰이를 하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온라인을 떠다녔고, 사람들은 20년 전 영상 속 그의 모습을 ‘시간여행자’라 호명하면서, 바로 그 시절을 살았던 나의 기억과 시간에 접속했다.


유튜브에서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의 부틀렉 음원을 발견한 작가 마크 레키는, 1979년 그의 나이 15세, 리버풀의 클럽 ‘에릭’에서 이 밴드의 공연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밴드가 그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날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특별하게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음원은 그의 15세를 환기시켰다. 어느 정도 희미해진 그의 기억들이 온라인에 있었던 셈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반기를 ‘온라인 데이터’로 정리하기로 한다. 


그는 영화, 광고, 뉴스, 드라마, 뮤직비디오 영상을 뒤적이며 자신이 태어난 1964년부터 Y2K버그에 대한 염려가 온·오프라인의 세계를 위협하던 1999년까지, 그의 인생에 닿아 있는 정보들을 찾아냈다. 1964년에는 미국의 무인 달 탐사선인 레인저 7호가 달 사진을 촬영하여 지구로 전송했고, 1983년에는 ‘소련’이 대한항공 007편을 격추했다. 비틀스가 전 세계 음악팬의 인기를 휩쓸었다. 레이브 파티가 젊음을 흔들었다. 유튜브, 비메오에서 추출한 많은 푸티지들을 자신의 호흡과 템포로 매만지니, 그의 기억에 닿는 모양새로 얼추 끼워맞춰지는 듯하다. “어떤 면에서, 나는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내가 했던 경험들을 복제하려는 것 같다.”


그가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 엮는 이 작업을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나와 나의 세대가 잘 알고 있는 것을 다루기 위한 시도”라고 말하는 작가는, 온라인에서 우리의 과거를 집단기억으로 부활시키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우리의 기억은 왜곡과 삭제의 과정을 거칠지언정, 대체로 온라인에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스크랩: 해피투게더  (0) 2020.01.13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0) 2020.01.06
기억저장소  (0) 2019.12.30
미장제색  (0) 2019.12.23
삶은 예술은 바나나  (0) 2019.12.16
아직은 헛기술  (0) 2019.12.09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배종헌, 의 일부분, 2019, Oil on birch plywood, 112.5×200×25.4㎝


‘미장산.’ 그곳에는 나무가 있고, 길이 있다. 물과 바람이 부지런히 산세를 스치니, 봉우리는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우거진 푸른 숲, 길게 솟은 나무며 바위 틈새로 청명한 기운은 고요히 가라앉고, 계곡 위로 시선을 내린 ‘보는 자’는 흐르는 물에 마음을 잃는다. 이제는 ‘숲에 내린 달빛에 가야 할 길을 물을 때’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도로에서 배종헌은 몇 개의 터널을 지났을까. 흙이며 회, 시멘트를 바르는 미장이의 손길이 만들었을 벽, 천장, 바닥, 그 터널의 표면에 들러붙은 ‘먼지’, 시멘트의 균열이 눈에 들어와 풍경이 되던 날, 풍경을 지나 ‘산수’가 되던 날, 어쩌면 그의 눈은 아무것도 안 보았을지 모른다. 


뇌는 생각을 멈추었을지 모른다. 뚜렷한 대상을 향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열려 있던 동공으로 치고 들어온 빛이, 불현듯 뇌의 타성을 건드렸을 때, 그래서 그저 스치던 정보가 피할 수 없이 의미가 되었을 때, 그는 번득 정신을 차렸을까.


시멘트를 바르는 기술뿐 아니라,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특수한 고안’이라는 의미마저 담고 있는 ‘미장’을 산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순간, 세상 모든 흔적에서 심상을 엮어내는 보는 자의 보배로운 눈은 진청색 평면 위로 감추어진 산수를 긁어낸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을 흔적의 풍경에 주목하며 작가는 미장이와 미에 대해 나누는 대담을 상상한다. 이들은 콘크리트의 균열에서 ‘보이지 않는 반항과 소극적 저항’을, 콘크리트 거푸집에서 ‘기억하는 사물, 탈역사적 기록’을, 콘크리트 요철, 그 생채기에서 ‘과정과 무목적·비목적의 목적’을, 콘크리트 동굴벽화에서 ‘폭력과 반자연적 자연의 정취’를 떠올린다.


‘눈으로 걷고 생각으로 그리는 풍경을 만나는 시간’, 재현하는 일에 발 담근 화가는 ‘걷지 않는 정지여행’의 길 위에 서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개의 푸른 동그라미  (0) 2020.01.06
기억저장소  (0) 2019.12.30
미장제색  (0) 2019.12.23
삶은 예술은 바나나  (0) 2019.12.16
아직은 헛기술  (0) 2019.12.09
설근체조  (0) 2019.12.02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토마스 바움가르텔, 바나나스프레이어, 쿤스트팔라스트 미술관, 뒤셀도르프


토마스 바움가르텔은 1986년부터 미술관 외벽에 스프레이로 바나나 그라피티를 남겨왔다. 한 예술가의 이 ‘비공식적인 인증’ 행위는 ‘가볼 만한’ 예술공간의 표식으로 인정받으며 퍼져 나갔다. ‘바나나’의 ‘보증력’은 세월이 흐르며 퇴색된 감이 있지만, 덕분에 ‘예술 인증’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의문은 커진다.


1967년 앤디 워홀은 적당히 잘 익은 ‘바나나’ 그림을 넣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재킷을 디자인하고는 ‘천천히 벗겨보시오’라고 적어넣었다. 바나나 그림을 벗겨내자, 그 안에서 핑크빛 바나나 알맹이가 등장했고 그의 작업은 ‘외설’ 이슈를 낳았다.


바나나 가격 폭락의 이유를 알기 위해 그 생산·유통 과정을 추적하던 함경아는, 필리핀에서 바나나 대량재배로 땅이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는 2006년 발표한 작품 ‘허니바나나’를 통해 ‘거대 자본의 힘에 냉소’를 보냈다.


최근,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아트페어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생바나나를 테이프로 벽면에 부착한 작품 ‘코미디언’을 출품했다. ‘바나나’는 ‘세계무역’을 상징했다. 1년 이상 벽에 바나나를 붙여둔 채, 적합한 재료를 고민한 끝에 결국 그는 ‘있는 그대로의 바나나 그 자체’를 선택했다. 그리고, 12만달러에 판매된 이 작품을 데이비드 다투나가 떼어 먹었다. 카텔란의 갤러리 대표는 다투나의 행위에 대해, “더 중요한 건 이런 유의 도발은 새로울 게 없다는 거다. 그것이 무엇이든,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바나나는 또 다른 의미로 빠르게 접속했다. 테이프로 벽에 ‘무엇인가’를 붙이는 행위를 따라하며 제품을 홍보하고, 캠페인을 펼치는 개인과 기관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마이애미의 건물관리노동자연대는 보라색 셔츠 위로 바나나를 붙인 채 거리 시위를 벌이면서 ‘바나나 예술’보다 낮은 그들의 임금과 업무환경을 토로한다. “우리의 노동가치는 왜 인정하지 않는가.” 


‘바나나’에는 이렇게 의미와 명분이 쌓여가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저장소  (0) 2019.12.30
미장제색  (0) 2019.12.23
삶은 예술은 바나나  (0) 2019.12.16
아직은 헛기술  (0) 2019.12.09
설근체조  (0) 2019.12.02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0) 2019.11.25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정민, Walking Form, 2019, 캔버스에 먹과 아크릴, 96.5×130.2㎝, ⓒ이정민 우손갤러리 제공


‘불안정한 작업환경과 레지던시의 입주로 잦은 이사를 겪으며 점차 도심을 벗어난 외곽지역을 탐색하던’ 이정민은, ‘목적지가 없어야 산책’이라며 소소하게 나선 길,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을 거다. 노트에 옮겨 두었다던 ‘1839년에는 산책 나갈 때 거북이를 데리고 가는 것이 우아해 보였다. 이것은 아케이드를 어떤 속도로 산책했던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발터 베냐민의 문장을 떠올리기 좋았을 거다. ‘내일의 내가 어디에 있을지를 예측할 수 있는 미래로부터 나의 존재를 다른 위치에 놓는 방법’인 산책은 그저 몸만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었다. ‘변변치 못한 공터와 주변의 작은 숲, 덤불들 주위를 걸으며, 도시도 아니고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자연 아닌 것도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것도 아닌 주변부의 풍경들이 변두리로부터 모서리를 드러내는 긴밀한 순간들을 엿보던’ 그는, ‘도시에서 발견하는 선과 덩어리, 건축현장에서 마주하는 비계의 선들, 조경용 나무들의 어눌한 상태를 수집’하여 자신이 고민하는 필법으로 화폭에 담는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와 그것을 위한 방법으로 삼던 모든 것들을 재고해야만 한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느꼈던’ 시간을 지나 그는 ‘헛기술’이라 명명한 전시를 열었다. “헛기술은 기술(技術)과 기술(記述) 모두를 지칭하는 동시에 말머리에 붙은 ‘헛’이라는 구멍을 통해 양쪽 모두로부터 빠져나간다.”


그 이후, ‘목적 없는 행위들은 어쩌면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지만, 한편으로 싸워야만 얻을 수 있는 자유나 권리 같은 것, 현실의 아이러니를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를지라도 여전히 답 없는 시도를 지속하는 수행적인 태도’라고 말하던 그였지만,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100일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어떤 죽음들은 주목받고 어떤 죽음들은 방치된다. 자신의 선택이든 아니든, 결국 모든 죽음은 메시지다. 우리의 관성을 반성하며, 떠나간 이들에게 애도를.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장제색  (0) 2019.12.23
삶은 예술은 바나나  (0) 2019.12.16
아직은 헛기술  (0) 2019.12.09
설근체조  (0) 2019.12.02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0) 2019.11.25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  (0) 2019.11.18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윤정, 설근체조, 2019. ⓒ 박해욱


혀의 움직임은 당신의 표정을 바꾸고, 턱선을 바꾸고, 얼굴형을 바꾼다. 몸짓을, 말투를, 음색을, 발음을, 어쩌면 마음의 위치를 바꾼다. 유연한 세치 혀라면, 당신 아닌 타인의 마음마저 능숙하게 움직인다. 혀가 제자리에 놓이지 않는다면, 운동성을 과시하면서 어설프게 움직인다면, 그 혀는 당신의 치열을 밀어내고, 구강구조를 망가뜨리고, 숨쉬기마저 방해할 것이다. 그런 혀일지라도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을 보겠고, 말을 쏟아 내겠고, 타인의 마음을 유린할 테지만, 그런 혀는 마침내 당신의 턱관절을 비틀고, 얼굴의 윤곽을, 몸통을 뒤틀고 말 것이다.


어느 날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윤정은 혀뿌리를 움직여보던 중, 혀근육이 턱근육, 심장근육, 전신으로 뻗어 있는 온갖 근육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혀뿌리를 움직이자 내장기관도 미세하게 움직였다. 혀의 근육을 의식한 뒤로 그에게는 온몸의 근육운동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움직임이 이끌어내는 표현의 세계, 그 당위성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혀는 늘, 원래 하던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혀의 운동은 과거와 달라져 버렸다. 제12뇌신경이 촘촘하게 감싸고 있는 혀근육으로는 미처 춤추지 않았던 무용수가 이제, 혀뿌리로부터 춤을 추기로 한다.


‘설근체조’라 명명한 퍼포먼스의 시간, 무용수의 입안에서 왼쪽 오른쪽 위아래, 다시 치열을 고르며 워밍업을 시작한 혀뿌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발음하며 낯선 움직임을 훈련한다. 혀의 운동은 이제 목으로, 어깨로, 손으로, 몸통으로, 다리로 이어져 온몸의 근육으로 퍼진다. 내장기관이 꿈틀댄다. 매끈한 얼굴 아래, 목구멍 뒤에서 보이지 않게 움직이던 혀의 존재를 의식하니, 댄서의 움직임이 다르다. 목구멍 너머의 세계를 온전히 고려하면서 바라보는 시간이 만드는 긴장감에 혀뿌리의 침은 마를 새가 없다. 척추동물의 입속에서 꿈틀대는 30㎝짜리 근육다발이 끌고가는 춤 앞에서, 이유가 있는 움직임이 비로소 아름답다는 것을 알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예술은 바나나  (0) 2019.12.16
아직은 헛기술  (0) 2019.12.09
설근체조  (0) 2019.12.02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0) 2019.11.25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  (0) 2019.11.18
아무것도 아닌 무엇  (0) 2019.11.11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무진형제,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2019, 영상, 30분34초 ⓒ무진형제, 아트스페이스 풀


멕시코만 바다에서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마침내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청새치를 낚아 올렸다.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 가지 않는가 보다. 그는 청새치의 살점을 상어 떼에게 고스란히 뜯기고, 앙상한 뼈만 매단 채 돌아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성공의 기억을 뒤로하고 노인은 피로한 몸을 뉘었다.


‘길 위쪽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작가그룹 무진형제는 나이가 들면 남을 따분하게 만들지 않는 현명한 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문장으로 적은 것을, 낡은 집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시작한 작업의 제목으로 삼았다.


오래된 집, 오래된 땅, 오래된 삶, 오래된 기억의 안팎을 엮어 나가는 영상 설치 작업 안에는 시공간 안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이 쌓인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지 않으려는 이의 무심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은 그의 주름진 살결, 깊게 휘어진 손가락에 가 닿았다. 말 그대로 ‘고목껍질’ 같은 노인의 피부는 물기 하나 없이 메말랐다. 이제 그는 격정의 시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을 것이다. 노동의 세월을 새긴 듯 울퉁불퉁한 손가락으로 우편물 봉투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고요하고 담담한 것이, 그저 이렇게 멈추어 있어도 좋겠다.


사람은 늙고, 땅의 쓸모는 변하지만, 그저 이곳에 그대로 있고 싶은 자의 마음은 가만히 있다. 그를 지켜보는 젊은이들은 늙은 자의 그 마음을 만났을까. 노인이 꿈꾸었을 ‘사자’를 만났을까.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은 헛기술  (0) 2019.12.09
설근체조  (0) 2019.12.02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0) 2019.11.25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  (0) 2019.11.18
아무것도 아닌 무엇  (0) 2019.11.11
조울증/사랑/진실/사랑  (0) 2019.11.04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송현숙, 7획, 2018, 캔버스에 템페라, 120×100㎝ ⓒ 송현숙, Zeno X Gallery


캔버스 천 위를 스치는 화가의 붓질은 또 다른 결을 만든다. 한때, 송현숙의 붓질은 삼베나 모시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아 유화보다 맑고 생생한 색을 낸다는 템페라 특유의 딱딱한 색조가 식물성의 담백한 질감에 닿아 있었다. 이제 그의 ‘획’은 식물의 뉘앙스를 넘어 실크 특유의 동물성 광택마저 담는다.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은 농사를 지으며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는 항아리의 형태가 되었다. 


안료를 달걀, 송진, 물과 기름에 혼합하는 시간, 그는 생각을 채우거나 비우기를 반복할 것이다. 곧 마주할 빈 캔버스 위로 기록할 숨결에 의미를 부여하고 걷어내기를 반복할 것이다. 어떤 결정을 마치고 나면, 또 하나의 손처럼 호흡을 맞춰 왔을 크고 납작한 붓을 들고 한 호흡에 한 획을 긋는다. 수정하기 곤란한 그 순간의 움직임이 한 번 살아내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의 결정들처럼 캔버스를 덮는다. 


그의 작품은 별도의 제목을 취하기보다, 호흡과 획이 스쳤을 숫자가 된다. 태어나면 소멸하고 마는 목숨들의 운명처럼, 단순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담백한 선택이다. 


그의 작업 과정을 기꺼이 ‘수행’이라고 이름 붙여도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생사의 속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예술에 집중을 하되, 세상과 일상을 외면하지 않으며 분노할 줄 아는 작가의 현실감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입으로 허무하게 설명하는 수행이 아니라 ‘화면’이 포착한 그 수행의 숨결은 쉽게 외면할 수 없다. 유기물과 무기물이 순환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곧 소멸할 인생을 반복해서 그으며 역사를 만드는 생명의 몸짓처럼, 획 하나에 모든 것을 내거는 일은 무겁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근체조  (0) 2019.12.02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0) 2019.11.25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  (0) 2019.11.18
아무것도 아닌 무엇  (0) 2019.11.11
조울증/사랑/진실/사랑  (0) 2019.11.04
감시 자본주의  (0) 2019.10.28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연필을 쥔 화가의 손은 우윳빛으로 매끄럽게 비어 있는 폴리에스터 필름 위를 가늠하다,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친 어느 지점으로 내려앉았을 것이다. 가볍게 짧은 빗금을 치고 시작점을 잡은 뒤, 선을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설원기, 2019-34, 2019, 폴리에스터 필름에 혼합재료, 61×46㎝ ⓒ설원기 이유진갤러리 제공


작은 쌀알 모양으로 출발한 선이 형태를 감싸고, 삼박자의 왈츠를 지휘하듯 일그러진 나선형을 그리면서 돌아나간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을 순간, 그의 선은 나선의 회전 궤도를 벗어나 화면을 가로지르고, 가느다란 실처럼 떨어져 멈추었을 것이다.


이제 화가는 검은 물감을 찍어바른 붓을 들어 다음 리듬을 만든다. 먼저 그렸던 선의 흐름은 이 화면에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는 처음 필름 위를 살피던 그 시점 그 눈으로 화면을 본다. 이번에 그의 붓은 왼편 위로 갔을 테다. 물감을 흡수하지 않는 폴리에스터 필름 위를 미끄러지며 붓은 유유히 굽이쳐 화면 아래로 내려왔을 것이다. 더 흐르기에는 검은색이 너무 투명해지기 바로 전, 다시 검은 물감을 입은 붓은 화면을 오르내리다가, 시작하던 그 지점 즈음에 올라갔을 때 멈추었을 것이다.


다시, 앞의 시간을 지운 화가는 흰 물감을 찍은 붓을 빠르게 화면으로 내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아마도 다섯 번, 어쩌면 여섯 번. 그는 기꺼이 앞선 연필의 리듬과 검은 붓의 물결을 지웠건만, 이미 축적한 시간의 흔적은 그의 마지막 움직임에 개입하고 말았다. 흰 붓은 미처 마르지 않은 검은 물감을 잡아당겼으며, 마침내 화가가 붓을 뗀 화면 안에서 그는 과거의 어떤 ‘행동’도 숨기지 못했다.


각 단계의 움직임 간에 의도적인 조화로움을 만들지 않고, 각자 존재감을 갖기를, 이 화면이 특정한 ‘콘셉트’에 복무하지 않기를, “사소함이나 일상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무엇”의 상태로 있을 수 있기를 기대한 화가의 바람은 나누고, 채우고, 찍고, 긋는 일을 통해 펼쳐졌으나, 구성의 균형을 살피고, 행위의 의도를 추적하려는 보는 자의 태도는 회화의 운명이거나, 두 눈을 가진 인간의 숙명이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김지연의 미술 소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0) 2019.11.25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  (0) 2019.11.18
아무것도 아닌 무엇  (0) 2019.11.11
조울증/사랑/진실/사랑  (0) 2019.11.04
감시 자본주의  (0) 2019.10.28
불쾌한 계곡의 이모지  (0) 2019.10.21
Posted by Kh-ar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