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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20.06.22 대화의 기술
  2. 2020.06.08 블랙아웃
  3. 2020.06.01 인간 없는 생태계
  4. 2020.05.25 방문자들
  5. 2020.05.18 샤우팅 힐
  6. 2020.05.11 줄타기
  7. 2020.05.04 존재하지 않는 퍼포머
  8. 2020.04.27 지금 여기
  9. 2020.04.20 바닷가의 두 여인
  10. 2020.04.13 연결
  11. 2020.04.06 동백
  12. 2020.03.31 회귀
  13. 2020.03.23 격리
  14. 2020.03.16 간호사
  15. 2020.03.09 민주주의의 위선
  16. 2020.03.02 진실을 찾아서
  17. 2020.02.24 게잠트쿤스트벨크
  18. 2020.02.17 절개
  19. 2020.02.10 바리케이드로 오픈 마인드
  20. 2020.02.03 플로라

라이문두스 룰루스, ‘The Thinkin Machine’, 2016, 바르셀로나 CCCB 전시 장면.


1200년대의 스페인 마요르카는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공존하던 지역이다. 종교갈등이 빚어내는 충돌은 빈번했지만, 문화교류에 기반한 공생 관계는 유지하던 이곳에서 태어난 라이문두스 룰루스는 정복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아버지 덕에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음유시인이 되어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부유했고, 방종했으며, 세속적”이었던 그의 삶을 바꾼 것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환상이었다. 같은 환상을 다섯 차례 경험한 뒤, 그는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교도’를 만나 개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믿음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신의 속성을 덕, 완전성, 품위, 위대함 등의 개념으로 규정한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한 필연적인 근거를 과학적으로 도출하고, 신앙의 참을 증명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담아 ‘이방인과 세 현자의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수학식, 천문학 도표, 그림을 남겼다. 


그가 서로 다른 종교인들을 대화의 장에 앉히기 위해 선택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 1. 각 종교의 신앙조항을 모두가 인정하는 이성에 근거하여 토론하는 기술, 2. 대화의 과정에서 상호 간 직접적인 반박을 금지하여 적대감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집중하는 경청의 기술, 3. 논쟁적인 대결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평화적으로 대화를 추구하는 기술.


최초로 투표 이론을 정비하여 ‘결선투표제’를 제안하기도 한 룰루스는 중세를 살았던 많은 지식인이 그러하듯 성직자, 수학자, 시인, 발명가, 예술가로 살면서 자신의 신념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했으나, 포교활동을 하던 중 순교하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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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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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 1915, 캔버스에 유채, 79.5×79.5㎝,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 ‘검은 사각형’에는 두 개의 그림층이 숨어 있다. 가장 아래에는 입체 미래주의 화풍의 그림이, 그 위로는 회화의 의미를 고민하던 그가 새로운 형식을 실험한 흔적이 있다. 물질이 지배하는 현실세계를 재현하는 역할로부터 회화를 독립시키고 싶었던 그는 고민이 축적된 캔버스를 검은색으로 덮은 작품 ‘검은 사각형’을 발표하면서 재현을 벗어난 순수표현을 주창하는 ‘절대주의’를 탄생시켰다.


철저한 무에서 시작할 때 비로소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말레비치의 도전은 예술의 낡은 병폐를 묵인하고 추종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검은 사각형’의 의미를 확장시키며 자신의 예술관을 설파했다.


‘검은 사각형’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2015년, 연구자들은 검은 사각형 주변 흰 테두리에서 “어두운 동굴 속 흑인들의 전투”라는 글귀를 찾아냈다. 말레비치가 남긴 이 글로부터 학자들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알레가 1882년 발표한 작품을 떠올렸다.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시대의 엄숙주의를 풍자하던 예술가 알레는 검은 직사각형 아래로 “어두운 동굴에서 흑인들의 전투”라고 써놓은 작품을 발표했다. ‘너무 어두워서 분간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로도 해석한다는 이 문구를 말레비치가 작품 한쪽에 적어놓은 것으로 보아, 그가 알레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지난 화요일, 인스타그램의 타임라인에 두 예술가의 작품을 닮은 검은 사각형이 차올랐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갈등이 표면화되고, 사람들은 검은 사각형으로 지지의 마음을 전했다. 검은 사각형은 또 하나 무거운 의미를 짊어졌으니, 이제 어둠을 걷어내고 분별을 세울 시간이 왔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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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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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쳉, 특사 삼부작, 2015~2017. ⓒ이안 쳉


다들, 이런 세상이 올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다만 그 시점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을 뿐. 그렇다면, 온난화로 지구의 육지 태반이 물에 잠긴다는 날 역시 오긴 하겠다. 그날은 우리의 예상보다 가까운 미래일 수 있다. 다양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미래를 예측할 테지만, 다양한 정보값이, 다양한 변수와 엮여 계산하는 미래의 사건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에 기대 설마 그날이 올 리 없다는 믿음은 성장하고,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금껏 해왔던 방식 그대로 지키려는 용기 내지는 만용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이런 ‘신념’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우리는 생태계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없더라도 생태계는 작동하죠.” 미술과 인지과학을 전공한 작가 이안 쳉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하는 유기체의 세계를 보며,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돌아봤다. 그는 생태계의 주체는 결코 인간이 아니며, 무한한 변화 역시 인간이 속해 있는 생태계에만 한정된 원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태계를 컴퓨터 안에 창조했다. 사람, 동물, 나무 등의 움직임을 캡처하여 기본 데이터를 확보한 뒤, 여기에 비디오 게임 엔진을 더하여 라이브 시뮬레이션 작업을 탄생시켰다.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은 인간의 신경망처럼 작동하면서 정보를 엮고, 캐릭터를 성장시킨다. 캐릭터는 급기야 스스로 행동양식을 만들고 성격을 구축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들 삶의 환경을 만들어간다. 또 하나의 우주를 여는 컴퓨터는 이제 ‘메커니즘’을 벗어나 생태계가 되었고, 그곳에 인간은 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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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르 카르탄슨, 방문자들, 2012, 9채널 비디오 설치 ⓒ라그나르 카르탄슨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저 방문객일까. 타인의 삶에 잠시 동행하다가 다시 자기의 길 위로 돌아와 홀로 걷는,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고독자일까. 아이슬란드 작가 라그나르 카르탄슨은 아내와 헤어진 후 그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만나면 헤어지고, 시작하면 끝나는 삶의 질서는 여기저기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뉴욕에 머물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뉴욕시 북쪽 허드슨 밸리에 있는 오래된 맨션을 만났다. 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맨션에는 43개의 방이 있었지만, 아무도 살지 않았다. 집주인의 가족, 지인들이 종종 들러 쉬었다 가는 은신처로 운영 중이었다. 카르탄슨은 이곳에서 보헤미안의 향기를 느꼈다.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에 얽매일 필요 없는 이 느슨한 공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는 먼저, ‘전처’가 쓴 시 ‘내 여성의 길’로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고향 레이캬비크 출신 뮤지션 8명을 뉴욕의 맨션으로 초대했다. 서로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조금은 황폐하지만 낭만적인 맨션에 모였다. 정원, 다락방, 거실, 주방 등에 자리 잡은 이들은 헤드폰을 낀 채 ‘내 여성의 길’ 연주를 시작했다. 화장실을 택한 카르탄슨은 욕조에 누워 기타를 친다.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타인의 연주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파트에 집중할 때면, 그는 진한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동료의 연주 소리가 그를 고독에서 길어올렸지만, 다시 곧 외로워졌다. 작가는 ‘인생’이라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는 이 방문자들의 시간을 담아 9채널 영상 설치 작품을 완성하고, 작품 제목으로 스웨덴 팝 밴드 아바가 마지막으로 남긴 공식 앨범의 타이틀 ‘방문자들’을 선택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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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날, 2006-20083채널 HD 비디오, 6채널 지향성 사운드환경, 15분 ⓒ스마다 드레이푸스


시린 눈밭에 서서, 병풍처럼 펼쳐진 겨울산을 향해, 이제는 세상을 떠난 연인에게 안부를 묻는 외침이 쓸쓸했던 영화가 떠오른다.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도 애틋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던 감각이야말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요소였다. 공기를 진동시키며 귀를 건드리기 때문일까. 사람이 외부세계와 접촉할 때 사용하는 감각의 비율 가운데 10% 안팎을 차지한다는 청각은 꽤 촉각적이다. 그 접촉이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흔드는 것 같다.


“너는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란다. 내 영혼과 피보다 더 사랑하는 너를 신이 지켜줄 거야.” “목소리를 들으니 좋아요.” 해발 1000m의 골란고원에 올라선 이들은, 일년 중 단 하루, ‘어머니의날’에만 설치하는 마이크를 통해 국경 저편 가족에게 안부를 전한다. 2006년 무렵의 일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격전이 벌어지던 시기, 시리아의 땅이었으나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 일대에 살던 시리아인들은 대학교 진학을 위해서만 이 지역을 벗어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등으로 갈 수 있었다. 국경 간의 왕래가 허락되지 않는 전시 상황 속에서, 주둔군은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일년 중 하루, 특별한 상봉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그들은 목소리로 만났다.


고원 아래를 뿌옇게 채운 안개를 타고 부모와 자식의 목소리가 오간다. 혹여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목청 높여 외치는 떨리는 목소리는, ‘첨단’의 시대인데도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실어나른다. 갈등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이어야 할 텐데 늘 다른 목적에 복무하니, 여전히 제대로 가 닿지 못한 목소리는 고원을 떠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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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프티, 와이어 워킹, 1974. ⓒ필리프 프티


“왜 그 일을 했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예술적인 범죄’를 저지른 뒤 곧바로 체포된 퍼포머 필리프 프티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다다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하고는, 멈출 수가 없었을 뿐이에요.” 


24세의 프랑스 곡예사 프티는 1974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뉴욕 쌍둥이빌딩 양쪽 꼭대기에 케이블을 걸치고는 그 줄 위를 걸었다. 417m 건물 아래로는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다. 그가 손에 쥔 평행봉만이 그의 걸음을 도왔다.


난간 너머의 줄 위에 한 발을 올린 그는, 건물 위에 무겁게 남겨진 나머지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무게중심을 줄 위의 왼발로 옮기자, 미지의 것으로 가득하지만 사실은 텅 비어 있는 그 구름 속으로 그의 몸이 움직였다.


약 45분간, 두 건물 사이를 8차례 왕복하는 동안 그는 케이블 위에서 걷고, 앉고, 누우면서 그를 지켜보는 100여명 시민들의 심장을 조였다. 그는 그 어떤 기록이나 목적을 위해 줄 위에 올라서지 않았다. 다만 놀라운 방식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싶었을 뿐이다. 그 마음과 별개로 그는 빌딩과, 흔들리는 케이블과, 대기의 공기와 교감하면서 하늘 위에서 시를 쓰는 기분을 만끽했다.


늘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온 그는, 삶을 구성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슬픔과 기쁨, 정의와 부조리, 선과 악, 그 모든 극단의 것들이 양끝의 무게추가 되어 우리를 지탱하고 있으니, 흔들리는 줄 위에 올라서 있는 자 모두는, 일상을 일상답게 유지하기 위해 극단을 오가며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일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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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럴 판 라러, 존재하지 않는 퍼포머,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공연 장면.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당신이 두려워하는 미래를 보라.” ‘우리가 미래에 관해 기대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영국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등장인물 베서니는 몸을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육체를 벗어나고 싶은 그는 부모에게, 뇌를 다운로드해 클라우드에 보내는 시스템을 설명했다. 그것이 자살을 뜻하는 게 아닌지 묻는 부모에게 “다시 돌아가지. 흙으로”라고 답변한 베서니는 데이터가 되어 삶과 죽음이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했다. 부모는 그녀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작가 카럴 판 라러가 퍼포머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선택한 것은 베서니가 벗어버리고 싶었던, 일종의 비어버린 육체였다. 무대 위에 함께 올라선 최면술사가 카럴의 의식 스위치를 꺼버리면, 최면에 빠진 그의 몸은 4명의 무용수에게 주어지고, 이들은 카럴의 신체를 조작하면서 약 30분간 움직임을 만든다. 그렇게 그의 몸은 타인에 의해 조종당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장의 움직임을 자기 의지로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이 상황 전체를 기획한 것은 카럴 자신이니, 그는 자신의 신체를 잠재우는 대신 다른 퍼포머들의 신체를 지배한 셈이다. 무대 위에서 한순간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방치되지 않는 그의 잠든 신체가, 공연 전체를 지배하고 다른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는 상황을 보며, 육체의 무한한 정치성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베서니가 트랜스휴먼이 되어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육체였을 것임을, 그러나 ‘클라우드’로 들어간다 한들 그녀가 자기 의지에 충실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 새로운 세상 역시 내버려두지 않을 것임을, 오늘도 바이러스로부터 빈틈없이 수호되는 육체를 살피며 생각해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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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라멜라스, 시간, 2020, 온라인퍼포먼스 캡처 이미지. ⓒ 데이비드 라멜라스


고백건대, 관객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기는 늘 어려웠다. 관객을 모시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에 온갖 콘텐츠를 끊임없이 올려야 했다. 전시 자체의 기획보다 전시로부터 파생되는 프로그램 기획이 중요했고, 온라인에 노출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가공하는 일이 중요했다. 조명발 좋은 전시장은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었다. 오프라인은 마치 온라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도대체 전시장에서 전시를 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고민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의 경험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신앙 같은 믿음으로 전시장을 꾸리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그때도 온라인의 힘이 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터넷이 오프라인을, 보완이 아니라 대체하려는 모양을 보니, 이 상황이 장기화되더라도 인류의 삶은 약간의 전환기를 지날 뿐 계속 운영되겠구나 싶다.


최근, 작가 데이비드 라멜라스는 1970년 첫선을 보였던 퍼포먼스를 온라인에서 재공연했다. 눈밭에 일렬로 늘어선 18명의 사람이 차례차례 옆 사람에게 현재시간을 말하는 이 퍼포먼스는, 아르헨티나에서 영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던 작가가, 자신의 지리적 위치가 달라지면서 ‘시간’의 정의와 ‘국제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무렵 구상했다. 세계가 놀라울 만큼 하나로 연결된 덕분에 좀처럼 수습하기 어려운 이 상황을 직면하며 그는 이 작업 ‘시간’을 온라인으로 올렸다. 퍼포머들은 눈밭에 일렬로 늘어서는 대신 각자 집에서 카메라 앞에 앉았다. 화상통신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급부상한 줌과 유튜브가 퍼포먼스를 도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온라인에 접속한 이들은, 자신이 있는 장소의 시간을 자신이 선택한 언어로 말하며 시간과 그 경험을 공유했다. ‘지금 여기’ 온라인에서.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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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바닷가의 두 여인, 1933~1935, 93×118㎝, 캔버스에 오일, 뭉크미술관 소장


에드바르 뭉크의 개인사는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의 중요한 근거로 언급된다. 그가 5세였을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14세였을 때 누나 역시 같은 병으로 사망하고, 여동생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였지만 가족을 살리지 못했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도 뭉크가 26세 되던 해 사망했다. 6년 뒤 남동생이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이제 그의 가족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태어난 여동생뿐이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광기의 씨앗을 물려받았다. 나의 요람을 지켜보고 있던 것은 병과 광기와 죽음의 검은 천사들의 무리였다. 그들은 그 후에도 줄곧 나의 생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류머티즘, 불면증으로 고통받았던 그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면서 80세까지 살았다. 화폭 안에는 붙잡지도, 지우지도 못할 통증의 세월이 스며들었다.


흰옷을 입은 채 바다를 응시하는 여인 옆에 앉은 검은 사람의 퀭한 시선이 화면을 무겁게 누른다. 흑백의 대비가 강렬한 둘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젊음과 늙음, 생과 사, 희망과 좌절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대비를 본다. 바다 위로 길게 드리워진 달그림자에 시선을 던진 여인을 따라, 바다 너머로 쏟아지는 마음을 본다. “젊음은 한때이고, 생의 끝에 만나는 죽음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않으니 사사건건 분노하지 말고 담담하게 살자.” 여인은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 두려움과 통증이야말로 생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던 뭉크의 그림 속 여인이라면, 차분한 모습 안에 외려 이런 목소리를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통증과 분노의 원인을 잊어선 안된다. 외면해선 안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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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얀 보, 무제, 2019, 사우스런던갤러리 설치장면, ⓒ얀 보, 사우스런던갤러리, 촬영: 닉 애시


1975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얀 보의 개인사는 극적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통일정부가 들어선 후 불어닥친 격랑을 피해 그의 가족은 작은 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했다. 1979년의 일이다. 덴마크 선박이 거대한 바다에 떠 있던 이 보트피플을 구해준 덕분에 얀 보의 가족은 덴마크에 정착했다.


북유럽에 자리 잡은 동남아시아인들이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경험하며 놀라고 좌절했을 세월은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상황,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돌아봐야 하는 일상 안에서 성장한 덕분에 얀 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눈과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부서진 오래된 조각상, 굴러다니는 돌멩이, 낡은 상자. 그의 눈은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사물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장소에 놓이고,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들었을 이 사물들을 다시 엮으면서, 작가는 여기 또 하나의 의미를 입힌다. 


“예술은 결코 개인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그저 개인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맥락 안에 흩어져 있던 사물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모이고 재구성되는 과정은, 삶이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에 닿는다.


최근 몇 년간, 얀 보는 동료, 친척들과 협업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는 그들의 일화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주목한 시간, 장소, 사물을 함께 살핀 내용을 엮어 전시를 열었다. 개인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어우러져 함께 살지만, 그렇다고 어떤 틀 안에 갇혀서도, 어떤 목적에 동원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반영해 전시 제목은 ‘무제’로 정했다. 규정할 수 없는 개인들의 삶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채, 따로 또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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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동백꽃.


제주 4·3이 70주기 되던 2018년, 4·3을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이, 전보다 더 많은 곳에서, 전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이효리가 추념식에 참석해 시를 낭송했고,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다.


동백은 지고, 벚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에 광화문 앞에서는 연일 행사가 열렸다. 사람들은 박경훈 작가가 그린 그림으로 제작한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달고, 4·3을 만났다.


긴 세월, 제주 4·3의 진실을 전하는 작품활동을 이어온 작가가 동백꽃잎을 모티브로 4·3 기억 배지를 처음 디자인한 것은 60주기 되던 2008년이었다. 당시에는 몇몇 활동가들만이 가슴에 달고 다녔던 배지가 10년이 더 흐른 뒤 전국적으로 시행한 캠페인과 연결되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은 무거운 의미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달렸다. 작가는 지난해 가을, 이 도안을 제주4·3평화재단에 기증했다.


올해의 72주기 추념식에도, 사람들은 동백꽃을 가슴에 달았다.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던 대통령도, 4·15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인들도 동백꽃을 달았다. 대통령은 “제주만의 슬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아픔”이라고 언급하며 피해자 유족의 명예회복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인들은 약속했던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무산되어 면목 없지만, 그 이유는 ‘상대편’에 있다고 설파한다. 이들은 다시 사과하고, 다시 약속한다. 갈 길은 너무 멀고, 가슴 앞 동백꽃은 무겁기만 하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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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피터 도이그, 100년 전, 2001, 캔버스에 오일, 229×358㎝, 퐁피두센터 소장, ⓒ 피터 도이그


딱히 돌아가고 싶은 시점이 있는 건 아니다. 아니다. 이 시큰둥한 마음은 어쩌면,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 모두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역설적으로 튀어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보기 전. 면접에 들어가기 전. 탈락하기 전. 집값이 오르기 전. 주식이 폭등하기 전.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건물이 무너지기 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 전쟁이 나기 전.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


웹소설 한쪽을 점령하고 있는 ‘회귀물’을 뒤적이다보면, 지금 여기를 함께 살고 있는 자들의 아쉬움, 미련, 후회, 욕망이 눈에 들어온다. 한번 살아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살이에 대한 노하우와 미래에 대한 정보로 무장한 ‘젊은’ 회귀자는 과거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며 그의 인생뿐 아니라 주변의 인생을, 환경을 변화시킨다. 빛나는 미래의 보석을 알아볼 안목이 생길 리 없는 나는, 위기를 기회로 돌리기 위해 의지를 불사르는 주인공들에게 빙의하여 악을 응징하고, 세상을 구하고, 콤플렉스도 해결해본다.


모든 것이 왜소한 한 남자를 화면 안에 그려넣은 피터 도이그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어두운 눈을 알고 있다. 고요하지만, 조심스럽게 일렁거리는 화면 안에서 긴 머리에 깡마른 이 남자는 우리를 본다. 메마른 이 남자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으나, 세상은 아직 그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했다. 


그런 눈은 아마도 100년 뒤에나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잔잔한 풍경을 고요하게 흔드는 붓질로, 푸른 물결에 깊이 박힌 오렌지빛 그림자로, 지나고 나면 그제서야 그때가 결정적인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을 기록한다. ‘100년 전’이라는 이름으로.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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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휴고 건즈백, The Isolator, 1925 ⓒSyracuse University Libraries, Special Collections Research Center


예술계 정보를 전하는 웹사이트 이플럭스를 열었더니, 헬멧을 쓰고 앉아 있는 휴고 건즈백의 이미지가 걸려 있다. 그 아래로 인류가 처한 오늘의 상황과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볼 만한 키워드, 읽어볼 만한 글을 공유하자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에디터는 그 첫번째 키워드로 ‘전염’을 제시했다.


“과학소설은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뒤섞인 멋진 로맨스”라고 정의한 휴고 건즈백은 발명가이자, 저술가, 잡지 발행인으로 살면서 기발한 발명품을 발표하고, 과학소설 잡지를 창간하는 등 현대 기술을 예견하고 과학소설의 미래를 개척한 인물로 꼽힌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발명품 ‘아이솔레이터’는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시야를 한정시키는 도구다. 나무로 제작한 헬멧에 산소통을 연결할 수 있어 착용해도 호흡엔 지장이 없다. 사무실 안에서 주변과의 관계를 기능적으로, 또 선언적으로 차단하는 이 도구는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환경으로부터 직장인을 보호하여,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행동강령으로 선포된 현재, 우리가 처한 자가격리의 상황은 ‘아이솔레이터’로 활용 가능해 보인다. 일상의 흐름을 무너뜨리면서 생존을 위협하고, 혼돈과 침체에 빠뜨리는 이 멈춤과 격리의 상태가,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사회적 관계를 무한 증식시키고, 만남의 관성을 끊지 않은 채 매일을 ‘이벤트’처럼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고독’을 격리된 방 안에서 마주한다. 서로를 멀리하고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하는 우리는, 곧 지금과는 단단히 달라진 세계가 오고 말 것이라는 걸 예견하며 방 안에 앉아 있다.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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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프린스, Emergency Nurse, 2004, 캔버스에 잉크젯, 아크릴릭, 152.4×116.8㎝ ⓒ리처드 프린스


예술가들이 즐겨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몫이다.” 해결책 없는 문제제기나 질문은 염증을 일으키지만, 탁월한 질문은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참여하지도 않은 전시에 참여했다는 거짓말을 한 뒤 ‘거짓말이 나의 출품작이었다’고 한다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사진을 재촬영하여 제작한 ‘새로운 초상화’ 시리즈를 완판시키며 예술의 창작과 모방, 복제 논란에 또다시 불을 붙였던 리처드 프린스는 늘 광적으로 이것저것을 수집하고 들여다본다. 그는 전유와 도용, 모방으로 미국의 대중문화와 유머를 미술 안에 끌고 들어와 일상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질문을 던지는 데 능숙하다.


그는 사스로 인해 전 세계가 히스테리의 최정점에 도달한 2002년 당시, 우리 모두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로맨스 소설 표지를 뒤적이며 간호사 관련 삽화를 찾아 작업한 뒤 간호사 그림 연작을 발표했다. 눈 밑부터 턱을 크게 감싸는 흰색 마스크를 쓴 간호사들은 특정 개인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 익명의 얼굴은 하나의 개인을 넘어 더 큰 아이디어로 나아가는 아이콘이 되어 화면을 채운다. 태양이 저무는 듯 노을이 드리워진 어둑한 대기를 가르는 그의 몸짓은 어딘가 조급하다. 1950~1960년대 간호사의 전형적인 흰색 유니폼에 푸른 재킷을 걸치고 진료가방을 든 그의 상체가 살짝 앞으로 쏠린 때문인가. 긴장감이 감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자를 향해 손을 내미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공포와 위로를 동시에 목격하는 지금 우리의 상태는 2002년의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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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바니사드르, 민주주의의 위선, 2012, 리넨에 오일, 76.2×91.44㎝ ⓒAli Banisadr


이란에서 태어난 화가 알리 바니사드르에게 ‘소리’는 작업을 풀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다. 탁월한 공감각 능력을 타고난 그는 소리가 전해주는 이미지를 그 영감과 연동하는 붓질로 화면에 펼친다. 구상과 추상의 결을 오가며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작가는 우리의 언어가 포착하지 못하는 성찰, 언어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유를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자신의 공감각적 재능을 알아차린 건, 그의 어린 시절을 온통 지배했던 전쟁의 소리 덕분이다. 그의 가족은 이란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았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의 포화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일상을 지배하는 전쟁 소리를 피할 수 없었던 그의 내면엔 파괴의 소리가 각성시키는 이미지가 차올랐다. 전쟁의 혼돈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작업은 페르시아 역사를 아우르고, 동시대 전 지구적인 사회문제를 가로지른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촉발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향한다. 합리와 모순이 얽혀 있어 늘 판단과 선택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혼돈에 찬 공기가 그의 화면을 채운다.


하늘빛은 제법 푸르고 공기도 청명해 보이는 하늘 아래 바람에 팔랑거리는 낙엽처럼 흔들리는 형상들이 엉켜 있다. 깃발인지, 화살촉인지, 총알인지 알 수 없는 물체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사이, 절벽을 잇는 가느다란 사다리 옆에 선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땅 위의 울긋불긋한 형상들은 분주함을 과시하듯 어지럽다. 그 덕분에 대지의 공기는 제법 흔들리지만, 그들의 기운이 하늘까지 닿지는 못했는지, 하늘은 그저 잠잠하다. 작가는 바람 소리 가득한 이 작품을 ‘민주주의의 위선’이라고 불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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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콜렉티브, 진실을 찾아서(진실 부스), 2011~현재. ⓒ원인 콜렉티브


소년이 말한다. “진실은 축구다.” 여성이 말한다. “진실은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남성은 말한다. “진실은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그룹 ‘원인 콜렉티브’가 제작한 거대한 이동식 말풍선 스튜디오 ‘진실의 부스’는 ‘진실은’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만화의 말풍선을 닮은 이 하얀 부스 안에는 작은 촬영 스튜디오가 있다. 사람들은 이 안에서 약 2분간 발언할 수 있다. 


2011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멕시코, 남아프리카, 미국을 여행하고 있는 ‘말풍선’에 참여한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사랑, 예술, 기술, 연대, 가치, 폭력, 가족, 정치, 불신 등 세상의 온갖 주제를 아우른다. 


누구도 명쾌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가능한 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로 한 작가들은 이렇게 진실을 리서치하고 그 내용을 웹사이트 ‘insearchofthetruth.net’에 기록했다. 


사람들은 무엇을 진실이라고 생각할까. 자신이 믿는 진실은 삶에 영향을 미칠까. 개인의 나약한 목소리가 모이면,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추구하고, 믿는 진실에 닿을까. 결국은 거대한 세상의 안녕을 떠받치는 기둥의 조각으로 흡수되어, 개개인이 추구하는 진실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을까. 누군가의 목적에 따라 은폐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진실을 말하는 일은 질문을 낳는다. 


작가들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진실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할 일이다.” 그리고 말한다. “그것이 진실이기만 하다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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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희, 게잠트쿤스트벨크, 2019. ⓒ이양희


그것은 ‘잔치’였다. 좋아하는 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 안무가 이양희의 오래된 지인들이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의상디자이너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퍼포머로, 스태프로 협력하여 잔치의 톤과 매너, 캐릭터를 만든다. 무대와 객석을 특정할 수 없는 공간 안에서 퍼포머는 손님을 맞이하고, 서로를 소개하고, 음식을 서빙한다.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일컫는 ‘밀롱가’의 콘셉트를 적용한 이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거닐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시공간이 찰나의 정적을 스치기가 무섭게 이곳을 다른 빛과 리듬이 채우는 순간, 퍼포머들은 달라진 빛과 리듬에 기댄 움직임으로 공간을 환기시키며 그때 그곳에 있는 이들을 순식간에 그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다른 경험은 다른 감각으로 쌓인다.


오랜 시간 한국 전통무용을 교육받은 이양희는 춤사위의 요소와 특징을 기반으로 움직임 워크숍을 구성했다. 그 안에는 ‘공연예술의 발현 과정과 시공간의 요소들, 그 안에서 퍼포머가 존재하는 방식’을 배우고, 폐기하고 다시 배우기를 반복하며 고민하고 발전시켜 온 이양희의 안무 방법론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이 긴 시간 정리한 이 내용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서로 배우고 나누는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게잠트쿤스트벨크(총체예술극)’가 되기를 바랐다. 잔치가 예술이 아닐 이유도 없지만, 잔치를 예술에 가두어야 할 이유도 없는 이 시공간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들과 눈 맞출 수 있기를, 공연 예술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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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한나 회흐, 다다 식칼로 독일의 마지막 바이마르-똥배 문화 시대 절개, 1919, 콜라주, 114×90㎝,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소장


“그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은 그가 이미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 자신이 특권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그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며 정치적 공격성을 드러내던 베를린 다다의 유일한 여성 작가 한나 회흐를 동료 남성 예술가들은 ‘다다의 잠자는 공주’라고 불렀다. 여성해방을 지지하며 남녀평등권, 기회 균등을 향해 정치적으로 옹호하던 그들이었지만, 소시민의 위선, 부조리한 세태를 고발하기 위해 매춘부, 여성의 나체를 폭력적으로 전시하는 방법을 거리낌 없이 선택하는 남성 동료 작가들 안에서 그는 편안할 수 없었다.


“나는 자기 확신에 찬 우리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 둘레에 쳐 놓는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우리가 판단하는 기준은 바뀌었다. 모든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는 1920년 ‘제1회 국제 다다 전시회’에 ‘다다 식칼로 독일의 마지막 바이마르-똥배 문화시대 절개’를 출품하여 다다이스트들을 향한 냉소를 보낸다. 작품 안에는 독일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를 비롯하여 무너진 과거를 대표하는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상징인 바이마르 공화국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대면하고 있다. 다양한 화보에서 ‘절개’해낸 인물들 중에는 자신을 비롯하여 무정부주의적인 익살에 심취한 다다이스트들의 모습도 있다. 그 사이로 ‘다다에 가담하라’ ‘다다에 투자하라’ ‘다다가 정복한다’ 같은 유명한 말들이 광고문구처럼 자리를 채운다. 격변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변화를 이용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이익을 흔드는 변화 앞에서는 행동을 유예하는 이들을 향해 작가는 가위를 들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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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 카포테, 오픈 마인드(바리케이드), 2014, 변형한 바리케이드와 철제 구조물, 관객참여형 가변설치 ⓒ YOAN CAPOTE/COURTESY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쿠바 작가 요안 카포테는 지하의 미로 공원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뇌 구조처럼 설계한 ‘신경세포’의 미로 안에서, 사람들이 걷고 머물면서 명상하고 교감하기를 바랐다. 미로 한쪽에 쿠바 지도를 넣어,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쿠바에 대한 정책이 바뀌고, 그때마다 그 상황이 강제하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쿠바인들의 스트레스를 강조했다. 


미로가 제시하는 삶에 대한 다양한 함의와, 명상의 필요성을 접목한 이 작업으로 그는 대다수 현대인이 살고 있는 도시환경을 되돌아본다. 시스템이 집적되어 유기적인 것 같지만, 구성원이 합의하거나 냉소하지 않으면 통제될 수 없는 도시의 불온한 현실 앞에서, 도시 생활에 중독된 인간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돌아봐야 했다.


작업 구상 후 10여년이 흐른 뒤에야 그는 이 프로젝트를 공공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구상대로 구현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 한계는 해결책을 낳는 법. 그는 미로의 개념을 뒤집어보기로 한다. 상상의 끝에,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리케이드야말로 일상의 공간을 마술처럼 미로로 만드는 데 특화된 도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는 바리케이드를 구부리고 잘라 붙여, 이 사물이 군중을 통제하는 데 쓰이는 방식을 뒤틀면서 뇌 구조의 미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미로 구조물을 들어올려 사람들의 머리 높이에 설치했다. 미로는 ‘바리케이드’의 태생적 용도와 무관하게 관객의 동선을 전혀 방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흔쾌히 안으로 그들을 초대했다. 관객은 미로 아래를 유유자적 걷거나, 그 아래 요가매트를 펼쳐 놓고 요가와 명상을 했다. 예술가의 선택을 거쳐 우리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 법률, 도그마, 터부는 조금 가벼워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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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허버트&알렉산더 버츨러, 플로라, 2017, Synchronized double-sided Film Installation with shared Soundtrack, 30분 ⓒ테레사 허버트&알렉산더 버츨러


제임스 로드가 쓴 자코메티 평전에 실린 한 장의 흑백사진은 작가 듀오 테레사 허버트와 알렉산더 버츨러의 호기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좌측에 앉은 젊은 자코메티는 카메라를 향해 있고, 우측의 여인은 그를 향해 앉았다. 둘 사이에는 이 여인, 플로라 마이요가 만든 자코메티의 두상이 있다. 사진이 포착한 특별한 분위기, 그리고 플로라에 대한 로드의 매력적인 묘사에 매료된 두 사람은 플로라를 찾아나선다.


미술사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미국 덴버 출신의 이 작가는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단호히 정리한 뒤 조각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역시 파리로 유학 온 자코메티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플로라가 자코메티의 두상을 만든 것처럼 자코메티 역시 그녀의 두상을 만들었다. 그들 사이에는 여느 연인들처럼 굴곡이 있었고 결국 이별했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평생 알 수 없었다.


듀오 예술가는 플로라의 아들을 만나, 싱글맘으로 살아간 엄마를 회상하는 그의 떨리는 입을 포착했고, 아들의 증언과 그들이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투채널 비디오를 완성했다. 2016년, 미국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읊는 아들이 이끌어가는 다큐멘터리와, 1927년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자코메티의 두상을 만드는 플로라의 모습을 담은 드라마가 서로 등을 맞댄 채 흐른다.


그러나 기억은 불안하며 기억을 간직한 자의 목소리는 진실이자 허구다. 듀오 예술가는 한때 예술가의 삶을 꿈꾸었던 이가 남겨둔 삶의 편린들을 추적하고 조합하면서 사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기억과 감정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다리 위로 우리의 역사가 흐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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