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술
1200년대의 스페인 마요르카는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공존하던 지역이다. 종교갈등이 빚어내는 충돌은 빈번했지만, 문화교류에 기반한 공생 관계는 유지하던 이곳에서 태어난 라이문두스 룰루스는 정복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아버지 덕에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음유시인이 되어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부유했고, 방종했으며, 세속적”이었던 그의 삶을 바꾼 것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환상이었다. 같은 환상을 다섯 차례 경험한 뒤, 그는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교도’를 만나 개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믿음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신의 속성을 덕, 완전성, 품위, 위대함 등의 개념으로 규정한 그는 신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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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아서
소년이 말한다. “진실은 축구다.” 여성이 말한다. “진실은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남성은 말한다. “진실은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그룹 ‘원인 콜렉티브’가 제작한 거대한 이동식 말풍선 스튜디오 ‘진실의 부스’는 ‘진실은’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만화의 말풍선을 닮은 이 하얀 부스 안에는 작은 촬영 스튜디오가 있다. 사람들은 이 안에서 약 2분간 발언할 수 있다. 2011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멕시코, 남아프리카, 미국을 여행하고 있는 ‘말풍선’에 참여한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사랑, 예술, 기술, 연대, 가치, 폭력, 가족, 정치, 불신 등 세상의 온갖 주제를 아우른다. 누구도 명쾌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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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잠트쿤스트벨크
그것은 ‘잔치’였다. 좋아하는 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 안무가 이양희의 오래된 지인들이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의상디자이너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퍼포머로, 스태프로 협력하여 잔치의 톤과 매너, 캐릭터를 만든다. 무대와 객석을 특정할 수 없는 공간 안에서 퍼포머는 손님을 맞이하고, 서로를 소개하고, 음식을 서빙한다.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일컫는 ‘밀롱가’의 콘셉트를 적용한 이 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거닐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시공간이 찰나의 정적을 스치기가 무섭게 이곳을 다른 빛과 리듬이 채우는 순간, 퍼포머들은 달라진 빛과 리듬에 기댄 움직임으로 공간을 환기시키며 그때 그곳에 있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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