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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귀가 막혀’

“악마를 만든 자.” 이는 ‘죄악에 물든 타락한 일상’을 무덤덤하게 살아내는 인간을 향해 악마 가득한 지옥그림을 내놓아 경종을 울린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 추정)의 별명이다.


신학철, 한국현대사 095, 콜라주, 2010


인간의 어리석음과 죄를 주제로 작업한 그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기묘한 상징성이 어우러진 화풍으로 오늘날까지 주목받고 있다. 그가 묘사한 왜곡된 신체, 동물과 벌레, 인간을 혼종한 군상은 그로테스크한 정서를 견인하면서 인간세계의 죄악을 풍자하고, 세기말 특유의 염세적 세계관을 분출한다.

그의 화면은 천재지변, 전염병, 전쟁, 반란 등 역경의 14세기를 겪은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닿아 있는데, 이들에게 세상은 부도덕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섭고 추한 곳이었다. 그 시대 몇몇 사람들은 1500년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신학철이 2010년 경향갤러리에서 열린 노무현 서거 1주기 추모전 ‘노란선을 넘어서’ 출품작을 준비하면서 보스의 작품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1515-1516)를 떠올린 것은 노무현 서거 전후 그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지형을 지켜본 소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작품 이미지와 노무현의 사진을 콜라주했다.

화면 중앙에 얼굴을 잔뜩 찡그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다. 원작에서는 십자가를 멘 예수가 있던 자리다. 그 주위에는 추악한 분위기를 감출 수 없는 극적인 표정의 인물이 가득하다. 보스는 이들의 거친 외양을 통해 죄악에 눈이 먼 인류의 한 극단을 표현했고, 신학철은 이 메시지를 고스란히 현재로 가져왔다. 인간의 원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자리에 세워진 노무현의 사진은 비행기 안에서 고도로 인해 귀가 먹먹해진 순간 찍힌 것이다.

그가 떠나고 7년이 흘렀다. 시간이 흘러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상황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흔들릴 뿐이다. 작가가 이 작품에 처음 붙인 제목은 ‘귀가 막혀’다.



김지연 ㅣ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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