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밤들이 있다. 라디오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의 목소리가 연이어 흐르는 밤. 짙은 어둠 속에 퍼지는 죽은 자의 노래가 산 자의 입으로 옮아가는 밤. 입술이 더듬은 노랫말에서 오래된 이미지가 쏟아지는 밤. 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편집 1, 2018, 사진과 텍스트 프로젝션 ⓒ김주원
330장의 사진과 67페이지의 문장 그리고 60분의 음악으로 구성된 김주원의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은 죽은 자와 산 자, 말과 이미지, 기억과 과거가 끝말잇기처럼 이어지고 ‘수신되지 않는 신호’처럼 끊어진다. 가령, 첫 조카의 생일축하를 위해 풍선을 매달던 아버지가 다음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조카의 생일을 기념하는 사진은 돌연 죽음을 환기하는 이미지가 된다. 아버지가 숨을 거둔 후에도 풍선에는 그의 숨이 남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풍경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안겨준다.
가까운 이들의 추억부터 뭘 먹고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시시콜콜한 일상, 촛불집회를 비롯한 사회적 풍경까지 다양한 사진과 글이 연속되지만, 이는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의 완성보다 데이터를 수집하듯 낱장의 사진마다 최대치의 기억과 검색을 링크시키는 데 관심을 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꿔 놓음으로써 타인에게 뭔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소설 속 주인공이 연상되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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