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11일 ⓒ안초롱
엄지와 검지 사이에 놓인 거울은 매우 작다. 손바닥보다 작은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려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 같다. 더욱이 손에 주름이 가득하다면, 손목에 링거를 꽂고 있다면 그 좁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조준하는 것 자체가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링거를 꽂은 손목을 움직여 거울을 잡고 얼굴을 매만지는 일은 특별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또 턱과 목의 주름에 비해 지나치게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노인이라도 환자라도 포기할 수 없는 카랑카랑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사진 속 인물은 안초롱 작가의 할머니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입원한 할머니의 병실에서 촬영했다. 작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진 속 할머니는 암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머리를 감고, 환자복도 갈아입고, 화장까지 하셨다고 한다. 도저히 못 말리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작가의 말투에는 사뿐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렇게 남들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할머니의 모습, 나만 마음껏 흉볼 수 있고 또 나만 마음껏 귀여워할 수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눈부신 장면이 없어도, 누구나 본 것이 아니라 나만 볼 수 있는 순간이 담긴다면, 모든 사진은 각별한 의식이 된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바라보려는 찰랑찰랑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이 사진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문과 테니스 (0) | 2018.12.26 |
---|---|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0) | 2018.12.07 |
가장 멀리 간 사진 (0) | 2018.11.30 |
남산 사진사 (0) | 2018.11.23 |
하얀 원피스, 검은 다리털 (0) | 2018.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