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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괜찮아! 나를 위한 초긍정


‘Forget it’, 1966년, 플랙시글라스 좌대 위에 스테인리스 바늘



레넌과 그의 뮤즈였던 개념미술가 오노 요코가 한창 사랑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요코는 존의 광팬으로부터 소포 하나를 받게 된다. 소포 속에는 바늘뭉치로 만들어진 인형이 들어 있었다. 마치 자기 남자를 빼앗아 가버린 여자한테 음해와 복수의 심정으로 보낸 이 물건은 일종의 폭탄 테러 비슷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괜찮아!(Forget it)’를 처음 본 순간 떠오른 이 에피소드는 사실상 이 작품이 제작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는 마치 미래의 사건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 작품은 ‘개념미술’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아이디어와 생각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것을 말한다. 개념미술은 제목(혹은 지시문)이 매우 중요한데, 이 작품에서도 제목과 바늘이 갖는 연관성은 매우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요코는 1966년에 쓴 발췌문에서 ‘잊는 행위’를 표현하기 위해 바늘을 사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를 예로 들면서, 그처럼 지나치게 많이 아는 것 역시 물질적인 소유처럼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뾰족한 부분이 위로 향해 있는 바늘은 극단적인 상황을 징계하는 도구처럼 보인다. 그뿐 아니다. 요코는 위로 향한 바늘의 끝을 무한과 일치하고픈 인간의 형이상학적 욕망에 비유하기도 하고, ‘forget it’이라는 지시문을 통해 그 욕망을 무화시키는 역설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가? 이 작품을 처음 본 순간 섬뜩하게 떠오르는 기억과 마주할 수도 있고, 섬광처럼 번뜩이는 영감이 떠오를 수도 있다. 물론 이 바늘 하나는 관객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그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요코는 상처, 욕망, 물질, 탐욕을 바늘처럼 작게 만들자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동시에 깨끗이 잊고, 용서하고, 비우라고 말이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의 평화를 위해서!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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