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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이런 복수 어때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611~1612년경, 캔버스에 유채, 158.8×125.5㎝, 국립카포디몬테미술관(출처 :경향DB)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지조있는 유대인 과부 유디트가 아시리아 군대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했다는 구약 외경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논개’인 유디트가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술에 취하게 한 뒤 목을 베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라는 17세기의 한 여성화가가 그린 이 그림은 화가 자신이 겪었던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그녀는 19세 때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아버지의 친구이자 당대 해경(海景)에 능통한 화가였던 아고스티노 타시라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다. 이 사건은 아버지의 고소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녀는 쫓기듯 피렌체의 한 화가와 결혼하게 된다. 이 그림은 피렌체 시절 그린 유디트 연작 중 하나이다.

아르테미시아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강간한 남자를 그려 넣었고, 유디트의 모습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 그렸다. 다른 화가들의 유디트들이 에로틱하고 선정적으로 그려지는 것과는 달리, 그녀의 유디트는 남성을 능가하는 떡 벌어진 어깨, 굵은 팔뚝, 찌푸린 이마 등 힘세고 강한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여성성을 과감히 거세시키는 동시에 강간한 남자를 거세시키는 장면이라고나 할까.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유디트가 남자 시종을 거느린 채 살인을 감행하고 있다면, 아르테미시아는 여자 시종을 데리고 거사를 치르고 있다는 점! 그것은 고모뻘 되는 절친이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함으로써 그녀를 곤경에 빠뜨렸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림 속에서나마 특별히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여성들만의 동지애를 그려 넣었던 것이다.

아르테미시아는 보통사람이라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왜 그렇게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일까? 시작이 강간인지 화간인지 모호하지만, 적어도 한때 그녀는 타시라는 남자를 뜨겁게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의 복수는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미움과 사랑의 변증법?!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