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제니 홀저가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 작업을 내건 이후, 사람들은 권력 남용의 현장에 이 경구를 소환했다. 급기야 지난해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인용된 문장으로 언급되며, 권력 앞에 침묵하는 이들을 각성시켰다.
제니 홀저, 트루이즘-권력의 남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Truism-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 1982, 컴퓨터 애니메이션,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 6.1×12.2m ⓒ제니 홀저, 퍼블릭 아트 펀드, 사진: 존 마케일
지난해 10월, 미술전문잡지 아트포럼에서 일했던 아만다 슈미트는 잡지의 공동 발행인 나이트 랜즈맨의 성희롱을 폭로했다. 신디 셔먼, 로리 앤더슨, 제니 홀저 등의 예술가뿐 아니라 아트딜러 사디 콜, 바버라 글래드스톤, 큐레이터 로라 호프먼, 리사 필립스 등 7000명 이상의 미술계 여성들이 아만다 슈미트의 용기를 지지하며 미술계 내 권력을 이용한 성희롱을 고발, 비판하는 움직임에 동참했다.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We Are Not Surprised·WANS)’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제니 홀저의 경구에서 출발하는 홈페이지 ‘www.not-surprised.org’에 “우리는 자원 제공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비웃음당하고, 짓눌리고, 희롱당하고, 경멸받고, 협박받았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게시하고, 권력 남용의 현장에 늘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했다. 잡지는 사과하고, 나이트 랜즈맨은 사임했다. 아만다 슈미트는 침묵을 깨뜨린 용기로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채 흐르지 않았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트포럼과 나이트 랜즈맨은 ‘책임’으로부터 살짝 비켜서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권력자가 ‘승승장구’하는 일은, 늘 그렇듯이 놀라울 것도 없지만.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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