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오덴세, 스웨덴의 말뫼, 오스트리아의 린츠와 그라츠 거리에 “외국인 여러분,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끼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라는 메시지의 주황색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그룹 슈퍼플렉스가 ‘글로벌 콤플렉스’라는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었다. 2001년 가을, 77년간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해 온 중도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선거에 패배했다. 세금 인상, 유로화 도입 등의 정책이 유권자의 반감을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9·11 테러 이후 반이슬람 정서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 집권당의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향한 덴마크 사람들의 불안감도 이들의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 정권을 잡은 보수연립정권은 강경한 이민 정책을 추진했고 자국민 중심주의를 추구했다. 우경화의 출발이었다.
슈퍼플렉스, 외국인 여러분, 우리를 덴마크 사람들끼리만 남겨두고 떠나지 말아요!, 2002, 벽에 채색, 포스터(사진 Anders Sune Berg)
슈퍼플렉스는 ‘덴마크 사람’ ‘외국 사람’을 경계 짓고 국가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보수정권의 정책은 위험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선가는 외국인이건만, 자국민과 외국인의 경계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도 질문해야 했다. 그들은 거리에 하나의 문장을 던졌다. 이제 사람들은 ‘외국인’ ‘우리’ ‘덴마크인’이 누구인지 다시 토론해야 했다.
2016년 덴마크 거리의 광고판에는 백인 가족사진 위로 ‘우리들의 덴마크-우리가 보살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적은 포스터가 붙었다. 반이민 정책을 내세워 제2정당으로 급부상한 국민당(DF)의 광고였다. 이 광고는 덴마크 사회에서 인종차별 등의 논란을 가져왔다. 같은 해 덴마크국립미술관(SMK)은 슈퍼플렉스의 포스터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전시했다. 작가들은 벽면에 메시지를 적어 넣었고,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포스터를 비치했다. 10년이 더 지났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어쩌면 더 나빠진 세상을 향해 사람들은 2002년의 구호를 퍼뜨리며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졌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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