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튜니티가 바라본 자신의 궤적 (C)NASA/JPL-Caltech/Cornell University
누군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을 빌리면 그곳엔 아무도 없고, 사방엔 온통 모래뿐이다. 막막한 지평선을 바라보면 그의 고된 모험이 뚜렷한 궤적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상상이지만, 온당치 않은 일이다. 화성탐사 로봇이 찍은 사진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2003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화성탐사 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우주로 보냈다. 화성에서 물과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그들에겐 4쌍의 입체 카메라, 광각/어안 카메라가 장착됐다. 당초 3개월 정도 작동하리라 예상했지만, 스피릿은 무려 2011년 5월까지 작동됐고, 놀랍게도 오퍼튜니티는 현재까지 임무 수행 중이다. 두 로봇이 지구로 전송한 수십만 장의 사진 중에는 자신의 궤적을 바라보는 장면도 있다. 일교차가 100도를 넘는 화성의 겨울을 견디고, 모래폭풍과 사구에 빠진 위기에서 탈출한 일화를 떠올리면 그 사진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스스로 재부팅해 시스템을 연장한 일화까지 더해지면 그 궤적은 적막하게 눈물겹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그 사진이란 결국, 기계의 프로그램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구에서 입력한 명령어를 수행한 것 이상의 의미는 과하지 않을까. 어쩌면 사진마다 그 둘레에는 아름다움이나 눈물겨움을 장전시키는 크고 작은 신화들이 에워싸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그 모든 걸 걷어내고 맨눈으로 바라본 사진은 그저 납작한 표면일 뿐이다. 그 서늘함과 적막함은 가공된 신화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지금도 오퍼튜니티는 매일 아침 태양이 전지판을 비추면 잠에서 깬다. 그리고 누가 응답하지 않더라도 지구로 신호를 보낸다. 이를 아름답고 눈물겹게 여기는 건 내 생각과 감정이 단지 신경세포와 호르몬에서 비롯되지 않으리라는 투박한 믿음과 통한다. 스피릿, 오퍼튜니티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