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평론가 수전 손택의 말이 떠오른 건 최근 열리고 있는 ‘라이프 사진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이다.
Photo by Hugo Jaeger/Timepix/The LIFE Picture Collection/Getty Images ⓒ The Picture Collection Inc. All Rights Reserved.
나치의 상징 아래에서 모든 사람들이 오른손을 뻗어 경례한다. 좌측 아래 책상 끝에 아돌프 히틀러가 보인다. 옆에는 히틀러의 심복으로,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받아 적었다는 루돌프 헤스도 서 있다. 같은 줄의 양복을 입은 사람 옆에는 ‘나치당의 브레인’으로 불린 요제프 괴벨스도 있다. 1939년 4월28일, 베를린 크롬 오페라 극장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이날 회의에서 히틀러는 폴란드와의 불가침 조약 철폐를 선언하는 기조연설을 한다. 전쟁에 관한 독일의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홀로코스트를 비롯해 5000만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한다.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그 숫자를 헤아리면서 사진 속의 저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으리라 예상했을지 궁금해진다. 만일 조금이라도 상상했다면 저렇게 맹목적으로 오른손을 뻗을 수 있을까?
그 집단적 광기만큼 오싹하고 서늘한 것은 그마저도 미화하는 사진 ‘본연의 역할’이다. 히틀러의 전속사진가 휴고 예거가 촬영한 사진은 다분히 나치의 승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오른손을 뻗을 때마다 함께 오른손을 뻗어 카메라를 들었던 전속사진가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승리의 그날을 장식하기 위해 촬영된 사진들은 결국, 승자의 손에 들어간다. 독일 패전 후 사진을 숨겨왔던 예거는 승전국 미국의 대표적인 잡지 ‘라이프’에 그 사진들을 판매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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