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선을 진료하는 국립의료원 김 박사, 이름을 알 수 없는 간호사로 추정되는 인물, photograph, 50×62.5㎝, 2017
볼이 파일 정도로 여윈 남자가 침상에 누워 있다. 환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만큼 의사와 간호사의 경직된 포즈가 눈길을 끈다. 가운데를 가리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환자가 사진의 주인공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이 걸린 전시장에는 어떤 캡션도 없기에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김익현의 개인전 <Looming Shade>에는 ‘기념비’, ‘동굴’ 등 작가의 전작과 연결된 아카이브 사진을 재촬영한 작품들로 구성된다. 보통 아카이브 사진에 담긴 텍스트를 지시·암시하는 캡션이 명시되지만, 이 전시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작업 노트에서 아카이브 사진의 단서를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전시장의 구성은 의도적으로 사진과 정보의 링크를 깨뜨린다. 텍스트가 소거된 전시장은 정보 대신 시선의 위치와 동선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준다.
전시장에 조성된 20㎝ 높이의 발판은 사진을 조망하는 일종의 트랙 같다. 작은 차이지만, 눈높이가 변하면서 바라보는 방식과 태도마저 달라진다. 트랙과 비트랙을 따라가는 몸은 멈추기보다 계속 움직이며, 고정되지 않고 낙차를 익히게 된다. 그리고 이와 연동된 시선은 트랙(원심력)과 비트랙(구심력) 사이에서 20㎝만큼 기울어진 자전 궤적을 그려낸다. 이는 그동안 액자 앞에 멈춰 고정된 시점에서 정보를 탐색하던 것과 무척 다르다. 이 전시장에선 결국, 사진을 바라보는 대신 ‘사진을 바라보는 나’를 인지한다. 그동안 무언가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눈의 궤적을 좇아보게 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