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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방

 

 

김지연, 낡은방, 진안, 2011

 

방은 좁고 벽은 울퉁불퉁하다. 벽돌 써서 번듯하게 올린 집이 아니라면, 손으로 직접 지어낸 시골 흙집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이 집도 처음에야 그럴싸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들보는 조금씩 틀어지고, 흙벽은 말라 군데군데 파이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이든 티를 내고야 만다. 그 작은 집 조그만 방 안에는 집보다도 더 나이가 든 부모님이 산다. 그나마 한쪽을 먼저 여읜 경우가 많아서 방문 위 우두커니 걸린 사진으로만 함께 머물 뿐이다.

 

아마도 영정이었을 흑백사진 곁으로는 회갑연쯤에 찍은 기념사진이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다. 나란히 놓인 두 사진 아래로는 그 방 안에서의 삶이 훌륭했음을 보증하듯 플라스틱 카네이션들이 선연하게 피어 있다. 그러나 시들지 않는 꽃만큼이나 유통기한이 소용없기는 달력도 마찬가지다. 몸으로 느껴지는 추위와 더위 말고는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 방의 주인장에게는 큼지막한 숫자도 무용지물인 듯 편지꽂이의 배경지로만 쓰일 뿐이다. 세월이 가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달력이 아니라 방 한가운데서 가장 존재감을 발하는 전화기일지도 모른다. 먼 타지로 나간 자식들은 가느다란 전화선을 따라 손주들의 소식을 전하며, 그들 또한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알려올 것이다.

 

중년에 처음 사진기를 든 후로, 20여년에 걸쳐 시골과 소도시의 스러져가는 장소와 소소한 일상을 덤덤하게 기록해온 김지연의 ‘낡은 방’은 늙어가는 생에 대한 보고서다. 그러나 그 장소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의 생이 바로 이 방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진은 소멸에 대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기원에 대해서 묻는다. 도회지에 닻을 내렸음에도 마음만은 이방인 같은 우리들의 자궁 속 기억은 여전히 이 작은 방에 머물러 있다.